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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규]‘LG축구단’ 서울이전 두 의혹

[김대규]‘LG축구단’ 서울이전 두 의혹 [02/06 안양시민신문]본지 발행인·시인 그 동안 ‘설(說)’로만 난무하던 LG축구단의 서울이전이, 지난 2월2일의 ‘LG, 서울연고 복귀선언’으로 공식화됐다. 우선 눈길을 끈는 것은 ‘복귀선언’이라는 어휘다. LG측이 이 용어를 채택한 것은,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서울의 연고팀이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여타 구단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한편, 반대여론을 무디게 하려는 의도임이 분명하다. 사실 LG는 그 동안에도 여러 차례 서울 입 성 의지를 내비춰 왔었고, 그때마다 안양시와 축구관계자들은 그 대책수립에 부심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금번의 경우, 작년 12월16일 LG구단 한웅수단장의 서울이전 의사표명에 이어, 서울시가 지난 1월14일에 신생팀 창단계획을 공..

[구은주]안양시장을 고발한다

[구은주]안양시장을 고발한다 [2004/02/06 안양시민신문]연현초교 버스차고지 반대 비대위위원장 안양시장이 연현초등학교(석수2동) 70m뒤에 63대의 시내버스를 수용하는 버스차고지를 설립하려 하고 있다. 이곳은 유해시설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고, 학교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지정된 학교정화구역(스쿨존) 안이다. 안양시에서는 버스차고지는 ‘법(학교보건법)’적으로 유해시설이 아니라는 궁색한 주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버스차고지는 법조항이 없기 때문에 유해시설이 아니고, 모텔·오락실은 법조항이 있기 때문에 유해시설이라는 것이다. 오락실은 가지 말라고, 모텔은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부모·교사가 알려주고 지도할 수 있다. 설령 지도가 잘못되어도 아이들이 집단으로 병들거나 죽어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바로..

[익명글]오마뉴스의 댓글 <프로축구의 한계>

[익명글]오마뉴스의 댓글 [02/06 오마이뉴스] LG는 1984년 창단됐습니다. 처음엔 충청도를 연고지로 했다가 1990년에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합니다. 이때 유공(지금의 부천SK)도 경기도에서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하죠. 1995년까지 세팀(LG, 유공, 일화)이 동대문 운동장을 사용하면서 서울을 연고지라고 우겼지만 결국 모두 퇴출됐습니다. 이들 팀들은 연고지의 개념을 너무 쉽게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서울 연고지에 대한 우선권은 일화(지금의 성남일화)에게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창단때부터 서울을 연고지로 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서울은 노른자였고, 내가 못먹으면 남도 못먹어야 했습니다. 결국 서울에 축구전용구장을 짓는 클럽이 서울을 연고지로 한다는데 합의하고 모두 떠나게 됩니다. LG는 충청도(1984..

[구봉산]의왕시 경계지역의 개발과 문제점

[구봉산]의왕시 경계지역의 개발과 문제점 [02/03 의왕시홈피] 노무현 정부의 지역 균형발전과 행정수도 이전 계획으로 수도권의 주요 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기업의 이전은 아파트 건설로 이어지며, 또한 의왕지역과 인접하고 있는 지방정부에서는 새로운 신도시 건설과 함께 소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함으로써, 의왕시와 타지역간의 경계는 아파트로 획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먼저, 의왕시와 가까운 군포시와 안양시에 있는 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하고 있다. 즉 유한양행, LG전선 군포공장 등 대표적 기업들이 지방이전 계획을 확정하거나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으며, 이 공간은 당연히 아파트 건설로 이어질 것이다. 둘째, 청계산지역이다. 즉 청계산과 백운산 뒷쪽, 그리고 바라산 뒷쪽은 판고신도시 개발로..

[김대규]‘안양LG축구단’ 서울이전

[김대규]‘안양LG축구단’ 서울이전 [01/20 중부일보] 최근 프로축구계에 ‘서울’ 연고 프로구단의 창단문제가 큰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기존팀 영입이냐, 신생팀 창단이냐로 부심 하던 서울시는 일단 1월 26~28일 간에 창단의사가 있는 기업으로부터 의향서를 접수, 1월 30일에 우선 협상 대상기업을 심사·선정하겠다는 공고를 했다. 공식입장을 표명하기 전에도, 서울 연고 신생구단은 250억원의 부담금 가운데 대한축구협회와 서울시가 각 100억원씩을 지원하고, 구단 측은 50억원만 자부담하는 호조건에다가, 상암구장의 전용과 1천만이 넘는 홈펜을 보유한다는 이점이 있어 당초에는 희망기업이 많을 것으로 기대됐었다. 그러나 기존 구단들의 적자운영 상태나 최악에 이른 경제불황으로 선뜻 나서는 기업이 없자 서울시..

[조석주]능동적 시민의 목소리가 높아야

[조석주]능동적 시민의 목소리가 높아야 [01/20 군포시민신문]한국지방행정연구원 수석연구원/ 경제학 박사 참여정부에서는 국정과제의 하나로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제시하고 있다. 지방분권이란 중앙의 기능과 권한의 지방으로의 이양, 자치입법권의 지방이양, 중앙정부의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규제완화, 주민소환제·주민투표제 등 주민의 직접참정권 확대, 지방재정 확충과 지방재정 운영의 책임성 확보 등을 의미한다. 반면 국가균형발전은 수도권중심으로 되어있는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기능의 지방으로의 분산, 즉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격차완화와 국가중추관리기능의 지방이전, 자치단체간의 격차완화 등을 의미한다. 1989년 지방자치제도가 재도입된 후 10년 이상 운영하면서 외양상으로는 어느 정도 지방자치의 체제를 갖추..

[문원식]안양시, 도시인구 60만의 의미

[문원식]안양시, 도시인구 60만의 의미 [01/16 안양시민신문]성결대 교수(행정학) 지난 연말을 기점으로 안양시의 인구가 60만 명을 넘어섰다는 소식이다. 20세기 초의 인구가 약 4,000명으로 추정되니 100년 만에 150배가 늘어난 것이고, 인구 1만 명이었던 1940년을 기준으로 해도 63년 만에 60배가 늘어난 것이다. 안양의 도시인구는 20세기 중후반의 산업화·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1948년 2만, 65년 5만, 71년 10만, 79년 20만, 83년 30만, 86년 40만, 92년 50만 명으로 늘어나는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려왔다. 사실 한 도시의 인구규모가 크다는 것은 시세의 크기, 재정규모의 견실성 등 많은 긍정적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과밀화로 인한 삶의 질 저하 등 부정적..

[이상인]문자메시지관련 안양시의회 5분발언

[이상인]문자메시지관련 안양시의회 5분발언 [01/09 시민연대]안양시의원 이상인의원입니다. 안양시는 2001년 6월26일부터 휴대폰문자(SMS)활용 시정종합홍보계획을 마련하여 현재까지 시행하여 왔습니다. 안양시에서 년도별 안양시민들의 휴대폰번호 취득현황을보면, 2001년도 : 10,191건, 2002년도 : 11,752건, 2003년도 : 12,500건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2003년도에는 12월13일 현재 50건의 문자메세지를 활용하여 시정홍보를 하였습니다. 본의원은 안양시의회 제115회 정례회 회기중 행정사무감사 및 2004년도 예산심사중, 안양시민들의 휴대폰전화가 본인의 동의도 없이 공공기관인 안양시에 유출되어 시정홍보 또는 시정홍보의 범위를 뛰어넘는 국가시책에 반대하는 집회 동원에 이용되고..

[윤여창]후손에게 물려주도록 자랑스럽게

[윤여창]후손에게 물려주도록 자랑스럽게 [12/30 군포시민신문]푸른희망군포21실천협의회 사무국장 초막골 공원 조성 건, 수원∼광명간 고속도로 건, 경기도민의 숲 조성 건, 복합화물터미널 부지 확장 건, LG공장 이전 건, 당동 2지구 개발 건, 강남아파트 재개발 건, 구주공아파트 재개발 건 등 언뜻 이름만 들어도 복잡다단할 수밖에 없는 사안들이 2003년에는 많았다. 도시로 독립하고 14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정리되지 못한 도시구상이 이러한 사안들에서 대립의 양상으로 비춰지고 뭔가 찜찜한 여운을 남긴다. 지방균형발전이라는 대의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역차별이라며 뒤에서는 이의동 개발을 비롯한 각종 택지개발과 5개 신도시 건설 추진, 한강 골재채취와 같은 난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경기도의 현실에..

[송재혁]그래요, 제가 죄인입니다

[송재혁]그래요, 제가 죄인입니다 [12/19 안양시민신문]안양방송 기자 “당신이 죄인이야…. 당신이 여기 앉아 있으니까 집행부가 이렇게 시달리는 것 아니야!” 며칠 전 안양시의회가 집행부인 안양시를 상대로 행정사무감사를 벌이던 도중 실무국의 최고 책임자가 언론인석에 앉아있는 필자에게 다가와 던진 말이다. 수감 안건은 서 너 건이 더 남았고 시간은 이미 자정을 가리키는데 감사를 진행하는 의원들의 열정이 식을 줄 모르자 그 열정의 원천이 모퉁이에서 현장을 취재중인 필자 때문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시간이 흐르고 날이 달라진 시간, 슬그머니 취재장비를 들고 현장을 나서는 척 하며 속기사 대기실로 들어가 나머지 과정을 모두 취재했다. 그 행정관의 소원대로 자리를 비켜줬지만 의원들의 열정은 좀처럼 식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