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조광연]깡통이 보물이었던 시절과 안양천 대보름축제

안양똑딱이 2016. 7. 2. 16:35
[조광연]깡통이 보물이었던 시절과 안양천 대보름축제

[2007/02/28]평촌 청솔학원 원장
깡통이 보물이었던 시절과 안양천 대보름축제
안양천대보름축제 조직위원장

깡통을 얻는 건 정말 횡재였다. 우연하게 발견한 ‘꽁치통조림 깡통’의 비린내는 멋쟁이들만 뿌리는 향수와 같았다.

비료 포대나 소주병, 낡은 고무신을 엿장수 아저씨한테 들고가서 ‘최고급 군것질거리’인 엿과 바꿨던 때의 일이다.

겨울이면 늘상 학교 운동장이나 논두렁․밭두렁에서 연날리기, 깡통돌리기를 하였다.

어렵게 구한 깡통에 어설픈 망치질로 못을 박아 구멍을 뚫고 철사를 꿰고나면 손은 온통 상처 투성이였다. 동네 형들 어깨너머로 자연스레 익힌 솜씨였다.

최고로 치는 것은 분유깡통이었다. 깡통이 클수록 땔깜을 많이 넣을 수 있었고, 그만큼 불기운이 오래 가고 빛이 화려했기 때문이다. 요즘으로 치면 집집마다 있는 컴퓨터나 휴대폰 이상의 가치였을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서 피곤하고 지친 일상을 살면서도 어릴 적 신나게 놀았던 추억을 떠올리면 마음이 밝아진다.

환한 보름달이 뜨면 괜시리 마음이 설레이는 분들은 이해할 것이다. 특히 ‘1년 중 가장 크고 밝은 정월 대보름달’을 만났을 때의 벅찬 감동을 느껴 본 분들은 더더욱 이해할 것이다.

어린의 모습을 떠나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어느새 설레임이 사라지고 감성이 무뎌진 40중반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리운 추억은 유년시절이다.

지난해 정월대보름날, 나는 안양천 둔치에서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달콤했던 어린시절의 추억을 경험하였다.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지만 나는 구경꾼이었다.

한 쪽에서는 무대를 설치하고, 천막을 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쉴새 없이 깡통을 만들고, 안양천에 다리를 잇고 있었다.

어른들은 그렇게 경황이 없었다. 하지만 제법 많은 아이들은 세찬 바람에도 연 날리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미처 연을 준비 못한 아이들은 대낮인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깡통돌리기 놀이에 바빴다.

더러 연을 잘 날리지 못하고, 깡통을 어설프게 돌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곁에는 ‘키다리’ 아저씨․아줌마가 나타났다.

처음보는 아이인데도, 모르는 아이인데도, 연줄을 바로 잡아주고, 깡통에 불씨를 옮겨서 멋지게 돌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멋진 어른들의 모습을 보았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뭉클했다.

바로 내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는 60년대 후반 강원도 춘천에서와 같은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신이 났다. 나도 모르게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깡통에 넣을 땔깜을 쪼개고, 대나무를 쌓아 달집을 세우고, 만장을 세우는 일을 거들었다. 그렇게 재미에 빠져들다 보니 하늘엔 대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곳곳에서 수 천의 시민들이 모여들어서 저마다 소원을 적어 달집에 꽂았다. 그리고 한마음으로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불놀이를 즐겼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신나는 풍물가락에 맞춰 대동놀이에 빠져드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영영 기억으로만 남을 줄 알았던 정월의 넉넉하고 여유로운 풍경을 수십 년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이미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되어 연 날리기와 깡통돌리기 따위엔 시큰둥할 두 아이도 나와 같은 행운을 누릴 수 있을까?

사랑하는 아이에게 아버지의 추억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용기를 내어 얘기를 건네볼까 한다.

“또는 얘들아! 이번 주 토요일(3월 3일)에 안양천대보름축제에 놀러가지 않을래?”

2007-03-01 09:5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