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박찬응]벽산로 신안 앞바다, 흑산도 앞바다에 ‘고깃배가 떴다’

안양똑딱이 2016. 6. 21. 16:45
[박찬응]벽산로 신안 앞바다, 흑산도 앞바다에 ‘고깃배가 떴다’

[2004/11/26]Stone & Water 관장
날씨가 싸늘해지면서 홍어회에 탁주 한 사발 들이키는 아쌀한 맛이 절로 생각난다. 노란주전자에 담겨진 탁주 한 사발 들이켜고 홍어한점 초장에 콕 찍어 입에 넣으면 코끝으로 전해지는 톡 쏘는 냄새가 탁주의 맛을 더해준다.

헌데 요즘들어 고민이 하나 생겼다. 벽산로 들어서서 중앙성당을 지나면 흑산도집이 있고, 두 집 걸러 신안집이 있다. 두 집의 주인양반들과 오래된 안면도 그렇거니와 같은 홍어라도 집마다 맛이 다르니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신안집 홍탁의 맛은 낭랑한 목소리를 가진 주모의 은은한 미소에 곁들인 정갈한 안주와 독특한 막걸리의 맛이다. 서비스로 몇 점 올라오는 홍어회의 향긋한 뒷맛 또한 안 먹어본 사람은 모른다.

흑산도집의 맛은 걸쭉하고 괄괄한 주인장이 싱글 웃으며 건네는 인사말 또한 일품이다. 특히 보리 순을 넣어 맛을 낸 홍어회탕에 주인장이 한점 한점 떠주는 샤브샤브 맛은 또 어떤가?

초장부터 웬 먹는 타령이냐고 타박하실지 모르지만, 사실 이쯤되면 두 홍탁집의 홍보대사 역할은 톡톡히 한 셈이다. 두 집을 오며가며 교대로 대접받을 양으로 깔아놓은 포석이라는 것을 눈치챗을 터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 좀 해보자.

경제도 정치도 엉망이라고 아우성인데 앞선 홍보덕에 홍어집에라도 불났다는 소리 좀 들어봤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홍어맛을 제대로 알고나 나발 부는지는 모르겠지만, 홍어맛의 일미는 탁주사발에 묻어나는 이바구 맛이 일품이다. 내가 홍어맛을 알게 된 건 아마도 일명 예술노동자를 자임하는 진공재 선생을 만나고부터 인줄로 안다. 그이의 입담에 입천장이 홀라당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그 독한
홍어맛을 익혔다. 

그 후 내 나름의 홍어맛을 감별해가며 즐길 줄 알게 됐는데, 얼마전 그의 작업실 근처술집에서 몇몇 지인들과 술을 마시다가 ‘칼럼리스트가 아닌 시인 김대규와 홍어를’이란 타이틀로 공모 혹은 작당을 했다. 취중진담이랄까? 그때의 공모자들을 공개할작시면 70년대말부터 80년대를 주름잡던 과객들임에 틀림이 없다.

안양중앙시장에서 소극장을 운영하여 ‘서울말뚝이’ 마당극을 흥행시키고 ‘하늘새’를 끝없이 유포시키는 조각가 이강식과 80년대 ‘노동의 새벽’과 ‘저 놀부 두 손에 떡들고’로 유명한 작곡가 김용수와 벽산로에서 도장을 파다 전각의 달인이 된 나의 홍탁 전수자 진영근과 사람과 흙을 떡 주무르듯하는 털보도사 김석용이다. 

김대규 시인이 젤 먼저 도착해 ‘은어가 돌아오는 길’의 김영래 시인 일행과 합석해 판이 커지더니 우연찮게 장터문화제로 깃발 날리던 민예총의 대빵 송경호와 한옥목수 김영부가 합석해, 본격적인 말판과 술판이 이어졌다. 모두 다 입담들이 센지라 술맛이 절로 나더니 급기야 진공재 붓질로 재탄생한 김대규 시인의 ‘가을의 노래’란 시가 대자보처럼 벽에 걸리고 주모의 낭랑한 목소리로 시낭송이 이어지며, 또다른 공모 혹은 작당이 시작되더라. 굳이 공모의 제목을 붙이자면
‘안양문화 심포지엄’이다. 그 공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보수든 진보든 토박이든 반토박이든 진정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좋다. 11월 마지막 날 밤에 만나 문화판 노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으니, 이글을 읽고 땡기는 사람은 모두 오시라. 11월의 마지막 밤에 시름과 일손 잠시 놓으시고 진정한 음주가무의 꾼들과 끼와 꿈을 나눠보심이 어떨까?

장소와 시간은 별도공지, 여성우대

2004-11-26 15:5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