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기억

[최승원]삼성산자락 삼성국민학교 재학 시절(2020.05.11)

안양똑딱이 2020. 5. 12. 16:16

 


1957년 9월초 집에서 북서로 1,2km 20분 거리 삼성초등학교 5학년2학기 편입하였다. 교사는 목조木造단층으로 가운데 현관을 두고 좌우 각 3개 교실을 배치하였다. 저학년은 오전오후로 나누어 사용하였다. 5학년은남36명 여29명 합 65 명이었다. 하순용등 하 씨들이 학교뒷동네 집성촌이라 똘똘한 학생들이 다녔다. 수영특기학교 이고, 광명초교에서 열리는 시흥군 체육대회준비로 축구 등 종일 운동만하고 있었다, 단체로 트럭을 타고 가서 나는 축구선수로 라이트하프를 맡아서 뛰었다. 가을소풍에는 삼성산과 관악산사이 고개를 도보로 넘어 낙성대 강감찬 장군 유적지에 다녀왔다. 산에는 아주 큰 노송老松들이 많았다. 학교 가는 길목에 미군부대(83병기대대)가 있었는데 철조망 밖으로 천연색 서부영화를 잠시 볼 수 있었고, 인근 미군부대 쓰레기통에는 포르노사진, 잡지, 건축과도시사진, 아주 두꺼운 상품소개 책, 깡기리 등을 보았다. 일본은 캔 따는 깡그리 에 U,S,A 대신 USA로 표시 모방한다고 어린이들이 흉을 보았다.미국은 TV안테나가 잠자리 떼만큼 많다고 이야기를 하였고,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위해 먹는냐?’ 논쟁을 초등생들이 하였는데 지금은 건강식이지만 나는 보리밥(보리7:쌀3)이 먹기 실어 ’살기 위해 먹는다‘고 말하였다. 미술대회에 나가는 학생은 일제크레파스가 공급 되었다. 당시는 국산연필이 조악하여 운크라원조, 미국의 원조로 공급되는 노트와 미제연필을 사용하였다.가을견학에는 학교 동편으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는 건축가 강명구 설계의 동양최대 안양영화촬영소에 견학 가서 ‘성웅 이순신’ 특수촬영 수조장치를 보고 설명도 들었다.6학년 봄 비가 많이 오자 농번기 지원하라고 집으로 보낸다. 동급생 조씨는 안양유원지에서 수영하다가 물막이 물살이 세어 틈새에 붙어 사망하였고, 여동생 조씨는 성장후 국제선수가 되었다.어느날 안양사가는 중턱 김창룡 장군 장례행사에서 우울하게 서있는 이승만대통령을 근거리에서 보았다. 강명구가 설계한 안양영화촬영소 기공식 정초식에 2번을 합하면 50년대 이승만대통령은 석수동에 3번 방문한 것이다.가을에는 주산대회가 있기에 담임은 군내경진대회에서 일등하면 상금을 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야간까지 열심히 하여 일등을 하였다. 상금을 기다렸지만 단임 선생님은 졸업시 상금대신 콘사이스 한권을 주었다. 변경이 되어 아쉬웠다. 4개의 초등학교 2년2학기~3학년 1년 반의 공백 1년 휴학을 거쳐 간신이 초교를 졸업했다.#시흥군 #안양읍 #삼성산

 

 

옛 기억을 끄집어낸 최승원님은 1945년생으로 서울(종로구)에서 태어나 5살때 안양으로 이사를 와 시대동(현 안양1동)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안양초교와 삼성초교(5회), 안양중학교(12회)를 다녔다. 교육부 실업계 교과서 심의위원, 국립중앙박물관회 평의원, 홍익대학교. 성균관대학교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 한국건축가협회 이사 및 분과위원장, 앙가주망건축사무소 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최승원 건축도시문화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6년 본백화점 갤러리에서 최승원건축전을 개최했으며, 1998년 아카시아arcasia건축상 골든메달(천안티센쿠루프)수상했다. 건축 현장에 돌아다니는 나무조각을 수집하여 조형물을 만들던 취미가 이제는 제2의 인생 작업이 되어 부인인 신영옥 섬유공예작가와 부부작품 전시회를 수차례 열기도 했다.
안양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는 최승원 건축사로 부터 옛 안양에 대한 기억구술자리를 가진바 있는데 세밀한 기억력으로 담아낼 양이 많아 세차례 가진바 있는데 유년시절, 한국전쟁 피난시절, 기차통학생 시절, 전쟁이후 안양의 거리모습, 교회, 안양영화촬영소에 대한 기억과 비롯 광복직전인 일제강점기 비행기공장과 비행장 건설, 안양지역의 건축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구술 내용은 2018년 자료집으로 발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