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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안양유원지 역사와 유원지 개발 계획의 현주소

안양똑딱이 2016. 6. 11. 09:04

1970년대까지만 해도 여름철 하루 약 2만명의 행락객이 찾아와 유원지 입구에 간이기차역이 설치되고 풀장까지 임시버스를 운행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던 안양유원지에는 길목의 넓다란 안양포도밭과 함께 제1.2풀로 불리우던 자연풀장과 상류쪽에 인공형태의 대형풀장, 만안각수영장, 맘모스수영장, 안양관광호텔 수영장들이 자리한 가운데 안양을 대표하는 수도권의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해 왔다.

특히 안양학연구소(소장 문원식. 성결대 교수)에 따르면 안양유원지는 조선왕조실록 태종 17년 편에 의하면 태종 17년 금천 현감 김 문과 수원 부사 박 강생이 과천 현감 윤 돈의 전별잔치가 계곡에서 열리는 등 오랜 역사성뿐 아니라 1930년대이후 70년대까지 안양지역 초등학교들의 소풍지로 안양사람의 휴식처이며 서울이나 수원 등 인근지역 사람들도 즐겨 찾던 명소였음을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공식적인 안양유원지의 출발은 1932년 당시 일본인 안양역장 혼다 사고로(本田貞五郞)가 철도수입 증대와 안양리 개발을 위하여 조한구 서이면장과 야마다(山田) 시흥 군수 및 지역유지들을 설득 당시 1,500원의 예산으로 계곡을 막아 2조의 천연수영장을 만들어 안양풀이라고 명명한 데서 비롯된다.

이후 1969년 1월 21일 당시 교통부가 국민관광지로 지정함에 따라 안양풀 대신 안양유원지란 명칭으로 불려지기 시작했으며 1971년 7월30일 건설부 고시 제447호로 개발제한구역(일명 그린벨트)으로 지정된 데 이어 1973년에는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건축 및 재건축이 억제되는 당국의 특별관리하에 들어가면서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더욱이 230명의 인명피해를 낸 1977년의 안양 대홍수는 기존 유원지의 경관을 완전히 초토화시키고 안양풀은 상류에서 내려온 토사에 휩쓸려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리는 등 천혜의 자연경관이 훼손되자 교통부는 1984년 11월 28일 국민관광지 지정을 취소하였으며 이에 안양시는 조례로서 1900년 비지정관광지로 지정해 입장료와 쓰레기수거료를 1900년까지 행락철에 한해 받으며 관리해왔다.

문원식 교수는 지금도 당시 만든 안양풀장의 둑과 탈의용 계단의 형태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자연석으로 된 초석에는 '안양풀 소화 7년 8월 준공(安養 プ-ル 昭和 七年 八月 竣工)'이라는 명문과 마쓰모도(松本)라는 공사책임자의 이름도 확인할 수 있으나 초석의 3분의 2 가량이 1977년 대홍수 후 보의 붕괴를 우려해 덮은 콘크리트로 마지막 글자를 판독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후 안양시는 안양유원지의 명성을 되찾고, 지역경제활성화 및 지역개발 차원에서 유원지를 다시금 바라보기 시작, 1994년 3월 28일에 승인된 '2011년 안양시도시기본계획'에서 안양유원지를 도시공원에서 제척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1995년 3월 6일에는 도시계획을 재정비 입안하며 공원지구를 해제했으며, 이어 경기도에서도 경기도고시 제 462 호로 공원해제를 고시했다.

이어 1995년 지방자치의 실시로 민선시장체제가 출범하면서 선거 때마다 유원지 정비 및 개발계획은 주요 공약의 하나로 등장해 1996년 말 안양유원지를 그린벨트지역 내 주거환경개선지구로 지정하면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었고, 안양시는 유원지개발기획단이라는 상설기구를 설치하여 유원지 개발을 위한 실천계획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6년 안양시가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의뢰해서 만든 '안양시 산업발전계획'에 유원지개발계획이 들어 있었으나 실시되지는 않았으며, 안양시가 국토연구원에 발주해 2000년 8월 발표한 '안양비전 21'에서는 안양유원지를 인근에 산재한 역사유적을 포함해 안양의 자연경관. 역사경관으로 선정해 발굴해야 한다고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특정목적 및 지구단위 사업 투자의 평가기준별 사업순위에 있어 안양유원지는 시급성은 중장기적사업으로 후 순위일 뿐 아니라 평가구분에 의한 사업의 용이성 역시 보통, 수익성은 비수익, 기대효과는 높음으로 관리 및 정비차원의 사업이 우선적으로 가능할 것이나 평가 절하된 채 안양유원지 정비는 2006년 이후로 밀렸으며 더욱이 시대의 변화에 따른 벤처기업 유치 등의 우선 순위에 뒷전이다.

이와는 별도로 안양시는 그동안 유원지 개발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고 여러 종의 계획을 세워온 가운데 그동안 추진해 온 안양시의 유원지개발계획을 살펴보면 지역의 특성에 적합한 토지이용계획 수립, 기존 공간의 성격에 적합한 시설물을 배치해 토지이용의 효율성 도모, 주변 자연환경이나 문화유산 및 비산도시자연공원과의 조화를 이루는 효율적인 개발 추구 등을 지향하며 총 사업비 155억 원을 투여 물을 중심으로 자연과 문화가 교류하는 공간조성을 목표로 2005년 7월까지 3단계의 계획으로 나누고 있다.

여기서 안양유원지란 6개동 195만 평에 달하는 비산도시자연공원 내에 있는 안양 2동과 석수 1동 일원의 5만4천평에 달하는 삼성천변의 계곡을 말하며 향후 도시의 기능 및 미관의 향상, 공공 편의시설의 입지로 인한 시민편의의 증진, 주민 소득증대와 지역경제활성화 및 세수확대, 주거환경 개선효과 및 수도권 남부지역의 새로운 명소 탄생 등을 기대하고 있다.

1단계인 1999년까지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주거환경개선계획고시('97. 12, 안양시고시 제 104 호), 시유지불하('98. 6), 유원지 내 건축허가 중지(보류) 통보('99. 4), 안양유원지 명소화 추진을 위한 기본방향 설정('99. 6), 삼성천 상류 서울농대 수목원 내 소형저수지 설치 타당성 용역발주('99. 7), 주변공원조성계획 용역발주('99. 10), 도시설계구역지정 공고('99, 11), 삼성천 용수확보 댐 설치 타당성 조사용역 준공('99. 12) 등이다.

2000년부터 시작된 제 2 단계 사업은 2001년까지 개발제한구역이 완화될 때를 대비한 관계법규를 재검토하는 작업과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도시설계작성(2000. 3), 도시설계완료(2000. 10), 기반시설 설치 및 확보와 건축물 개량(2001), 수익시설 수용 등이며 마무리단계인 3단계(2002-2005)부터는 비산도시자연공원과 연계한 유원지개발을 가시화 하여 수도권의 명소로서 거듭난 안양유원지를 만들어 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특히 안양유원지 입구 낙원마을은 입구에 장승 및 솟대를 설치하고, 양반집, 초가집, 공방, 주막 등의 전통가옥과 그네, 씨름, 농악놀이마당 등을 갖춘 전통 한옥마을로 조성하는 한편 부대시설로는 민속예절관을 건립하고,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각종 다채로운 이벤트를 진행하며 낙원마을 뒤편의 구릉지대에는 안양포도단지와 포도광장을 화심천과 연계하여 조성함으로써 향토문화를 구현할 수 있는 마을마당을 만드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삼성천 유원지계곡 주변의 144개의 점포와 주택은 먹거리와 관련한 카페마을로 조성한다는 계획으로 이미 불하를 끝낸 상태로 무분별한 건축에 대비해 건물의 층수, 지붕의 형태, 색상 등에 이르기까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여 자연환경에 적합한 재료와 색상이 선정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문화예술기능과 청소년의 놀이기능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이외 야외콘서트를 열 수 있는 벽천광장, 음악분수와 터널식 분수를 갖춘 분수광장 등 2개의 대형광장을 만들고, 복합행정지원센터와 같은 복지회관 건립, 유원지내 차량통제에 대비 기존 유원지입구의 주차장 주변부지를 추가 매입해 주차용량을 늘리는 한편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를 개발하고, 낙원마을의 민속놀이와 연계한 화심천 우물축제, 벚꽃축제, 젊음의 축제와 등산대회 등 자연을 이용한 다채로운 이벤트 행사를 개최한다는 방침이다.

이와함께 안양유원지를 둘러싸고 있는 비산자연공원에는 자연체험장, 서바이벌게임장, 조각전시장, 다목적운동장 및 전망대 등을 유원지와 연계하여 설치함으로써 푸른 숲, 맑은 물, 젊음이 역동하는 수도권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만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그러나 안양시 국장급이 단장으로 자리해 진두 지휘했던 안양유원지 개발계획단은 해체상태와 다름없는 형태로 축소되었으며 단지 형태로의 조성이 아닌 기존 144개의 유원지 계곡 주변 점포와 주택의 무분별한 불하, 계곡의 산자락을 훼손하며 만든 우회도로의 개설, 하천 범람과 홍수방지를 우려한 하천의 콘크리트 직벽화 등은 자연이 인간이 공존하는 새로운 유원지의 모습을 꿈꾸던 시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점점 시민들의 곁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실정이다.

따라서 수량부족을 고민하며 안양시가 최근 안양유원지 상류 농대수목원 계곡에 대형 댐을 건설한 의도와 같이 맑은물이 지속적으로 흐르는 유원지 계곡이 되기 위해서는 물을 저장하는 보의 역할이 중요할 아니라 안양유원지의 첫 출발점으로서 역사적 가치와 추억의 현장이라 할 수 있는 토사에 묻혀버린 안양풀을 복원하는 것도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어 진지하게 검토할 가치가 있다.

이와함께 안양시가 안양시민의 정주의식(定住意識)과 자긍심(自矜心)을 고취시키고, 안양을 홍보하고 소개하는데 활용하고자 2003년 6월 10일 선정한 안양8경에 안양유원지(안양 제6경)와 삼막사 남녀근석(안양 제2경)이 포함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도 안될 것이다.

더욱이 당시 620여명의 시민이 추천한 306개소에는 안양유원지 인근에 자리한 문화유적들이 많았을 뿐 아니라 선정위원회에서도 관악산.삼성산을 중심으로 빼어난 경관과 역사적인 문화재들중 8경을 선별해내기가 그리 쉽지 않은 점 역시 안양의 상징성과 역사성이 이곳에 존재함으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