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6]수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회장
안양시는 116억 7천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병목안 삼거리(버스 가는 창박골길과 담배촌길이 갈라지는 곳;요즘 우회도로 공사를 시작하여 교량공사중인 지점의 삼거리)에서 수리산 깊은 산속(큰골), 공군부대 입구까지 길을 넓힌단다.
어제 오늘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길 넓힌다는 얘기가 나온 건 아마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다.
도로개설 3.1km, 폭 10~12m, 이번에는 구체적인 수치가 밝혀졌으니 하긴 할 모양이다.
이제까지 담배촌 다니던 길은 정식(?) 지적도상에는 마차길도 안되는 오솔길 정도였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길도 없는데 어떻게 다녔을까 하는 의문이 말이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차가 아주 잘 다니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건 이렇다.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하자면 - 수리산속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기록은 불과 삼백년 안쪽이다. 그 이전 일은 구전이나 전설로 내려올 뿐이니,,, 알길이 없고,..
암튼 극악무도하고 국법을 어긴 天主學쟁이(천주교인을 비하시킨 말) 죄다 잡아 죽였던 시절, 이곳으로 박해를 피하여 온 天主敎 교인들이 숨어살면서부터 하나의 촌이 비밀리에 생기는데 그게 "담배촌"이다.
그들이 다니던 오솔길 정도가 넓어져 지금의 길인데...여기서 잠시!
이 땅을 강점한 왜놈들이 대륙침탈을 위한 교두보로 삼천리 금수강산을 유린한 후 대량운송수단인 철도가 필요했겠지?
문둥바위는 일찌감치부터 눈치 챘을까?
바위 앞으로 흐르는 맑은 개울물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때로는 개울물과 대화를 주고 받으며 평화롭게 살던 문둥바위는 어느날 천지개벽하는 소릴 듣는다.
가끔씩 듣던 한 여름의 천둥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소리, 왜놈들이 채석을 시작하면서 터트리는 남포소리였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터졌고, 그때마다 주먹만한 돌맹이가 파편처럼 날아와 콧등이며 등짝을 때렸다.
개울 앞에 있어 오손도손 사이좋게 지내던 청석바위도 어느날 남포 몇방에 작살나서 급기야 자갈 신세가 되어 어디론가 실려갔다.
왜놈들은 청석바위를 비롯한 이곳 채석장의 자갈들을 경부선에 쫘~악 깔아놓는다. 말하자면 수리산의 정기(?)가 경부선에 쫘~악 깔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왜정때 시작한 돌캐기 사업은 썩은 돌이 나와 그만 두게 된다. 그만 둔 게 채 20년도 안되지 아마? 남포소리가 멎은 건 전두환 정권때이고, 안양역까지 연결되어 있던 철로를 뜯어낸 건 노통때였다.
왜놈들이 수리산에서 가져간 것은 돌뿐이 아니였다. 아름드리 나무들을 죄다 벌목해서 일본으로 가져갔다. 벌목한 나무를 운반하는 도라꾸가 다니자면 길을 넓혀야 했다.
천주교인들이 짚세기 신고 다니던 좁은 길을 무단으로 점령해서 썼다. 그리고, 해방 후 수리산 꼭대기에 미군 통신대가 들어오면서 2차선으로 또 맘대로 넓혔다. 이번엔 양키들이었다.
쪽바리나 양키들에게는 보상같은 개념은 사전에 없는 말이었다. 그들은 단지 점령군(?)일 뿐이었다. 안전사고가 나자 미군 통신대는 떠났다. 그후 오랫동안 비어둔 부대터에 이번엔 국군 정예공군이 들어왔다.
이제 문둥바위의 운명도 얼마 남지 않았다. 유심히 본 사람은 벌써 알아들었을 것이다. 바위 뒤로, 옆에 있는 산소 뒤로 빨간 깃발이 꽂혀 있는 것을...
그만큼 도로가 넓어진다는 뜻은, 이제 담배촌 가는 길도 정식(?) 도로가 된다기보다 곧 문둥바위가 이제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이 문둥바위가 중요하냐 하면, 이 지점부터 "담배촌"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태고부터 있어왔던 문둥바위는 이제 전설 속으로 사라지는가? 왜놈들한테 코 부러지고, 양놈들한테 허리 잘린 채 그나마 살아왔던 문둥바위..
6.25 한국전쟁 1,4후퇴때는 중공군 일개 사단(제18사단이라지..) 이 바위 앞을 지나 수리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고, 수원 비행장 부근에서 미군이 때린 곡사포에 사단 병력이 죄다 죽어 몇명만 도망가는 것을 지켜보았던 문둥바위..
여기에 대한 이야긴 후에 담배촌편에서 상세히 다루기로 한다.
안양시는 이 도로개설에 금년 예산을 48억 4천만원 세웠는데,...왜정때부터 7~80년간이나 아얏 소리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땅을 본의 아니게 빼앗겨(?) 온 불쌍한 사람들에게 후하게 보상을 해주는 것이 도리라고 본다.
"수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http://cafe.daum.net/susasa
#공군 제8249부대는 산악인을 위한 등산로를 개방하라!
#창박골과 박달 예비군 훈련장도 등산로를 개방하라!
#보안상 개방이 어려우면 우회등산로를 확보해 달라!
어제 오늘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길 넓힌다는 얘기가 나온 건 아마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다.
도로개설 3.1km, 폭 10~12m, 이번에는 구체적인 수치가 밝혀졌으니 하긴 할 모양이다.
이제까지 담배촌 다니던 길은 정식(?) 지적도상에는 마차길도 안되는 오솔길 정도였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길도 없는데 어떻게 다녔을까 하는 의문이 말이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차가 아주 잘 다니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건 이렇다.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하자면 - 수리산속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기록은 불과 삼백년 안쪽이다. 그 이전 일은 구전이나 전설로 내려올 뿐이니,,, 알길이 없고,..
암튼 극악무도하고 국법을 어긴 天主學쟁이(천주교인을 비하시킨 말) 죄다 잡아 죽였던 시절, 이곳으로 박해를 피하여 온 天主敎 교인들이 숨어살면서부터 하나의 촌이 비밀리에 생기는데 그게 "담배촌"이다.
그들이 다니던 오솔길 정도가 넓어져 지금의 길인데...여기서 잠시!
이 땅을 강점한 왜놈들이 대륙침탈을 위한 교두보로 삼천리 금수강산을 유린한 후 대량운송수단인 철도가 필요했겠지?
문둥바위는 일찌감치부터 눈치 챘을까?
바위 앞으로 흐르는 맑은 개울물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때로는 개울물과 대화를 주고 받으며 평화롭게 살던 문둥바위는 어느날 천지개벽하는 소릴 듣는다.
가끔씩 듣던 한 여름의 천둥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소리, 왜놈들이 채석을 시작하면서 터트리는 남포소리였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터졌고, 그때마다 주먹만한 돌맹이가 파편처럼 날아와 콧등이며 등짝을 때렸다.
개울 앞에 있어 오손도손 사이좋게 지내던 청석바위도 어느날 남포 몇방에 작살나서 급기야 자갈 신세가 되어 어디론가 실려갔다.
왜놈들은 청석바위를 비롯한 이곳 채석장의 자갈들을 경부선에 쫘~악 깔아놓는다. 말하자면 수리산의 정기(?)가 경부선에 쫘~악 깔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왜정때 시작한 돌캐기 사업은 썩은 돌이 나와 그만 두게 된다. 그만 둔 게 채 20년도 안되지 아마? 남포소리가 멎은 건 전두환 정권때이고, 안양역까지 연결되어 있던 철로를 뜯어낸 건 노통때였다.
왜놈들이 수리산에서 가져간 것은 돌뿐이 아니였다. 아름드리 나무들을 죄다 벌목해서 일본으로 가져갔다. 벌목한 나무를 운반하는 도라꾸가 다니자면 길을 넓혀야 했다.
천주교인들이 짚세기 신고 다니던 좁은 길을 무단으로 점령해서 썼다. 그리고, 해방 후 수리산 꼭대기에 미군 통신대가 들어오면서 2차선으로 또 맘대로 넓혔다. 이번엔 양키들이었다.
쪽바리나 양키들에게는 보상같은 개념은 사전에 없는 말이었다. 그들은 단지 점령군(?)일 뿐이었다. 안전사고가 나자 미군 통신대는 떠났다. 그후 오랫동안 비어둔 부대터에 이번엔 국군 정예공군이 들어왔다.
이제 문둥바위의 운명도 얼마 남지 않았다. 유심히 본 사람은 벌써 알아들었을 것이다. 바위 뒤로, 옆에 있는 산소 뒤로 빨간 깃발이 꽂혀 있는 것을...
그만큼 도로가 넓어진다는 뜻은, 이제 담배촌 가는 길도 정식(?) 도로가 된다기보다 곧 문둥바위가 이제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이 문둥바위가 중요하냐 하면, 이 지점부터 "담배촌"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태고부터 있어왔던 문둥바위는 이제 전설 속으로 사라지는가? 왜놈들한테 코 부러지고, 양놈들한테 허리 잘린 채 그나마 살아왔던 문둥바위..
6.25 한국전쟁 1,4후퇴때는 중공군 일개 사단(제18사단이라지..) 이 바위 앞을 지나 수리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고, 수원 비행장 부근에서 미군이 때린 곡사포에 사단 병력이 죄다 죽어 몇명만 도망가는 것을 지켜보았던 문둥바위..
여기에 대한 이야긴 후에 담배촌편에서 상세히 다루기로 한다.
안양시는 이 도로개설에 금년 예산을 48억 4천만원 세웠는데,...왜정때부터 7~80년간이나 아얏 소리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땅을 본의 아니게 빼앗겨(?) 온 불쌍한 사람들에게 후하게 보상을 해주는 것이 도리라고 본다.
"수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http://cafe.daum.net/susasa
#공군 제8249부대는 산악인을 위한 등산로를 개방하라!
#창박골과 박달 예비군 훈련장도 등산로를 개방하라!
#보안상 개방이 어려우면 우회등산로를 확보해 달라!
2003-07-16 05: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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