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7/08]수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회장
바위이름이 "문둥바위"였다. 무지 무서웠다.
그 바위가 문둥바위여서가 아니라, 도로가 급하게 우로 굽어짐을 준비하는 곳이고, 바위 앞으로 흐르는 개울에 놓인 엄청 큰 바위 밑에서 식구끼리 잘 살고 있던 자라 몇 마리 잡아 몸보신하겠다고 어느 어른이 자신이 붙인 남포불(Dynamite;니트로글리세린 75%를 규조토 25%에 흡수시켜 만든 폭발약) 에 맞아 죽어자빠진 자리 앞이라서 더 무서웠을까??
더우기 문둥바위 바로 옆에는 산소가 한 기 턱 버티고 있다.
문둥이는 못보았다. 적어도 거기에선 말이다. 훗날, 무슨 취재차 간 "나자로마을'에선 보았지만, 어린 시절, 적어도 우리 꼬마 녀석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던 바위- 바로 문둥바위였다.
아직도 얼굴에 <입산금지>라고 써있다. 무지 오랜 세월 동안 문둥바위는 <입산금지>바위로 거기 있어 왔다.
임업시험장 사람들이 써놓은 건 아마도 40년도 더 전의 일이다. 내가 어릴 때, 우리는 이렇게 읽었다.
.... <지금산입>....
말하자면, < 지금 산에 들어 가라?>... 우리는 꽤 영리한 아이들이었을까?
아니면, 한글도 까꾸로 읽으는 아주 멍청한 아이들이었을까?
아님, 왜놈들이 지은 엉성한 교실에서 배우는 아이들답지 않게시리 당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던 한문까지 벌써 깨우친 아주 똘똘한 아이들이었을까?
@문둥바위의 위치:병목안을 올라온 노선 버스들이 삼거리에서 우측(창박골 버스종점)으로 가고, 수리산 산림욕장쪽은 좌측길이다.
담배촌 가는 길! 첫번째 한증탕 지나 120M위 쯤, 거 공익요원들(빨간모자쓰고) 차 트렁크 검색하는 곳 4~5M 위 우측 시커먼 바위; 바위위 뒷산으로는 니키타 소나무 줄지어 서있다.
왜정 때부터 파들어간 채석장의 흉한 몸골이 12시 방향에 있다.
@무지 궁금한 것 하나; 예의 "빨간모자"들이 산불난다고(그것도 한여름에) 올라오는 차마다 검문해서(그래서, 담배촌 오는 차가 안양역까지 막혔대나 어쨌대나..) 압수(?)한 무지多한 부루스타- 거 죄다 어쨌수?
알기로는, 기분나빠서 찾으러 가지 않았던 사람들이 多이던데... @그 많은 부루스타는 누가 엿 사먹었을까? 만안구청? 안양시청?
@이야기 다음 주(?) 계속...
얼굴에 <입산금지>라고 쓰여있다는 얘긴 (1)에서 하였지만, 실은 그 부분은 문둥바위의 어깨쯤된다고 보면 된다. 60~7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이 바위가 개울에 거의 닿아 있었다.
새색시 태운 가마가 겨우 통과하였다고 한다.(믿거나 말거나?...? 웃기지 마라. 우리 어머니 시집오실 적 얘기이니, 이건 실화이다.)
암튼, 왜놈들이 이땅을 강점한 후, 벌목해가기 위해 앞부분을 조금 훼손하여 도라꾸가 다니던 길을 지금처럼 넓힌 건, 양놈들이었다.
지금의 공군부대 자리에 미군 통신대가 들어온 게 아마 43,4년 전 쯤의 일이다. 석수동 미군부대에서 파견나온 작은 통신부대였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에 오는데 난리가 났다. 이상하게 길이 넓어져 있었고, 넓어진 길은 딱딱하게 다져져 있었고, 다져져서 이상하게 넓어진 길바닥에는 주먹만한 자갈들이 깔려있었다.
못보던 차(군덤프, 군불도저, 군포크레인, 군페이로다, 지프 등이) 마냥 신기했다.
위문편지에나 썼던 씩씩한 국군 장병 아저씨도 있었고, 새까만 미군도, 하얀 미군도 있었다. 촌놈이 양키(외국)놈 보는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키가 무지 크다는 것, 뚱뚱한 것, 팔에 누런 털이 많이 났다는 것, 도통알아 들을 수 없는 말만 골라 한다는 것, 깜둥이는 정말로 세수하나마나이다.라는 것이 그때 받은 첫 인상이었다.
무지 무서웠다. 더 무서웠던 것은- 처음 보는 그 무서운 녀석들이 문둥바위를 뭉텅 짤라서 지금의 그꼴로 만들었다는 거였다.
그게 더 무서웠다. 우리가 아는 한 오함마로 죽을 때까지 두둘겨대도 부서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문둥바위가 아니였던가! .....
우리는 마차길 정도, 왜놈들은 1차선 정도, 양놈들은 2차선 정도로...차츰 넓혀 왔다. 이게 무슨 잘 사는 나라순인가?(가만 보면 그러네...)
그건 모르겠다. 다만, 문둥바위를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밖에는... 왜냐?.... ^^* ^^* ^^*
@다음에 이어짐
@재미있어야 신이 나서 쓰는데...@암튼 "수리산 이야기"는 넉넉잡아 한 백 회 이상 써야 끝날 껴...
수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http://cafe.daum.net/susasa
# 공군 제 8249부대는 산악인을 위한 등산로를 개방하라!
# 창박골과 박달 예비군 훈련장은 산악인을 위한 등산로를 개방하라!
#최소한 일요일(공휴일)만이라도 등산로를 개방하라!
#보안상 불가하면 철조망 따라 우회등산로를 개방하라!
그 바위가 문둥바위여서가 아니라, 도로가 급하게 우로 굽어짐을 준비하는 곳이고, 바위 앞으로 흐르는 개울에 놓인 엄청 큰 바위 밑에서 식구끼리 잘 살고 있던 자라 몇 마리 잡아 몸보신하겠다고 어느 어른이 자신이 붙인 남포불(Dynamite;니트로글리세린 75%를 규조토 25%에 흡수시켜 만든 폭발약) 에 맞아 죽어자빠진 자리 앞이라서 더 무서웠을까??
더우기 문둥바위 바로 옆에는 산소가 한 기 턱 버티고 있다.
문둥이는 못보았다. 적어도 거기에선 말이다. 훗날, 무슨 취재차 간 "나자로마을'에선 보았지만, 어린 시절, 적어도 우리 꼬마 녀석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던 바위- 바로 문둥바위였다.
아직도 얼굴에 <입산금지>라고 써있다. 무지 오랜 세월 동안 문둥바위는 <입산금지>바위로 거기 있어 왔다.
임업시험장 사람들이 써놓은 건 아마도 40년도 더 전의 일이다. 내가 어릴 때, 우리는 이렇게 읽었다.
.... <지금산입>....
말하자면, < 지금 산에 들어 가라?>... 우리는 꽤 영리한 아이들이었을까?
아니면, 한글도 까꾸로 읽으는 아주 멍청한 아이들이었을까?
아님, 왜놈들이 지은 엉성한 교실에서 배우는 아이들답지 않게시리 당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던 한문까지 벌써 깨우친 아주 똘똘한 아이들이었을까?
@문둥바위의 위치:병목안을 올라온 노선 버스들이 삼거리에서 우측(창박골 버스종점)으로 가고, 수리산 산림욕장쪽은 좌측길이다.
담배촌 가는 길! 첫번째 한증탕 지나 120M위 쯤, 거 공익요원들(빨간모자쓰고) 차 트렁크 검색하는 곳 4~5M 위 우측 시커먼 바위; 바위위 뒷산으로는 니키타 소나무 줄지어 서있다.
왜정 때부터 파들어간 채석장의 흉한 몸골이 12시 방향에 있다.
@무지 궁금한 것 하나; 예의 "빨간모자"들이 산불난다고(그것도 한여름에) 올라오는 차마다 검문해서(그래서, 담배촌 오는 차가 안양역까지 막혔대나 어쨌대나..) 압수(?)한 무지多한 부루스타- 거 죄다 어쨌수?
알기로는, 기분나빠서 찾으러 가지 않았던 사람들이 多이던데... @그 많은 부루스타는 누가 엿 사먹었을까? 만안구청? 안양시청?
@이야기 다음 주(?) 계속...
얼굴에 <입산금지>라고 쓰여있다는 얘긴 (1)에서 하였지만, 실은 그 부분은 문둥바위의 어깨쯤된다고 보면 된다. 60~7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이 바위가 개울에 거의 닿아 있었다.
새색시 태운 가마가 겨우 통과하였다고 한다.(믿거나 말거나?...? 웃기지 마라. 우리 어머니 시집오실 적 얘기이니, 이건 실화이다.)
암튼, 왜놈들이 이땅을 강점한 후, 벌목해가기 위해 앞부분을 조금 훼손하여 도라꾸가 다니던 길을 지금처럼 넓힌 건, 양놈들이었다.
지금의 공군부대 자리에 미군 통신대가 들어온 게 아마 43,4년 전 쯤의 일이다. 석수동 미군부대에서 파견나온 작은 통신부대였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에 오는데 난리가 났다. 이상하게 길이 넓어져 있었고, 넓어진 길은 딱딱하게 다져져 있었고, 다져져서 이상하게 넓어진 길바닥에는 주먹만한 자갈들이 깔려있었다.
못보던 차(군덤프, 군불도저, 군포크레인, 군페이로다, 지프 등이) 마냥 신기했다.
위문편지에나 썼던 씩씩한 국군 장병 아저씨도 있었고, 새까만 미군도, 하얀 미군도 있었다. 촌놈이 양키(외국)놈 보는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키가 무지 크다는 것, 뚱뚱한 것, 팔에 누런 털이 많이 났다는 것, 도통알아 들을 수 없는 말만 골라 한다는 것, 깜둥이는 정말로 세수하나마나이다.라는 것이 그때 받은 첫 인상이었다.
무지 무서웠다. 더 무서웠던 것은- 처음 보는 그 무서운 녀석들이 문둥바위를 뭉텅 짤라서 지금의 그꼴로 만들었다는 거였다.
그게 더 무서웠다. 우리가 아는 한 오함마로 죽을 때까지 두둘겨대도 부서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문둥바위가 아니였던가! .....
우리는 마차길 정도, 왜놈들은 1차선 정도, 양놈들은 2차선 정도로...차츰 넓혀 왔다. 이게 무슨 잘 사는 나라순인가?(가만 보면 그러네...)
그건 모르겠다. 다만, 문둥바위를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밖에는... 왜냐?.... ^^* ^^* ^^*
@다음에 이어짐
@재미있어야 신이 나서 쓰는데...@암튼 "수리산 이야기"는 넉넉잡아 한 백 회 이상 써야 끝날 껴...
수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http://cafe.daum.net/susasa
# 공군 제 8249부대는 산악인을 위한 등산로를 개방하라!
# 창박골과 박달 예비군 훈련장은 산악인을 위한 등산로를 개방하라!
#최소한 일요일(공휴일)만이라도 등산로를 개방하라!
#보안상 불가하면 철조망 따라 우회등산로를 개방하라!
2003-07-12 06:50:15
'이야기보따리 >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료]안양유원지 역사와 유원지 개발 계획의 현주소 (0) | 2016.06.11 |
---|---|
[안양사]안양시의사회 창립당시와 80년대 초반 (0) | 2016.06.11 |
[안양사]시흥군의사회 시절과 안양시 의사회 창립 (0) | 2016.06.11 |
안양 상공에서 숨진 이근석 장군 (0) | 2016.06.11 |
[임부성]수리산의 불쌍한 문둥바위 (3) (0) | 2016.06.11 |
[임부성]어디까지가 수리산 '병목안'인가? (2) (0) | 2016.06.11 |
[임부성]어디까지가 수리산 "병목안"인가? (1) (0) | 2016.06.11 |
[임부성]수리산 문둥바위와 독구(dog) (0) | 2016.06.11 |
[문원식]몽당(蒙堂)선생 한항길(Ⅲ) (0) | 2016.06.11 |
[임종득]치열했던 모락산.수리산 전투 (0) | 2016.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