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안양의 다운타운
정진원/ 문학평론가/ 고향 의왕 청계동
50년 전 의왕의 덕장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어느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안양의 고모님 댁에 얼마 동안 기숙한 적이 있었다. 등잔불 밑에서 공부했던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전등불을 보았다. 저녁 어스름에 불이 들어오고, 밤늦게 나갔다.
고모님 댁 길 건너에 바로 안양읍사무소가 있었다. 읍사무소를 중심으로 당시 안양의 다운타운(down town), 전문용어로 중심업무지구(CBD)가 형성되어 있었다. 당시 도심지역에는 여러 행정기능이 집중되어 있어서 경관 상으로도 다른 지역과 확연히 구별되었다. 당시 안양읍사무소, 그 옆에 시흥군청, 군청에서 작은 길을 건너 맞은쪽에 안양경찰서가 가깝게 노른자위 트라이앵글을 만들고 있었다. 지금 ‘안양역-CGV안양-벽산사거리-임곡교(당시 수푸르지 다리)’ 사각형 안에 그것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읍사무소에서 좁은 길을 건너 옆에 고모님의 약방이 있었다. 약방이란 양약을 파는 지금의 약국이었는데 당시 안양에 몇 군데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읍사무소 조금 뒤쪽으로 이형래 의원이 있었다. 당시 안양에 유일한 병원이 아니었나 싶다. 의원 앞쪽으로 비교적 큰 양조장이 있었다. 거기서 찐 술밥 냄새가 근처에까지 흘러나오곤 했었다. 군청 남쪽 냉천동 방향으로 조금 가면 길가에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가 안양의 장로교회가 이른바 ‘예성’과 ‘기성’으로 분립되기 전의 모교회였을 것이다. 그 교회를 지나 조금 가다가 왼쪽으로 안양 성당이 있었는데 당시로서는 큰 규모의 성당이었다.
고모님 댁 약방에서 북쪽으로 치과의원이 있었고, 몇 발짝 나가면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늘어선 경수도로이고, 그 길 따라 왼쪽으로 100m쯤 가면 앞에 광장을 가진 안양역이 있었다. 천안에서부터 통근(학)차가 다니던 때이라 아침마다 일정한 시각이면 서울로 가는 중ㆍ고등학교 학생들과 통근자들이 떼로 몰려들고, 저녁이면 같은 사람들이 역에서 쏟아져 나오곤 했었다.
경수도로를 건너자마자 아주 오래 된 중국집 ‘신흥관’이 있었고, 그곳에 전족(纏足)한 안주인이 신기하게 보였었다. 당시 안양읍의 규모로 보았을 때 이 정도 범위까지가 안양의 다운타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가다가 왼쪽 수푸르지(지금 비산동)쪽으로 접어들면 바로 철길이 있고 거기를 건너면 바로 안양시장이었다. 지금 ‘주공뜨란채아파트’ 단지이다.
현재는 안양 여러 곳에 시장이 있지만, 당시에는 이곳이 유일한 시장이었다. 오일마다 장날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시장 끝에 안양천을 건너기 전에 왼쪽으로는 소시장이어서, 쇠말뚝이 여기저기 박혀 있었다. 소시장 반대편 안양천변으로 넓게 태평방직공장이 있었다. 지금 진흥아파트단지이다. 수푸르지 쪽에서 보면 그 공장의 옆모양이 마치 거대한 톱날처럼 보였었다.
다운타운 서쪽으로는 안양여중, 조금 더 나가서 안양중ㆍ공고가 있었다. 당시 안양공고에는 안양에 방직공장이 많아서 산학연계의 필요성이 있어서였던지 ‘염색과’라는 학과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군청 동쪽으로 나가면 안양국민학교가 당시에도 큰 규모의 학교로 읍사무소에서 조금 떨어진 동쪽에 있었다. 안양공고 근처에 금성방직공장, 안양시장 동편에 태평방직공장이 있었다. 두 공장이 아주 큰 규모의 공장이어서 여공원만 해도 수천 명이 되어서 당시 안양에 가면 옅은 쑥색 작업복을 입고 다니는 여공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안양 도심에 들려오는 안양 주변부 이야기 중에는 안양 ‘뿔장(풀장)’과 근처 포도밭, 뿔장 골짜기를 올라가면서는 너럭바위들이 개천 변에 널려 있었고, 한참을 올라가면 삼막사라는 절이 있었다. 뿔장 가는 경수도로변에 있었던 화단극장이 유일한 극장이었다. 당시 육군 헌병대원 몇 명이 고모님 댁에 하숙하고 있었는데, 그 헌병들이 화단극장을 임검하는데 따라붙어 영화 구경을 한 적도 있었다. 명학동, 박달동, 병목안, 석수동, 만안교 등이 조금 떨어진 변두리 동네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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