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경기도 안양시가 되었지만 전에는 시흥군 안양읍이었다. 시흥군에 딸린 하나의 읍이었다. 군에 딸린 면 소재지가 도시 모양을 갖춰가면서 인구수가 2~5만 명 정도가 되면 읍이 되었다.
당시 안양읍의 다운타운에 안양읍사무소, 남쪽으로 조금 떨어져서 시흥군청, 군청 맞은편 길 건너로 안양경찰서가 있었다. 그 길로 조금 나가면서 왼쪽으로 안양성당(지금 안양중앙성당)이 있었고, 거기서 성당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냉천동이었다. 언덕배기에 구세군 교회가 있었다.
읍사무소에서는 정오가 되면 사이렌이 울려서 정오를 알렸다. 시계가 드물던 시대의 관의 대민 서비스였다. 당시엔 교회들도 주일 오전 11시 예배를 알리기 위에서 30 분 전에 초종, 11 시에 재종을 쳤었는데, 그 종소리가 조용한 시골에서는 십리나 퍼져 나갔었다.
읍의 관할 구역을 읍내라 하였다. 그래서 오일장이라도 열리게 되면 주변 마을 사람들이 읍내 장터에 모여들었다. ‘읍내에 간다’ 하였다. 읍내에 한 번 다녀오는 일이 아주 큰일이었다. 남부여대(男負女戴) 행렬로 읍내에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진풍경이었다.
아직도 지방엔 읍이 있지만 전의 읍은 대부분 시로 승격되었고, 읍내 장터는 이제 대규모 상가, 상설시장으로 변화되었다. 천안시 동남구 오룡동의 천안군청이 있던 마을 읍내(리), 대전 대덕구의 진잠읍이 있었던 읍내(내동리), 제천시 청풍면 읍리의 읍내,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의 읍내 등 마을이름이 남아 있다.
정진원, 문학박사, 의왕시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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