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기행]안양에 보물이 있는 사실을 아십니까
안양에 보물이 있는 사실을 아십니까
보물 제4호 중초사지 당간지주
안양시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며 보물 제4호로 지정되어 있는 중초사지 당간지주가 최근 120일간에 걸친 수리복원공사의 완료로 제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공사는 당간지주의 북쪽 지주가 기울어져 이를 바로 세우기 위한 사업으로 총 공사비 3천만원(국비 2천1백만원, 도비 4백50만원, 시비 4백50만원)을 들여 지난 3월 28일 착공해 120일만인 지난 7월 24일 수리 및 복원을 완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복원공사 중 전체적인 공사는 (주)동안건설에서, 설계와 수리보고서는 세안 삼덕건축이, 발굴조사는 단국대 매장문화재 연구소에서 용역사업을 시행했다.
특히 이번 공사는 효율적이고 충분한 검토를 위해 설계 초기부터 고건축 전문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제시된 의견을 현장공사에 반영했으며, 석조불교 미술품인 점을 감안해 불교미술분야 전문위원의 자문을 추가로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당간지주는 사찰의 입구문에 지주를 설치하고 당에 깃발을 달아 불심의 위신과 공덕을 기리고, 중생을 계도할 목적으로 세운 당간을 고정하는 지주대를 말한다.
특히 보물 제4호인 중초사지 당간지주는 신라 흥덕왕 826년에 채석하여 그 이듬해인 827년에 완성한 것으로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조성연대의 명문이 남아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으며, 안양시 만안구 석수1동(212-1번지)에 위치해 있다.
또한 이번에 안양시에서 발간한 복원 및 수리보고서는 시굴조사에서 부터 복원공사에 이르기 까지의 전과정을 담고 있어 향후 문화재 복원시 자료의 활용은 물론 문화유산의 보존에 대한 기록물로서 활용가치가 높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당간지주(幢竿支柱)는 중초사지(中初寺沚) 삼층석탑(三層石塔)과 함께 남아 있으며 양 지주가 원상대로 85cm의 간격을 두고 동서(東西) 로 대립하여 있습니다. 아무런 조각이 없어 장식적(裝飾的)인 의장(意匠)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상부(上部)에는 약간의 가공(加工)이 있어 고식(古式)을 보이고 있습니다.
양 지주의 상부(上部)는 내측면(內側面)의 면위에서 바깥면으로 내려오면서 활 모양(線)을 그리며 위로부터 굴곡없이 깍여졌습니다. 당간(幢竿)을 고정시키는 간공(杆孔)은 양지주 모두상.중.하의 3곳에 간구(杆構)를 마련하여 장치하였는데 상부는 내면 상단에 장방공(長方孔)을 마련하여 간을 장치하였고 중하부는 관통된 원공(圓孔)에 간을 시설하게 되어있습니다.
기저(基底)에는 장대석(長臺石)의 기반석(基盤石)을 지주사이와 양지주의 외측에 각기 1매씩 깔아서 기대를 삼고 있으며 간대는 지주사이의 장대석 중심부에 원공을 시공하고 그 주변에 원대(圓帶)로 돌려서 마련한 간단한 간대입니다.
이곳을 중초사지(中初寺沚)라고 하는 것은 서쪽 지주의 바깥에 각자(刻字)한 명문(銘文)에 의한 것이며 이 지주는 신라(新羅) 흥덕왕 (興德王) 원년(元年)(826) 8월 6일에 채석하여 그 이듬해인 흥덕왕2년(827) 2월 30일에 세운 조성년대(造成年代)가 확실한 명문이 있는 국내 유일의 당간지주입니다.
보물 제4호 중초사지 당간지주
안양시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며 보물 제4호로 지정되어 있는 중초사지 당간지주가 최근 120일간에 걸친 수리복원공사의 완료로 제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공사는 당간지주의 북쪽 지주가 기울어져 이를 바로 세우기 위한 사업으로 총 공사비 3천만원(국비 2천1백만원, 도비 4백50만원, 시비 4백50만원)을 들여 지난 3월 28일 착공해 120일만인 지난 7월 24일 수리 및 복원을 완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복원공사 중 전체적인 공사는 (주)동안건설에서, 설계와 수리보고서는 세안 삼덕건축이, 발굴조사는 단국대 매장문화재 연구소에서 용역사업을 시행했다.
특히 이번 공사는 효율적이고 충분한 검토를 위해 설계 초기부터 고건축 전문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제시된 의견을 현장공사에 반영했으며, 석조불교 미술품인 점을 감안해 불교미술분야 전문위원의 자문을 추가로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당간지주는 사찰의 입구문에 지주를 설치하고 당에 깃발을 달아 불심의 위신과 공덕을 기리고, 중생을 계도할 목적으로 세운 당간을 고정하는 지주대를 말한다.
특히 보물 제4호인 중초사지 당간지주는 신라 흥덕왕 826년에 채석하여 그 이듬해인 827년에 완성한 것으로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조성연대의 명문이 남아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으며, 안양시 만안구 석수1동(212-1번지)에 위치해 있다.
또한 이번에 안양시에서 발간한 복원 및 수리보고서는 시굴조사에서 부터 복원공사에 이르기 까지의 전과정을 담고 있어 향후 문화재 복원시 자료의 활용은 물론 문화유산의 보존에 대한 기록물로서 활용가치가 높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당간지주(幢竿支柱)는 중초사지(中初寺沚) 삼층석탑(三層石塔)과 함께 남아 있으며 양 지주가 원상대로 85cm의 간격을 두고 동서(東西) 로 대립하여 있습니다. 아무런 조각이 없어 장식적(裝飾的)인 의장(意匠)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상부(上部)에는 약간의 가공(加工)이 있어 고식(古式)을 보이고 있습니다.
양 지주의 상부(上部)는 내측면(內側面)의 면위에서 바깥면으로 내려오면서 활 모양(線)을 그리며 위로부터 굴곡없이 깍여졌습니다. 당간(幢竿)을 고정시키는 간공(杆孔)은 양지주 모두상.중.하의 3곳에 간구(杆構)를 마련하여 장치하였는데 상부는 내면 상단에 장방공(長方孔)을 마련하여 간을 장치하였고 중하부는 관통된 원공(圓孔)에 간을 시설하게 되어있습니다.
기저(基底)에는 장대석(長臺石)의 기반석(基盤石)을 지주사이와 양지주의 외측에 각기 1매씩 깔아서 기대를 삼고 있으며 간대는 지주사이의 장대석 중심부에 원공을 시공하고 그 주변에 원대(圓帶)로 돌려서 마련한 간단한 간대입니다.
이곳을 중초사지(中初寺沚)라고 하는 것은 서쪽 지주의 바깥에 각자(刻字)한 명문(銘文)에 의한 것이며 이 지주는 신라(新羅) 흥덕왕 (興德王) 원년(元年)(826) 8월 6일에 채석하여 그 이듬해인 흥덕왕2년(827) 2월 30일에 세운 조성년대(造成年代)가 확실한 명문이 있는 국내 유일의 당간지주입니다.
2003-05-31 15: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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