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기행]시민의 휴식처 수리산
안양과 군포시민의 사랑을 받는
수리산(修理山)
수리산 지형은 청계산(618m), 광교산(582m), 관악산(629m), 백운산(564m)등 광주산맥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산지중의 하나로 군포시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가장 큰 산으로 태을봉(해발 489m)을 중심으로 남서쪽으로 슬기봉(해발 451.5m)북쪽으로는 관모봉(해발 426.2m) 북서쪽으로는 수암봉(해발 395m)등 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계는 수리산 (태을봉 489m, 슬기봉 451.5m)이 군포시 서측에 남북으로 형성되어 안산시, 안양시와 경계를 이루며 수리산 능선이 동서 로 뻗어 군포시를 양분하고 있으며 수리산은 평지에서 갑자기 솟아 오른듯한 산계를 이루고, 봉우리 및 절벽은 대체로 규암이고 계곡지대에는 풍화에 약한 흑운 모호상 편마암이나 안구상 편마암이 많으며 부분적으로 백운모 및 흑운모 편암이 협재되어 있다.
수리산의 일반현황을 살펴보면 위치는 동경 126°50 126°55′,북위 37°21′ ~ 37°24′으로, 군포시 전체면적(3,639ha)의 약 29%를 차지하고 있는 1,047.5 ha이며, 기후는 전형적인 온대 온순 기후에 해당하며 연평균 강수량은 1,314.7mm이며 월평균기온은 12.1℃로, 계곡은 노랑바위 계곡외 2개소 1,390m, 능선은 총 연장 5,490m이다. '97년 10월 수리산 등산자수는 일일평균 2,091명으로 96년 일일평균 등산객 624명에 비하여 3.3배증가 하였으며, 시민 생활수준 향상 및 인구증가로 인하여 산을 찾는 시민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수리산에 임상은 활엽수림 45%, 혼효림29%, 침엽수림 26%로 구성성되어 있으 며, 1ha당 평균 축적은 40㎥이다. 속달동에는 경기도유림 327ha가 있어 각종 수 목에 대한 연구 . 조사를 하고 있다. 또한 도유림은 보존 관리가 잘 되어 있어 울창한 산림에 다양한 동 . 식물이 서식 하고 있으며, 도유림 중턱에 "수리사"라는 전통 깊은 절이 있어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충주의 서쪽은 경기도의 죽산, 여주와 경계한다. 죽장의 칠장산 畿湖 경계에 우뚝 솟았고 서북으로 뻗쳐 水踰峴에서 크게 끊어져 평지가 된다. 그리고 또다시 일어나 용인의 負兒山이 되고, 또 석성산, 광교산을 일으킨다. 광교산 서북에서 관악이 되고 똑바로 서쪽에서 修李山이 되어 서해로 들어간다] 과하여 수리산이 광주산맥의 한 자락임을 밝히고 아울러 수리산을 또 다른 이름으로 修李山임을 기록하고 있다. 어떤 기록에는 見佛山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어느 왕손이 산중에서 기도 중 부처님을 親見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산 정상에 오르면 멀리 군자 앞 바다와 소래염전 및 인천, 수원의 시가지까지 조망된다. 산 남쪽에는 修現寺라는 작은 절이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된 사찰로 信心을 닦는 聖地의 절이라 하여 修現寺라 했는데, 그 후 산명도 寺名을 취해 「修現山」이라 칭했다는 것이다. 일부 풍수연구가들은 아주 먼 옛날 천지개벽이 일어났을 때 서해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와 수리가 앉을 만큼 남았다 하여 수리산이라 칭했다는 것이다.
또 안산지방에는 예로부터 秀岩峯의 옛 이름인 독수리봉(鷲岩)에서 유래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北崖老人의 《揆園史話》상권 檀君記에 「동방의 여러 산에 馬耳, 摩尼 등의 이름을 가진 산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摩利로 부르고 일찍이 서로 구분하지 않았다. 대개 마이와 마니는 머리 「頭」字의 「머리」에서 나왔다. 지금 廣州에 修理山이 있다. 이것은 틀림없이 수리산(鷲山)이다」 고하여 「독수리봉」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李世鍾 성결신학대학 교수는 수리산에 대해 <수리산 散稿>라는 시론을 통해 다음과 같이 견해를 밝히고 있다.
수리산에는 큰 바위가 별로 없다. 가파른 벼랑도 없고 숲이 울창한 土山 곳곳에 약수터가 있고, 그 약수터에는 남녀노소들이 끊일 사이가 없이 모여들고 산새들은 한가로이 지저귄다. 골골마다 산채와 약초가 무성하고 옛날부터 사찰이 없는 유명이란 단어와 거리가 먼 산이다.
안양은 그 수리산 기슭에 터를 닦았고 수리산은 도시화되고 대형화되어 가는 안양에 경이로운 산이 아니라 적당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획일화되고 규격화 되어가는 현대문명 속에서 人間性 回復의 機會를 제공하며 안양을 싸잡고 지키는 자애로운 암탉이다.
수리산, 수리산이란 무슨뜻일까?. 「살다」(生)의 語幹 「살」에서 파생된 언어로 「쌀」등 米의 뜻이 있고 곡식(主食)에 「입쌀」「좁쌀」「수수쌀」「보리쌀」등등 生活生命과 연상된 언어가 되었다.(지금도 경북 方言에서는 「쌀」「살」이라고 한다)生活에 곡식만큼 중요한 필수품이 연료였다. 紫炭中에 중요한 것이 松林이다. 「솔나무의」「솔」은 「솔」에서 語原을 찾아야 한다는 學說이다. 전국 지명이나 산명 가운데 「수리」「설악」「설원」등이 많은데 이들은 모두 「살」에서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一說에는 「수리」「수리치」「수리골」「수리재」「수리절」등등의 명칭은 단오 명절과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단오 때(초여름)沐浴하고 산채를 뜯던 풍속과 지명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수리란 이름을 가진 지명에는 반드시 냇물 또는 시내가 있고 산채 「수리치」가 풍성하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수리산은 이 지방에 紫炭과 산채를 풍성히 공급하던 산이고 여름이면 목욕하고 빨래하던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밤나무가 많아 알밤을 줍던 정든 터전이 있으며 머루와 다래와 개암이 영글어 가던 유명하기를 거부한 안양 정신의 母胎였다.
자료 : 이중환 <택리지>1714, 이긍익 <연려실기술>1934,
본말사주지회 <용주사본말시지>1984, 조선일보 <월간 산>1988.5,
방극인 <수리산>안양문화 3-1984, 안양시 <수리산산림욕장현황>1990,
<수원신문>1990.6.9, <수원신문>1990.6.16, <경기평론뉴스>1990.9.15
□ 위치 : 안양시와 시흥시 장상동과 군포시 산본동 및 화성군 반월면 속다리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코스
☞ 주 등산로
병목안 주차장 ⇒ 덩굴터미널 숲 ⇒ 만남의 광장 ⇒ 백영약수터 ⇒ 태을봉 ⇒ 수리산
☞ 부 등산로
▷ 안양서여자중학교 ⇒ 독서하는 숲 ⇒ 한마음놀이터 ⇒ 태을봉 ⇒ 수리산
▷ 현충탑 ⇒ 팔각정 ⇒ 한마음 놀이터 ⇒ 태을봉 ⇒ 수리산
▷ 소골안 ⇒ 전망대 ⇒ 태을봉 ⇒ 수리산
▷ 성문여자중학교 ⇒ 덩굴터널숲 ⇒ 봉수정약수터 ⇒ 명상의 숲 ⇒ 시관모봉 ⇒ 태을봉 ⇒ 수리산
□ 교통편
☞ 대중 : 안양시내버스 10, 11-3, 13, 16 (소요시간 : 15분)
☞ 자가용 : 안양역에서 병목안 방향으로 직진하여 병목안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100m가량 올라오시면 병목안 주차장이 있음. (소요시간 : 10분)
□ 기본 소개
면 적 : 1,047.5ha(군포시 임야면적의 55% 차지)
표 고 : 489m 태을봉: 489m, 슬기봉: 451.5m, 관모봉: 426.2m, 수암봉: 395m
식 생 : 식물상 총 120과 311속 474종
균 류 : 1문 1아문 2강 4목 12과 28속 35종
조 류 : 총 5 목 12과 26종
곤충류 : 15목 117과 300종
수리산 대표 상징물 : 은판 나비
수리산 사랑 가족 그림 그리기: 매년 10월
수리산 등산로 수목 식재 : 벚나무 등 3종 1,760본
□ 전설①
안산의 鎭山인 수암봉 즉 鷲岩에서 연유됐다는 내용인데 취암의 독수리 취자 (鷲)는 독수리과(禿鷲科)와 수리매과 (鷲鷹科) 등으로 쓰이는 글자인데 이곳에서는 후자를 택한듯하고 「수리」하면 흰죽지 참수리. 검둥수리. 독수리. 참수리. 흰꼬리수리 따위등 사나운 새의 속칭인데 필자가 이곳을 찾아가기 위하여 안산시 부곡동 방면에서 북쪽의 취암을 바라보며 가다보니 수암봉 정상에 거대한 검둥수리가 남쪽하늘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모습이 그 이름과 흡사하여 동행한 일행과 함께 탄식할 정도였으니 옛어른들이 보고 보고 또 보고 지은 이름이 아니겠느냐? (수리봉)이라고 하는 느낌을 떨칠수가 없었다.
또 安山의 이름이 문헌에 보이기는 고려태조 23년(940)에 安山縣이라 했고 고려 충렬왕 34년 (1308)에 文宗 탄생으로 安山郡이라 했으며 1914년 3월 시흥, 안산,과천군이 시흥군에 흡수 될 때까지 974년간 지속되어온 이름이 안산이요 취암 즉 수리바위산이 진산이었던 듯하다. (현재의 시흥시 안산동 소재지인 수암봉아래에 「옛 안산읍성터 및 관아터」가 경기도 기념물 127호로 보존되고 있음)
세종실록 지리지 (1454년간행) : 京畿 南陽郡 都護府 案山郡편을 보면 「高麗開爲安山郡... 本朝因之. 鎭山. 曰鷲岩(在郡東).. 동국여지승람(1481년간행) : 案山郡 山川에 보면 修理山 : 군동쪽 1리되는 곳에 있으며 일명 견불산(見佛山)이라 한다.
鷲 岩 : 수리산에 있다.
大東地志(1864년간행) : 安山郡 山水에 보면 修理山 : 東五 一云太乙山 一云見佛山 頗峻高 有鷲岩峯 方言 謂鷲爲修理 「동5리에 있는 산을 일러서 태을산 또 일러서 견불산이라고 한다. 자못 크고 높은 취암봉(수암봉)이 있는데 독수리 취자를 일컬어 수리(修理)라고 한다.
경기도 지명유래 : 시흥군편 P477에 보면 「秀岩峯 옛 안산군의 진산, 수리산의 연봉으로 본래의 산명은 鷲岩... 등의 문헌 내용으로 봐서 취암 또는 취암봉이 수암봉이 되었지만 취자를 우리말로 「수리」라 하고 수리를 이두(吏讀)식으로 만따서 修理라고 썼을뿐인 것이 대동지지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전설②
시흥군지 상권 p124에서 보면 「수리사는 고려중기 瑜伽宗의 고승 관오(1096∼1158)가 주지 한적이 있었던 사찰이기도 하였다...」는 내용으로 봐서 최소한 900년이상 된 사찰임이 확실한데 전술한 설 대로 신라 진흥왕때(539∼575) 창건 했다면 약1450년전 전후가 될 수도 있다. 여하간 오래된 사찰인둣 한데 필자가 방문하여 보니 조그마하고 조용한 사찰에 이성우(李性盂:남자)주지 스님 한 분이 지키고 있을뿐 연혁에 참고 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데 실망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찰이 정말로 역사 오래인 사찰일까? 하고 다만 수리사 입구 양편의 도로 가에 서 있는 많은 고목 느티나무만은 지난 일을 말할 수 있으리라! 라고 자위하고 싶다. 한편 역사 오래인 수리사라는 것은 이해가 되나 산 이름이 먼저인지 절이름이 먼저인지는 선 듯 이해 하기가 어려운 듯하다.
전설③
택리지(澤里誌) (1756년에 발간된 것으로 추리함) : 경기편에 보면「廣州 서쪽은 修李山이며 安山 동쪽에 있다」는 식으로 이 중환이 지은 택리지의 여러곳에서 오얏리(李)자 수리산 이라는 기술로 일관 되었음을 본다. 修李山이 맞는다면 다른 책에서도 볼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상과 같이 위의 3설을 살펴본바로는 물형(物形)에서 유래됐다고 보는 ①의 설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수리산 지형은 청계산(618m), 광교산(582m), 관악산(629m), 백운산(564m)등 광주산맥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산지중의 하나로 군포시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가장 큰 산으로 태을봉(해발 489m)을 중심으로 남서쪽으로 슬기봉(해발 451.5m)북쪽으로는 관모봉(해발 426.2m) 북서쪽으로는 수암봉(해발 395m)등 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계는 수리산 (태을봉 489m, 슬기봉 451.5m)이 군포시 서측에 남북으로 형성되어 안산시, 안양시와 경계를 이루며 수리산 능선이 동서 로 뻗어 군포시를 양분하고 있으며 수리산은 평지에서 갑자기 솟아 오른듯한 산계를 이루고, 봉우리 및 절벽은 대체로 규암이고 계곡지대에는 풍화에 약한 흑운 모호상 편마암이나 안구상 편마암이 많으며 부분적으로 백운모 및 흑운모 편암이 협재되어 있다.
수리산의 일반현황을 살펴보면 위치는 동경 126°50 126°55′,북위 37°21′ ~ 37°24′으로, 군포시 전체면적(3,639ha)의 약 29%를 차지하고 있는 1,047.5 ha이며, 기후는 전형적인 온대 온순 기후에 해당하며 연평균 강수량은 1,314.7mm이며 월평균기온은 12.1℃로, 계곡은 노랑바위 계곡외 2개소 1,390m, 능선은 총 연장 5,490m이다. '97년 10월 수리산 등산자수는 일일평균 2,091명으로 96년 일일평균 등산객 624명에 비하여 3.3배증가 하였으며, 시민 생활수준 향상 및 인구증가로 인하여 산을 찾는 시민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수리산에 임상은 활엽수림 45%, 혼효림29%, 침엽수림 26%로 구성성되어 있으 며, 1ha당 평균 축적은 40㎥이다. 속달동에는 경기도유림 327ha가 있어 각종 수 목에 대한 연구 . 조사를 하고 있다. 또한 도유림은 보존 관리가 잘 되어 있어 울창한 산림에 다양한 동 . 식물이 서식 하고 있으며, 도유림 중턱에 "수리사"라는 전통 깊은 절이 있어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충주의 서쪽은 경기도의 죽산, 여주와 경계한다. 죽장의 칠장산 畿湖 경계에 우뚝 솟았고 서북으로 뻗쳐 水踰峴에서 크게 끊어져 평지가 된다. 그리고 또다시 일어나 용인의 負兒山이 되고, 또 석성산, 광교산을 일으킨다. 광교산 서북에서 관악이 되고 똑바로 서쪽에서 修李山이 되어 서해로 들어간다] 과하여 수리산이 광주산맥의 한 자락임을 밝히고 아울러 수리산을 또 다른 이름으로 修李山임을 기록하고 있다. 어떤 기록에는 見佛山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어느 왕손이 산중에서 기도 중 부처님을 親見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산 정상에 오르면 멀리 군자 앞 바다와 소래염전 및 인천, 수원의 시가지까지 조망된다. 산 남쪽에는 修現寺라는 작은 절이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된 사찰로 信心을 닦는 聖地의 절이라 하여 修現寺라 했는데, 그 후 산명도 寺名을 취해 「修現山」이라 칭했다는 것이다. 일부 풍수연구가들은 아주 먼 옛날 천지개벽이 일어났을 때 서해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와 수리가 앉을 만큼 남았다 하여 수리산이라 칭했다는 것이다.
또 안산지방에는 예로부터 秀岩峯의 옛 이름인 독수리봉(鷲岩)에서 유래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北崖老人의 《揆園史話》상권 檀君記에 「동방의 여러 산에 馬耳, 摩尼 등의 이름을 가진 산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摩利로 부르고 일찍이 서로 구분하지 않았다. 대개 마이와 마니는 머리 「頭」字의 「머리」에서 나왔다. 지금 廣州에 修理山이 있다. 이것은 틀림없이 수리산(鷲山)이다」 고하여 「독수리봉」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李世鍾 성결신학대학 교수는 수리산에 대해 <수리산 散稿>라는 시론을 통해 다음과 같이 견해를 밝히고 있다.
수리산에는 큰 바위가 별로 없다. 가파른 벼랑도 없고 숲이 울창한 土山 곳곳에 약수터가 있고, 그 약수터에는 남녀노소들이 끊일 사이가 없이 모여들고 산새들은 한가로이 지저귄다. 골골마다 산채와 약초가 무성하고 옛날부터 사찰이 없는 유명이란 단어와 거리가 먼 산이다.
안양은 그 수리산 기슭에 터를 닦았고 수리산은 도시화되고 대형화되어 가는 안양에 경이로운 산이 아니라 적당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획일화되고 규격화 되어가는 현대문명 속에서 人間性 回復의 機會를 제공하며 안양을 싸잡고 지키는 자애로운 암탉이다.
수리산, 수리산이란 무슨뜻일까?. 「살다」(生)의 語幹 「살」에서 파생된 언어로 「쌀」등 米의 뜻이 있고 곡식(主食)에 「입쌀」「좁쌀」「수수쌀」「보리쌀」등등 生活生命과 연상된 언어가 되었다.(지금도 경북 方言에서는 「쌀」「살」이라고 한다)生活에 곡식만큼 중요한 필수품이 연료였다. 紫炭中에 중요한 것이 松林이다. 「솔나무의」「솔」은 「솔」에서 語原을 찾아야 한다는 學說이다. 전국 지명이나 산명 가운데 「수리」「설악」「설원」등이 많은데 이들은 모두 「살」에서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一說에는 「수리」「수리치」「수리골」「수리재」「수리절」등등의 명칭은 단오 명절과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단오 때(초여름)沐浴하고 산채를 뜯던 풍속과 지명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수리란 이름을 가진 지명에는 반드시 냇물 또는 시내가 있고 산채 「수리치」가 풍성하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수리산은 이 지방에 紫炭과 산채를 풍성히 공급하던 산이고 여름이면 목욕하고 빨래하던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밤나무가 많아 알밤을 줍던 정든 터전이 있으며 머루와 다래와 개암이 영글어 가던 유명하기를 거부한 안양 정신의 母胎였다.
자료 : 이중환 <택리지>1714, 이긍익 <연려실기술>1934,
본말사주지회 <용주사본말시지>1984, 조선일보 <월간 산>1988.5,
방극인 <수리산>안양문화 3-1984, 안양시 <수리산산림욕장현황>1990,
<수원신문>1990.6.9, <수원신문>1990.6.16, <경기평론뉴스>1990.9.15
□ 위치 : 안양시와 시흥시 장상동과 군포시 산본동 및 화성군 반월면 속다리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코스
☞ 주 등산로
병목안 주차장 ⇒ 덩굴터미널 숲 ⇒ 만남의 광장 ⇒ 백영약수터 ⇒ 태을봉 ⇒ 수리산
☞ 부 등산로
▷ 안양서여자중학교 ⇒ 독서하는 숲 ⇒ 한마음놀이터 ⇒ 태을봉 ⇒ 수리산
▷ 현충탑 ⇒ 팔각정 ⇒ 한마음 놀이터 ⇒ 태을봉 ⇒ 수리산
▷ 소골안 ⇒ 전망대 ⇒ 태을봉 ⇒ 수리산
▷ 성문여자중학교 ⇒ 덩굴터널숲 ⇒ 봉수정약수터 ⇒ 명상의 숲 ⇒ 시관모봉 ⇒ 태을봉 ⇒ 수리산
□ 교통편
☞ 대중 : 안양시내버스 10, 11-3, 13, 16 (소요시간 : 15분)
☞ 자가용 : 안양역에서 병목안 방향으로 직진하여 병목안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100m가량 올라오시면 병목안 주차장이 있음. (소요시간 : 10분)
□ 기본 소개
면 적 : 1,047.5ha(군포시 임야면적의 55% 차지)
표 고 : 489m 태을봉: 489m, 슬기봉: 451.5m, 관모봉: 426.2m, 수암봉: 395m
식 생 : 식물상 총 120과 311속 474종
균 류 : 1문 1아문 2강 4목 12과 28속 35종
조 류 : 총 5 목 12과 26종
곤충류 : 15목 117과 300종
수리산 대표 상징물 : 은판 나비
수리산 사랑 가족 그림 그리기: 매년 10월
수리산 등산로 수목 식재 : 벚나무 등 3종 1,760본
□ 전설①
안산의 鎭山인 수암봉 즉 鷲岩에서 연유됐다는 내용인데 취암의 독수리 취자 (鷲)는 독수리과(禿鷲科)와 수리매과 (鷲鷹科) 등으로 쓰이는 글자인데 이곳에서는 후자를 택한듯하고 「수리」하면 흰죽지 참수리. 검둥수리. 독수리. 참수리. 흰꼬리수리 따위등 사나운 새의 속칭인데 필자가 이곳을 찾아가기 위하여 안산시 부곡동 방면에서 북쪽의 취암을 바라보며 가다보니 수암봉 정상에 거대한 검둥수리가 남쪽하늘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모습이 그 이름과 흡사하여 동행한 일행과 함께 탄식할 정도였으니 옛어른들이 보고 보고 또 보고 지은 이름이 아니겠느냐? (수리봉)이라고 하는 느낌을 떨칠수가 없었다.
또 安山의 이름이 문헌에 보이기는 고려태조 23년(940)에 安山縣이라 했고 고려 충렬왕 34년 (1308)에 文宗 탄생으로 安山郡이라 했으며 1914년 3월 시흥, 안산,과천군이 시흥군에 흡수 될 때까지 974년간 지속되어온 이름이 안산이요 취암 즉 수리바위산이 진산이었던 듯하다. (현재의 시흥시 안산동 소재지인 수암봉아래에 「옛 안산읍성터 및 관아터」가 경기도 기념물 127호로 보존되고 있음)
세종실록 지리지 (1454년간행) : 京畿 南陽郡 都護府 案山郡편을 보면 「高麗開爲安山郡... 本朝因之. 鎭山. 曰鷲岩(在郡東).. 동국여지승람(1481년간행) : 案山郡 山川에 보면 修理山 : 군동쪽 1리되는 곳에 있으며 일명 견불산(見佛山)이라 한다.
鷲 岩 : 수리산에 있다.
大東地志(1864년간행) : 安山郡 山水에 보면 修理山 : 東五 一云太乙山 一云見佛山 頗峻高 有鷲岩峯 方言 謂鷲爲修理 「동5리에 있는 산을 일러서 태을산 또 일러서 견불산이라고 한다. 자못 크고 높은 취암봉(수암봉)이 있는데 독수리 취자를 일컬어 수리(修理)라고 한다.
경기도 지명유래 : 시흥군편 P477에 보면 「秀岩峯 옛 안산군의 진산, 수리산의 연봉으로 본래의 산명은 鷲岩... 등의 문헌 내용으로 봐서 취암 또는 취암봉이 수암봉이 되었지만 취자를 우리말로 「수리」라 하고 수리를 이두(吏讀)식으로 만따서 修理라고 썼을뿐인 것이 대동지지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전설②
시흥군지 상권 p124에서 보면 「수리사는 고려중기 瑜伽宗의 고승 관오(1096∼1158)가 주지 한적이 있었던 사찰이기도 하였다...」는 내용으로 봐서 최소한 900년이상 된 사찰임이 확실한데 전술한 설 대로 신라 진흥왕때(539∼575) 창건 했다면 약1450년전 전후가 될 수도 있다. 여하간 오래된 사찰인둣 한데 필자가 방문하여 보니 조그마하고 조용한 사찰에 이성우(李性盂:남자)주지 스님 한 분이 지키고 있을뿐 연혁에 참고 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데 실망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찰이 정말로 역사 오래인 사찰일까? 하고 다만 수리사 입구 양편의 도로 가에 서 있는 많은 고목 느티나무만은 지난 일을 말할 수 있으리라! 라고 자위하고 싶다. 한편 역사 오래인 수리사라는 것은 이해가 되나 산 이름이 먼저인지 절이름이 먼저인지는 선 듯 이해 하기가 어려운 듯하다.
전설③
택리지(澤里誌) (1756년에 발간된 것으로 추리함) : 경기편에 보면「廣州 서쪽은 修李山이며 安山 동쪽에 있다」는 식으로 이 중환이 지은 택리지의 여러곳에서 오얏리(李)자 수리산 이라는 기술로 일관 되었음을 본다. 修李山이 맞는다면 다른 책에서도 볼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상과 같이 위의 3설을 살펴본바로는 물형(物形)에서 유래됐다고 보는 ①의 설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2003-05-31 15: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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