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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5]군포, 2016 전국 대학생 독서토론대회 1인자 정예일씨

군포시가 주최한 책으로 일탈하는 청춘 찾기, ‘2016 책나라군포 전국 독서토론대회’의 1인자로 연세대 정예일 씨가 선정됐다. 시는 최근 군포시청소년수련원(충남 청양군)에서 올해로 4회째 열린 전국 대학생 독서토론대회 본선 대회를 1박 2일간 진행했다. 본선에는 36명의 진출자가 참여해 ‘2016 군포의 책’인 배유안 작가의 과 박찬국 교수의 을 기반으로 한 토론 주제 ‘심청은 진정한 효녀인가?’, ‘경쟁은 선인가? 악인가?’, ‘탈근대화 시대의 바람직한 가족윤리란?’ 등을 두고 열렬하게 논쟁했다. 그 결과 연세대학교 정예일 씨가 대상의 명예를 차지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대전대학교의 김희수 씨가 금상에 올라 경기도지사상을 받았다. 또 은상과 동상에 각각 2명씩이 선정돼 군포시장상을 받았고, 수상자 ..

민주화 거리행진 나선 1987년 6월의 안양 도심

#안양 #기록 #기억 #민주화 #중앙로/ 1987년 6월 안양시 중앙로(중앙시장 동문앞) 거리를 행진하는 시민들. 오늘은 6·10민주항쟁 29주년이다. 1987년 6월의 안양은 정말 뜨거웠다. 6.10일 이후인 26일 오후 11시20분경, 무려 2만명에 달하는 안양시민들은 안양경찰서에서 우체국에 이르는 거리를 가득 메웠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직격탄을 쏘았고 3명이 부상당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안양에서는 1987년 당시 6월 항쟁 기간인 6월 19일, 6월 23일, 6월 26일 모두 세 차례의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전개됐다. 안양에서의 첫 대중 집회인 6월 19일 집회에 대해 시사월간지 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9시 30분경, 1만여 명의 시민들이 도로에 앉아 대중 집회가 시작됐다. … 약 2시간..

1960년대 연탄 배달 소달구지

#안양 #역사 #기록 #기억 #연탄/ 1960년대 초반 소달구지(우마차)로 연탄 배달을 하던 안양시내의 풍경으로 안양시사료관에서 찾은 자료 사진입니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60년대 서민들에겐 겨우 내 쓸 연탄을 빈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이 중요한 월동준비였지요. 또 연탄은 난방용으로 겨울철에만 사용한는 것이 아니라 LPG가스가 없던 당시에는 각 가정과 식당에서 움식조리도 해야 했기에 서민들에게 그야말로 사계절 내낸 필수불가결한 연료였지요. 연탄을 주문하면 연탄광이 커 보관할 공간이 큰 집의 경우 트럭으로 날랐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연탄가게에서 사진처럼 달구지나 리어카로 날랐지요. 너도 나도 연탄을 때던 시절 전국에 연탄공장은 400여 개에 달했고 동네마다 연탄가게 하나씩은 꼭 있었고 안양의 경우 화물..

1968년 안양 1번국도와 마차

#Mishalov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옛사진 #닐미샬로프 / 고속도로가 없던 시절에는 이 도로를 통해 서울에서 부산 그리고 목포까지 갔던 1번국도의 1968년 6월의 안양 구간 풍경으로 당시 석수동 미군부대에 전령으로 근무했던 닐 미샬로프가 칼라슬라이드로 찍은 것입니다. 사진 윗쪽이 석수동과 안양교 방향, 아래쪽이 안양역 방향으로 우마차가 안양역으로 열심히 가고 있다. 당시 1번국도는 서울과 수원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로 2차선에 아스팔트 포장길이었다. 해마다 개나리 필 무렵 수원에 모심으러 박대통령이 행차하는 날엔 도로변애 있던 안양초, 만안초, 삼성초교에 다니던 어린이들은 도로변에 늘어서 태극기를 흔들고 박수를 쳤다. 사진 뒷쪽은 석수동인데 멀리 보이는 다리가 당시 만안초등학교 앞으로 흐르던..

1973년 안양 망해암행 안양천 건너던 줄배

#응답하라 #1973 #안양 #양명고 #안양천 #나무다리/ 1970년대 초 안양천을 건너던 줄배입니다. 당시 안양천에는 물이 많았답니다. 이 배가 운행되던 곳은 현재의 양명고앞인데 먼길을 돌아다녀야 했던 주민들과 여름철에는 안양유원지로 가고자 하는 이들이 이배를 타고 건너가기도 했지요. 이후 1970년대 중반에는 안양2동 토박이 김귀연 전 안양2동 주민자치위원장 부친께서 나무다리를 놓아 양명고 학생들의 통학을 위해 애쓰셨지요. 평소에는 나무다리라도 건너 등하교를 할 수 있었지만 여름철 비라도 많이 내려 물이 불어나면 다리가 잠기거나 다리가 물에 떠내려가면 비산동 임곡교 또는 안양유원지쪽으로 빙 돌아다녀야 했답니다. 안양천은 60-70년대 초만 해도 은모래가 깔려있고, 어항을 놓아 물고기도 잡고, 멱도 감..

1983-4년 양명고 가는 길 안양천 나무다리

#응답하라 #1983-4년 #안양 #양명고 #안양천 #나무다리/ 안양2동 토박이인 김귀연 전 안양2동 주민자치위원장이 직은 사진으로 수업을 마치고 나무다리를 건너 집으로 귀가하는 안양 양명고교 학생들입니다. 나무다리가 있는 곳은 현재 구도로(만안로)에서 청원지하도를 지나면 보이는 양명교가 놓여진 곳으로 안양천에 물이 많았던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드럼통으로 만든 줄배를 타고 건너야 했는데 이후 임시 나무다리가 가설됐는데 안양2동 김귀연 전 주민위원장의 부친으로 안양 의용소방대에 소방대원으로 근문하셨던 고 김인섭 어르신께서 매년 사비를 들여 놓으셨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나무다리라도 건너 등하교를 할 수 있었지만 여름철 비라도 많이 내려 물이 불어나면 다리가 잠기거나 다리가 물에 떠내려가면 비산동 ..

[조성현]태조왕건과 고려 안양사

[조성현]태조왕건과 고려 안양사 [2011/05/05]안양시문화관광해설사 태조왕건과 고려안양사 문헌 속 고려‘안양사(安養寺)’는 안양시 지명(地名)유래의 근원이며 뿌리인 유서 깊은 사찰 안양시문화관광해설사 조성현 안양(安養)이란 불가에서 아미타불부처님이 상주하는 청정(淸淨)하여 맑고 깨끗한 안양세계(安養世界), 극락정토(極樂淨土)를 말하며 불가에서의 안양(安養)은 내가 사는 고장의 이름과 일치한다. 불교용어이지만 도시 ‘안양’은 불교의 극락, 기독교의 천당 등 유토피아적 이상향의 살기 좋고 행복한 곳이란 철학적 의미가 지명 속에 담겨져 있어, 지명 그대로 따르면 우리시민은 오직 즐거움만 있는 아늑한 이상향의 도시에 살고 있는 행복한 시민이다. 2004년 7월 23일부로 안양시의 위촉을 받은 이래 ‘안양시..

[장태환]의왕~과천간 고속화도로 유료화 발상 재고하라

[장태환]의왕~과천간 고속화도로 유료화 발상 재고하라 [2011/05/03]경기도의회 의원/의왕 존경하는 천이백만 도민 여러분! 허재안 의장님과 선배ㆍ동료 여러분! 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애쓰시는 김문수 도지사와 김상곤 교육감을 비롯한 관계공무원 여러분 그리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노력하시는 언론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희망찬 미래도시 생동하는 푸른 의왕 출신 장태환 의원입니다. 오늘 본 의원은 의왕-수원 간 고속화도로 유료기간 연장 폐지와 확장공사에 따른 주민피해 대책 마련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의왕-과천 고속화도로 유료기간 폐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의왕-서수원 간 도로는 하루 통행량을 5만 대로 예측하고 경기도가 지난 92년 11월부터 왕복4차선으로 ..

[김윤주]책이 있어 행복한 군포시를 꿈꾸며

[김윤주]책이 있어 행복한 군포시를 꿈꾸며 [2011/04/28]군포시장 어린 시절 경북 예천의 시골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어디랄 것 없이 전란 이후의 마을 풍경은 을씨년스럽기만 했습니다. 어른들은 먹고살 걱정, 아이들은 놀이걱정, 학생들은 진학걱정에 여념이 없었다고 기억됩니다. 7남매의 장남인 저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집안일을 도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진학포기가 앎에 대한 저의 집념마저 꺾지는 못했던 모양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농사를 도우면서도 매일 밤 동네 외삼촌 책방을 찾아가 책을 읽곤 했었는데, 그 습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그 시절, 책은 제게 밤하늘에 뜬 보름달처럼 삶을 밝혀주는 희망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삼촌의 책방에 있던 책을 빠짐없이 다 읽게 됐습니다..

[최준영]“유진이 오빠를 도와주세요”

[최준영]“유진이 오빠를 도와주세요” [2011/04/20]군포시청 홍보기획팀장/ 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 교수 군포시 환경미화원 홍 모씨는 아들딸 남매와 함께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홍씨에게 행복은 남의 일이 된지 오래다. 사업에 실패했거나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보다 더 소중한 가족의 건강 때문이다.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인 홍씨의 딸 유진(금정초4)이의 표정은 늘 어둡고 말이 없다. 몸이 아픈 오빠 때문이고, 엄마 아빠 모두 오빠를 돌보는 데만 신경을 쓸 뿐 자신을 챙기지 않는데 대한 서운함 때문이다. 그러나 유진이는 엄마 아빠에게 불평 한 번 하지 않는 착한 어린이이기도 하다. 오빠를 걱정하는 마음은 엄마 아빠 못지않다. 이제 고작 초등 4학년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