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871

1969년 국민관광지였던 안양유원지와 임시기차역

#안양 #안양풀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관광지 #기차역 #임시역/ 지금의 안양예술공원은 조성 당시인 1930년대에는 안양풀이라 불렀으며 1960년대 이후부터 2000년대 까지는 안양유원지라 부르던 관광지였다. 사진은 1969년 안양유원지 입구(현 안양교사거리)의 풍경으로 당시 1번국도(현 만안로)에서 안양유원지로 가던 길(현 예술공원로) 입구에 안양유원지 입구임을 표기한 아치가 설치되어 있다. 사진 오른쪽은 안양역 방향으로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 안양천이 흐르고 안양교와 안양철교가 있으며, 사진 왼쪽에는 만안교(1980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는 영화아파트가 들어섰다)와 고려석면 공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진 아치가 있는 곳에는 현재 예술공원지하차도가 놓여졌으며 도로 주변에는 상가..

[옛사진]981년 양명고 가는 길 안양천 나무다리

#응답하라 #1981년 #안양 #양명고 #안양천 #나무다리/ 안양2동 구도로에서 안양천 건너 망해암과 양명고쪽을 연결해 주던 나무다리로 양명고교 학생에게는 소중한 통학였습니다. 나무다리가 있는 곳은 현재 구도로(만안로)에서 청원지하도를 지나면 보이는 양명교가 놓여진 곳으로 안양천에 물이 많았던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드럼통으로 만든 줄배를 타고 건너야 했는데 이후 임시 나무다리가 가설됐는데 안양2동 김귀연 전 주민위원장의 부친으로 안양 의용소방대에 소방대원으로 근무하셨던 고 김인섭 어르신께서 매년 사비를 들여 놓으셨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나무다리라도 건너 등하교를 할 수 있었지만 여름철 비라도 많이 내려 물이 불어나면 다리가 잠기거나 다리가 물에 떠내려가면 비산동 임곡교 또는 안양유원지쪽으로 빙..

[안양권지도]1750-1768년 제작 조선지도(奎 16030)속 금천

1750-1768년 무렵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지도(奎 16030) 경기도편의 과천현지도. 전라도 56개 고을을 제외한 함경도(23장)·평안도(42장)·강원도(27장)·황해도(23장)·경기도(33장)·충청도(54장)·경상도(71장)의 고을이 순서대로 1책에서 7책으로 묶여있는 지도책이다. 모든 지도는 4.2cm의 방안(方案) 위에 그려져 있다. 이 방안은 축척(縮尺)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국 모든 고을이 동일한 축척 아래 그려져 있는 보기 드문 지도책이다. 따라서 지도에 표현된 고을의 크기는 실재의 면적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지도해설)현재 서울특별시의 영등포구, 구로구, 관악구, 금천구, 동작구 일부지역과 경기도 광명시와 안양시 일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한강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양권지도]1750-1768년 제작 조선지도(奎 16030)속 과천

1750-1768년 무렵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지도(奎 16030) 경기도편의 과천현지도. 전라도 56개 고을을 제외한 함경도(23장)·평안도(42장)·강원도(27장)·황해도(23장)·경기도(33장)·충청도(54장)·경상도(71장)의 고을이 순서대로 1책에서 7책으로 묶여있는 지도책이다. 이 지도에는 관악산, 수리산, 청계산, 태을산과 함께 현재의 학의천은 인덕천으로 표기되었다. 특히 갈산참(현재의 갈산동)이 등장해 당시 이 지역이 숙박과 식사를 할수 있는 주막들이 자리하였던 주요 교통로의 한 지점임을 알수 있으며 안양(安陽) 한자 지명은 볕양으로 표기되었다. 참고로 안양의 한자 표기에 있어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安陽(볕양)으로 표기했다고 하나 安養(기를양)과 安陽(볕양)이 혼재하며 표기되었다. ..

[안양]1976년 안양시내 가족계획 거리 캠페인

#안양 #가족계획 #출산 #산아제한 #만안 #안양로/ 1976년 안양시내에서 펼쳐진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가족계획 거리캠페인 모습으로 사진속에 안양의 가장 변화가였던 안양 만안구 중앙 중앙시장앞, 우체국사거리, 안양목재소 등이 보여 안양5동 안양우체국 사거리에서 석수동 안양대교까지 거리 행진을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60년대에는 산아제한, 즉 가족계획사업은 무엇보다도 절실한 국가적 과제였다. 당시 가임기 여성(15∼49세) 한 명이 평균 6명의 자녀를 낳을 정도로 다산(多産)이 보편화 돼 개인·국가적으로 큰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60년대), ‘딸 아들 구별말고 둘만낳아 잘 기르자’(70년대). 당시 가족계획 캠페인의 대표적인 슬로건이었다. 1962년 수태..

1960년대 안양영화예술학교 교장 재직 당시 영화배우 최은희씨

#최은희 #영화배우 #안양 #안양영화예술학교 #신필름 #석수동/ 1969년부터 1976년까지 안양영화예술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당시의 영화배우 최은희씨 사진으로 각 교실에 액자로 걸렸던 사진이다. 후진 양성은 물론 생전 13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던 한국 영화사를 대표하는 원로배우이자 대한민국 3번째 여성 영화감독이기도 했던 최은희씨는는 지난 4월 16일 향년 9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고 최은희씨는 1926년 경기 광주시에서 태어나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영화계에는 1947년 '새로운 맹서'(감독 신경균)로 발을 들였다. 1953년 영화 '코리아' 주연을 맡으며 연출자 신상옥(1926~2006) 감독과 열애를 시작해 1954년 결혼했다. 이후 두 사람은 '성춘향'(1961), '..

[안양권지도]1861년 대동여지도 속 안양권과 한자(安養) 표기

「대동여지도」에「동여도」 의 지명을 추가한 지도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奎 10333)」 22첩 중 제13첩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1861년(철종 12) 고산자(古山子)김정호(金正浩)가 편찬·간행하고 1864년(고종 1)에 재간한 분첩절첩식(粉帖折疊式)의 전국 지도첩에 안양 인근 지명표기가 이채롭다. 북쪽의 관악산, 동쪽의 청계산과 백운산, 남쪽의 오봉산, 서쪽의 수리산과 함께 안양, 과천, 인덕원, 갈산(현 평촌갈산동), 사대부, 부곡, 사근 표기와 함께 지명표기는 없지만 안양천과 학의천도 표기돼 있다. 특이한 점은 안양의 한자 지명 표기가 安養으로 양자를 기를양 자로 표기하고 있어 일제 강점기 중반 이전에 安陽으로 양자를 볕양 자로 표기했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이 틀렸음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

[안양권지도]1918년 군포장 지도속 안양역과 군포역 일대

1918년 제작한 '군포장'지도로 당시의 안양.군포.의왕 일대 모습을 볼수 있는 근대 지도이다. 일제는 조선을 강점하고, 통치차원에서 일본군 육지측량부대를 비밀리에 파견하여 조선인 측부를 고용하여 조선 땅을 측량하기 시작하였다. 1910년 강제 합방 전까지 약도 형태의 축척 5만분의 1 신속측도(迅速測圖)가 제작되었고, 합방이후 약도를 수정 보완하여 제2차 5만분의 1 지도를 제작하였다. 이후 6년간에 걸쳐 본격적으로 삼각측량과 지형측량을 실시하여 1914년부터 1918년 사이에 조선반도 전역의 1:50,000지형도 722매를 완성하였다. 대동여지도 등 지도 제작에 있어 일가견이 있던 우리나라가 우리 땅에 대한 최초의 실측지도를 일제에 의해 제작되어질 수 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으로 후퇴했다. 지도는 국사..

안양영화예술학교(1967 개교)와 신필름

#안양 #안양영화예술학교 #신필름 #1967년/ 안양시 석수동에 있던 안양영화예술학교 건물로 당시 신필름(현재의 현대아파트)과 연결돼 남쪽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현재의 위치로 보면 무림아파트(안양시 만안구 석천로197번길 52)이지요. 안양영화예술학교는 신필름이 1963년 ‘안양촬영소(1956년 설립)’를 인수한 이후 영화인력 양성을 위해 1967년 3월2일 개교한 국내 최초의 영화 학교로 신상옥 감독의 부인인 영화배우 최은희씨가 교장을 하기도 했는데 이론뿐 아니라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현장 위주의 교육을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고 신상옥 감독이 설립한 ‘신필름’은 용산에서 사무실을 운영할 때부터 신인배우 양성을 위한 ‘연기실’을 설치해 신인연기자를 발굴하고 훈련시키는 노력을 계속했는데, 안양에 자리한..

1967년 안양 석수동에 개교했던 옛 안양영화예술학교

#안양 #안양영화예술학교 #신필름 #1967년/ 안양시 석수동에 있던 안양영화예술학교 건물로 당시 신필름(현재의 현대아파트)과 연결돼 남쪽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현재의 위치로 보면 무림아파트(안양시 만안구 석천로197번길 52)이지요. 안양영화예술학교는 신필름이 1963년 ‘안양촬영소(1956년 설립)’를 인수한 이후 영화인력 양성을 위해 1967년 3월2일 개교한 국내 최초의 영화 학교로 신상옥 감독의 부인인 영화배우 최은희씨가 교장을 하기도 했는데 이론뿐 아니라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현장 위주의 교육을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고 신상옥 감독이 설립한 ‘신필름’은 용산에서 사무실을 운영할 때부터 신인배우 양성을 위한 ‘연기실’을 설치해 신인연기자를 발굴하고 훈련시키는 노력을 계속했는데, 안양에 자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