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667

1968년 안양읍내(1.3.4동) 항공사진

#안양 #닐미샬로프 #기록 #기억 #역사 #안양읍 #원도심 #동네 #골목 #금성방직 #삼원극장 #삼덕제지 #안양공고 #용화사 #시흥군청 #수리산 #수암천#1968년 #닐미샬로프/ 안양시 만안구 원도심의 1968년 겨울 풍경으로 과거 안양읍 시절의 옛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귀중한 항공사진이다. 이 사진은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83병기대대) 전령으로 근무했던(1968.3-1969.4) 닐 미샬로프(Neil Mishalov)가 코닥 컬러슬라이드필림으로 찍은 것이다. 사진속에는 현재의 안양1동(안양일번가, 시흥군청), 안양3동(안양공고, 양지마을), 안양4동(삼덕제지, 삼원극장, 중앙시장) 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멀리 눈덮인 수리산에서 아래에서 우측으로 흐르는 하천이 수암천으로 당시에는 하천폭이 꽤 ..

1953년 개관한 안양 최초의 영화관 화단극장

#안양 #기록 #기억 #역사 #만안구 #원도심 #동네 #골목 #안양2동 #극장 #영화 #화단극장 #1970년대 / 화단극장은 해방이후인 1953년 3월에 개관한 안양지역 최초의 극장으로 사진은 1978-79년도 무렵 안양예고에서 극장을 대관해 학예발표회를 하던 날이 아닌가 싶다. 화단극장은 안양역에서 서울방면 500여미터 떨어진 구도로변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각 학교에 강당이 없던 시절(시흥군 관내 학교중에서 안양초등학교에 유일하게 강당이 있었던 것으로 사료)로 극장을 대절해 낮시간에 행사들을 가졌다. 안양은 1950-60년대 동양최대의 안양영화촬영소가 석수동에 있던 곳으로 주민들이 영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 196-70년대 왠만한 도시에 극장이 없던 시절 안양읍내에는 극장이 3개나 됐다. 화단극..

1970년대초 안양1동 골목길과 절미운동

#안양 #기록 #기억 #역사 #만안구 #원도심 #동네 #골목 #안양1동 #안양일번가 #안양역 #절미운동#1972-74년 / 사진은 1970년대 초 당시 안양읍에서 가장 번화가였던 안양역앞 안양1동(현 안양일번가) 골목길의 풍경이다. 하얀 쌀밥에 쇠고기 한 번 먹어 보게는 게 누구나 소원이었던 1963년부터 1978년까지 박정희 정권이 범정부차원에서 절미운동을 실시했는데 인근 식당과 각 가정에서 밥 지을때마다 한숟가락씩 항아리에 모아 두었던 쌀을 내놓고 있다. 안양역앞 골목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던 번화가였다. 현 신한은행앞 중앙통 골목(안양로 292번길) 양쪽으로는 안양읍사무소, 시흥군청, 안양경찰서, 의용소방대 등 관공서와 제화점, 양복점 등이 있었고, 신영순산부인과 앞 골목 우측에는..

1977년 안양장내동성당앞 풍경과 수해 청소

#안양 #기록 #기억 #역사 #만안구 #원도심 #동네 #골목 #안양4동 #근로자회관 #장내동성당 #안양감리교회 #1977년 / 안양시 만안구 원도심인 안양4동 장내동성당(현 안양중앙성당) 앞 도로(장내로)의 1977년 풍경으로 사진을 촬영한 위치와 방향은 장내동성당 정문 위에서 벽산사거리(현 2001아울렛)를 바라 본 거리로 77년 안양 수해가 휩쓸고 지나가고 난 후 도로에 쌓인 퇴적물을 근로자회관 기숙생들과 주민들이 청소하는 모습으로 수해당시 이 도로에는 어른 무릎 정도의 물로 가득차 수리산에서 안양1동쯕으로 흘러 내려갔으녀 물살은 어린이들이 근로자회관에서 성당쪽으로 길을 건너지 못할 정도 거셌다. 사진 우측은 보이지 않지만 안양 장내동성당(현 중앙성당)이 있으며 좌측의 건물은 국제가톨릭형제회(AFI)..

1980년 안양유원지 낙원마을 화심천 용왕제

#안양 #기록 #기억 #역사 #만안구 #원도심 #동네 #골목 #안양2동 #안양유원지 #안양예솔공원 #1980년/ 안양2동 관악산 끝자락 산비탈에 있는 안양 낙원마을의 1980년대 풍경. 사진 우측으로 멀리 굴뚝이 보이는 곳이 유유 안양공장(현 김중업박물관)이고 그 아래는 삼성천이 흘러 가며 사진 좌축으로 보이는 동네가 석수2동 지역이다. 당시 낙원마을은 기와집 40여호가 정도가 있었는데 수질이 좋은 우물이 있어 화심천이라 짓고 1993년 수돗물이 들어오기가까지 40여년간 동네 주민들의 식수원이 되기도 했다. 낙원마을은 1999년 안양시에 의해 전통마을로 지정받을 만큼 화심천 용왕제를 비롯 절기 또는 명절 때마다 마을합동으로 풍습을 재연하면서 마을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겨 왔으나 2005년 이후 개발의 바람앞..

1968년 안양교(안양천)와 버스 추락사고

#안양 #기록 #기억 #역사 #만안구 #원도심 #동네 #골목 #안양천 #안양교 #사고 #버스 #1968년 #닐미샬로프/ 1968-69년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83병기대대)에 근무했던 닐 미샬로프(Neil Mishalov)가 코닥 컬러슬라이드필림으로 찍은 1968년의 모습으로 그는 당시 사람들과 풍물뿐 아니라 교통사고 현장도 사진으로 남겼다. 사진은 석수동에서 안양천을 건너 안양읍내로 들어오는 과거 1번국도(현재의 만안로)에 놓여진 다리(안양교)를 건너기전 하천변에 추락한 시외버스의 사고 현장으로 사진 뒤로 보이는 산이 수리산이며 그 아래가 안양 시내다. 안양교는 지금 4차선이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겨우 버스 한대가 지나갈 정도의 1차선으로 좁았으며 안양유원지 입구에서 굴곡이 있었다. 사고가 난 버스는 ..

아담하고 예뻣던 옛 안양역사

#안양 #기록 #기억 #역사 #만안구 #원도심 #동네 #골목 #안양역 #1968년 #닐미샬로프/ 1954년에 지어졌던 옛 안양역으로 석수동 미군부대(83병기대대)에 근무했던 닐 미샬로프(Neil Mishalov)가 코닥 컬러슬라이드필림으로 찍은 1968년의 모습이다. 안양역이 처음 생긴 것은 1905년 1월 1일 경부선이 개통되자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한다. 이후 건물의 노후로 1938년 8월 공사비 4만원(당시금액)으로 건평 88평에 목조콘크리트 스레트식으로 착공하여 2개월만인 10월 21일 정오에 신축 낙성식을 가졌으나 한국전쟁 기간인 1951년 1월 26일 1.4후퇴 당시 완전 소실되었다. 안양역사는 세번째로 1956년 6월 17일 공사비 1천3백여만환(당시금액)으로 건평 95평의 준공하였는데 사진..

1968년 안양5동에서 본 안양읍내 풍경

#안양 #기록 #기억 #역사 #만안구 #원도심 #동네 #골목 #1968년 #닐미샬로프/ 안양5동 현 서안양우체국 사거리에서 멀리 석수동 방향을 향해 본 안양시내(만안구)의 풍경으로 석수동 미군부대(83병기대대)에 근무했던 닐 미샬로프(Neil Mishalov)가 코닥 컬러슬라이드필림으로 찍은 것이다. 1965년 이전에 안양시내를 관통하는 도로는 석수동 육교에서 안양역앞을 지나 구 안양경찰서와 명학교로 해서 호계삼거리로 연결되는 2차선의 1번국도( 현 만안로) 하나뿐이었다. 이후 안양시내를 관통하는 이 도로(중앙로)가 건설되었는데 안양시내 일부만 아스팔트 포장되었을뿐 비포장도로였는데 1960대 말 2차선만 포장했다가 이후 차량이 늘어나면서 1970년대 중순에 도로 전체가 포장됐다. 사진 좌측은 안양병원 가..

1977년 안양대홍수로 끊어진 수푸루지다리(임곡교)

#안양 #역사 #기록 #기억 #동네 #골목 #다리 #옛사진 #시대동 #수푸루지 #1977년/ 사진은 안양1동(구시장)과 비산동을 연결하던 수푸루지 다리(현 임곡교)로 1977년 안양 전역을 휩쓸고 지나간 대홍수로 인해 다리가 끊어진 모습이다. 1977년 7월 8일부터 9일까지 안양에 내린 비는 무려 467.2mm로 기상청 창설이래 최대의 강우량을 기록하면서 이재민 6만명에 사망, 실종자 288명이라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혀 안양 대홍수라 쓰여지고 있다. 당시 안양과 서울을 연결하던 석수동의 안양대교는 교각이 주저앉았고 해일처럼 밀려드는 유수량을 이기지 못해 도시는 물에 잠기고 말았다. 여기에 삼성산과 관악산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거대한 바위와 흙이 쏟아져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계곡은 쑥대밭이 됐다...

1968년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 가는길

#안양 #닐미샬로프 #기록 #기억 #역사 #석수동 #동네 #골목 #미군부대 #1968년 #닐미샬로프/ 안양시 석수동에 있던 미군부대(83병기대대) 정문 가는 골목길의 1968년 풍경으로 이 부대에 전령으로 1968년 3월부터 1969년 4 까지 근무했던 닐 미샬로프(Neil Mishalov)가 코닥 컬러슬라이드필림으로 찍은 것이다. 경부선과 삼성천을 끼고 있던 이 부대에는 특수탄약을 관리하던 부대가 있었는데 박달동 수리산 자락의 군용지라 불리우던 탄약 벙커에 있던 전술 핵탄두와 로켓을 관리.운용했다. 당시 만안초교 등하교길에 비포장도로였던 안양-안산간 도로에서 허큘리스미사일을 싣고 가던 대형트레일러 트럭을 목격했었다. 간혹 트레일러와 호위 차량이 지나가면서 사탕과 쵸콜렛 등을 아이들에게 던져주기도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