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677

1970년대 안양유원지 만안각수영장

#안양 #안양유원지 #1970년대/ 사진속 풍경은 1970년대 안양유원지에 두번째로 생겼던 만안각수영장의 모습이다. 1950-1980년 안양유원지는 수도권 주민들의 인기 피서지중 한곳이었다. 특히 1970년대에는 삼성천 계곡을 따라 대영풀장, 맘모스풀장, 안양관광호텔수영장, 만안각수영장들이 줄줄이 들어서 수영하기는 좋았던 반면 지하수를 마구잡이로 뽑아쓰면서 게곡의 수량이 줄어들고, 쓰레기 등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하는 등 유원지가 점차 훼손되는 계기가 된다. / 사진제공-이정범 선생

1970년대 안양유원지와 첫 유료풀장 대영풀장

#안양 #안양유원지 #1970년대/ 사진속 풍경은 1970년대 안양유원지에 처음 생겼던 인공수영장 인 대영풀장의 모습으로 이 곳은 여름철에는 수영장, 가울에는 보트장으로 운영되기도 했으며 현재는 실내수영장이 있는 안양워터랜드가 자리하고 있다. 1950-1980년 안양유원지는 수도권 주민들의 인기 피서지중 한곳이었다. 특히 1970년대에는 삼성천 계곡을 따라 대영풀장, 맘모스풀장, 안양관광호텔수영장, 만안각수영장들이 줄줄이 들어서 수영하기는 좋았던 반면 지하수를 마구잡이로 뽑아쓰면서 게곡의 수량이 줄어들고, 쓰레기 등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하는 등 유원지가 점차 훼손되는 계기가 된다. / 사진제공-이정범 선생

1960년대 안양 수암천과 삼영하드보드공장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원도심 #동네 #골목#1960년대 #안양3동 #수암천 #양짓말 #삼영하드보드/ 1960년대 말 안양3동에 있던 삼영하드보드 공장 앞쪽 수암천의 풍경으로 안양역에서 뱡목안 채석장가지 놓여져 있던 철길도 보이네요. 당시 수암천에는 아나방 다리, 시멘트다리 등 여러 다리들이 놓여져 있었지요 . 삼영하드보드 공장은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내하목재회사 였으며, 해방이후인 1961년도에 건립되어 안양지역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던 큰 공장이었다. 공장이 이전한 후에는 성원아파트가 신축되어 옛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변했다. / 사진출처; 안양사료관 영상물

안양 일번가에 안양경찰서 있었다(1971년)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원도심 #동네 #골목#1970년대 #안양1동 #안양경찰서 #중앙동/ 1970년대 안양 원도심(현 안양일번가)에 있던 안양경찰서 건물의 모습으로 1971년 3월경에 촬영한 경찰서 정문의 입간판은 반공.방첩을 외치던 당시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과거로 되돌아보는듯 합니다. 현재 60만 안양시민의 방범과 치안, 지역 교통을 책임지는 안양경찰서는 만안과 동안경찰서 2곳으로 1시 2경찰서 체계로 안양 토박이들 조차 안양 최초의 경찰서는 안양8동 명학역 옆에 있는 안양경찰서가 첫 관서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보다 훨씬이전인 1950년대 중앙동(현 안양1동. 안양 일번가)에 안양경찰서가 자리하고 있었답니다. 자료를 보면 안양경찰서의 첫 관서는 1945년 10월 21..

1960년대 안양읍내 장내동과 냉천동 풍경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원도심 #동네 #골목#1960년대 #안양4.5동 #장내동 #담안 #기와집 #한옥/ 1960년대 안양 중심가였던 안양4.5동의 모습으로 기와지붕의 단독주택들이 아기자기 소박한 동네의 모습으로 당시 공동묘지가 있던 냉천동 뒷산(현재의 안양5동 수리산성원생때빌 아파트)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 뒷쪽에 우측에 보이는 성당이 장내동성당(현 중앙성당)으로 1980년대 말 새로 신축한 현대식 성당이 자리하기 전 고딕식 건물이며, 앞쪽의 건물은 중앙감리교회 교회당입니다 / 사진출처; 안양사료관 영상물

1974년 보령제약 안양공장 전경

#안양 #기록 #기억 #역사 #공장 #보령제약/ 1974년 10월 10일 준공한 보령제약 안양공장. 이 공장은 대지 1만여평에 연건평 2,400평으로 당시 제약회사 단일 건물로는 국내 최대의 공장이었다. -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 자서전에서- 또 다른 도전, 안양공장의 건설 이야기 1974년 10월 10일 안양공장은 드디어 준공을 보게 되었다. 준공 당시 안양공장은 제약업계 단일 공장으로서는 국내 최대였는데, 이보다도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전 공정이 자동화설비로 되어 있어 공장운영의 과학화를 실현시켰다는 것과 종업원을 위한 복지시설을 마련했다는 점이었다. 1973년 제약업계에 진출한지 만 10년째가 되는 이 해는 미래 지향적인 설계를 현실화시킨 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보령제약의 ..

1970년대 은모래 쌓인 학의천

#안양 #역사 #기록 #기억 #개울 #옛사진 # #학의천 #비산동 #1970년대/ 수리산과 뮹개 구름이 예쁘기만 한 1970년대 중반의 학의천 비산동 인근 풍경입니다. 당시 학의천에서 안양천이 만나는 쌍개울까지는 은모래가 쫘악 깔렸을 만큼 물도 맑고 수량도 많아 어이들이 방과후 천변에 모여 모래성도 쌓고, 송사리에 모래무치를 잡으며 노느라 정신 없었지요. 당시 안양천에 물이 많았던 이유는 지금은 평촌신도시가 들어선 벌판이 당시에는 아주 드넓은 대규모 논이었지요. 당시 평촌뻘이 엄청난 양의 물은 머금고 있는 저수지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땅이 콘크리트로 덮이면서 하천에 흐르던 물은 점차 없어지고, 이제는 하류쪽 하수처리장에서 정수처리한 물을 상류로 끌어올려 흘려 보내는 찝찝한 물을 보며..

1977년 안양대홍수로 주저앉은 안양대교

‪#‎안양‬ ‪#‎역사‬ ‪#‎기록‬ ‪#‎기억‬ ‪#‎다리‬ ‪#‎옛사진‬ ‪#‎안양대교‬ ‪#‎석수동‬ ‪#‎1977년‬/ 사진은 안양 석수동에서 안양 시내로 진입하는 중앙로의 안양대교로 1977년 안양 전역을 휩쓸고 지나간 대홍수로 인해 주저앉은 모습이다. 1977년 7월 8일부터 9일까지 안양에 내린 비는 무려 467.2mm로 기상청 창설이래 최대의 강우량을 기록하면서 이재민 6만명에 사망, 실종자 288명이라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혀 안양 대홍수라 쓰여지고 있다. 당시 안양대교뿐 아니라 안양철교도 일부 파손돼 경부선.혼남선 등 철길이 일시 막혔고, 안양 임곡교(수푸루지다리)는 끊어지는 등 당시 피해는 엄청났다. 특히 안양읍내는 수리산 자락에서 해일처럼 밀려드는 유수량으로 온 도시가 물에 잠겼으며..

1970년대 안양 다운타운 구시장(시대동) 골목

#안양 #역사 #기록 #기억 #골목 #옛사진 #시대동 #구시장 #1970년대/ 1940~1970년 초까지 안양읍내에서 가장 상권이 컸던 시대동(市垈洞)으로 구시장이라 불리우던 현 안양1동의 1970년대 중반의 골목 풍경으로 지금은 과거의 모습들은 모두 사리지고 그 자리에는 뜨란채아파트 단지가 자리하고 있다. 이이들이 노는 골목길 앞으로는 버스가 다니는 길이 있었는데 안양역에서 출발한 버스가 땡땡땡 철길을 건너 시장을 통과해 수푸루지 다리(현 임곡교)를 건너고 비산동성당 뒷길과 안양운동장 남문앞 고개, 수촌마을 뒷골목을 지나는 옛길과 인덕원으로 해서 과천을 지나 말죽거리로 넘어가는 서울 버스가 다니던 길이었다. 당시 구시장 철길에는 열차가 지나갈때는 땡땡땡 소리와 함께 건널목에 차단봉이 내려왔다. 철길 옆..

안양 장내동성당 담벼락의 항아리 골목(1980s)

#안양 #항아리골목 #안양4동 #장내동성당/ 1970년대 부터 1990년대 초까지 활기를 띠었던 안양 장내동성당(현 중앙성당) 담벼락을 따라 있던 안양 항아리 골목의 풍경입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의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안양에도 많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일자리를 찾아 충청도, 경상도 등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며 인구도 늘어나고 당연히 생필품 가게가 줄지어 생겨나기 시작했지요. 1977년 중앙로가 개통되면서 안양4동의 새시장(현 중앙시장)은 인근 군포, 의왕, 과천은 물론 멀리 안산, 군자에서도 물건을 구입하러 오는 손님들로 항상 붐빌 정도로 호황이었습니다. 당시 그릇으로는 양은그릇과 함께 항아리 그릇이 인기였는데 안양4동 중앙시장과 안양1동 남부시장 주변에는 항아리 가게들이 여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