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846

안양 최초의 영화관 화단극장의 1982년 풍경

화단극장은 해방이후인 1953년 3월에 개관한 안양지역 최초의 극장으로 신영일, 방희, 최윤석 주연의 영화 '빨간앵두'가 상영되던 1982년의 풍경이다. 화단극장은 안양역에서 서울 방면 500여미터 떨어진 구도로변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각 학교에 강당이 없던 시절(시흥군 관내 학교중에서 안양초등학교에 유일하게 강당이 있었던 것으로 사료)로 극장을 대절해 낮시간에 행사들을 가졌다. 안양은 1950-60년대 동양최대의 안양영화촬영소가 석수동에 있던 곳으로 주민들이 영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 196-70년대 왠만한 도시에 극장이 없던 시절 안양읍내에는 극장이 3개나 됐다. 화단극장은 안양의 두번째 극장인 읍민관(1968년 안양극장으로 이름 바뀜. 현 2001아울렛사거리), 세번째 개관한 삼원극장(현 C..

[안양권지도]19세기 광여도(古4790-58)-금천현 지도속 안양권

19세기에 만들어진 전국 군현 지도집인 『광여도』 경기도-금천현 지도속에 등장하는 안양권 일대를 살펴볼 수 있다. 금천현은 영등포구, 구로구, 금천구, 관악구, 광명시에 해당하며 읍치는 금천구청 근처에 있었다.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지도는 읍치를 중심으로 사방의 산이 겹겹이 둘러싸인 형태로 그려져 있다. 지도 아래쪽에 한강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른다. 한강가에는 강을 넘나들던 楊花津(양화진)과 方下串津(방하관진) 등의 나루가 표시되어 있다. 그 오른쪽에 보이는 仙遊峯(선유봉)은 지금의 양평동 인공폭포 부근에 있다. 읍치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하천이 지금의 안양천이고, 아래쪽의 하천이 지금의 도림천이다. 안양천 주위는 지금의 구로공단과 광명시 아파트단지가 있는 광활한 평지인데 지도에도 잘 표현..

[안양권지도]1861년 대동방여전도(大東方輿全圖)속 안양권과 한자(安養) 표기

대동방여전도(大東方輿全圖)는 김정호가 제작한 22첩의 《대동여지도》와 내용이나 구성이 거의 동일한 채색필사본 지도로 지도첩에 안양 인근 지명표기가 이채롭다. 북쪽의 관악산과 남태봉(현 남태령), 동쪽의 청계산, 남쪽의 오봉산, 서쪽의 수리산과 함께 안양, 과천, 시흥, 인덕원, 갈산(현 평촌갈산동), 부곡, 사근 표기와 함께 지명표기는 없지만 안양천과 학의천의 물줄기도 보이고 당시의 길도 선으로 표기돼 있다. 특이한 점은 안양의 한자 지명 표기가 安養으로 양자를 기를양 자로 표기하고 있어 일제 강점기 중반 이전에 安陽으로 양자를 볕양 자로 표기했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이 틀렸음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안양(安養과 安陽) 한자 지명의 각각 다른 표기는 조선시대의 여러 지도에서도 등장하는데 안양천석교(安..

1970년대 안양 박달2동 삼봉마을과 박달로

이곳은 박달2동에 위치한 삼봉마을(三峯洞)과 박달로변 사진이다. 마을 뒷산에 조그만 산봉우리 세개가 솟아있어 옛부터 삼봉마을이라 부르며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 비닐하우스를 설치 농작물을 재배하면서 취락이 이루어졌다. 삼봉마을을 지나가는 박달로는 일제 강점기에 수암 소래 인천쪽으로 통행하기 위하여 개설한 도로로 주변에 1950~1970년대에 유한양행 동국물산 삼화제면 등 크고 작은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공업지역이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공장들이 지방으로 이전한 그 자리에 한라 비발디 아파트 등 대단위 아파트가 건설되고 공동주택들이 건축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70년대 비포장 도로였던 박달로가 넓게 포장되고 박달우회 도로가 개설되었다.

1969년 국민관광지였던 안양유원지와 임시기차역

#안양 #안양풀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관광지 #기차역 #임시역/ 지금의 안양예술공원은 조성 당시인 1930년대에는 안양풀이라 불렀으며 1960년대 이후부터 2000년대 까지는 안양유원지라 부르던 관광지였다. 사진은 1969년 안양유원지 입구(현 안양교사거리)의 풍경으로 당시 1번국도(현 만안로)에서 안양유원지로 가던 길(현 예술공원로) 입구에 안양유원지 입구임을 표기한 아치가 설치되어 있다. 사진 오른쪽은 안양역 방향으로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 안양천이 흐르고 안양교와 안양철교가 있으며, 사진 왼쪽에는 만안교(1980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는 영화아파트가 들어섰다)와 고려석면 공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진 아치가 있는 곳에는 현재 예술공원지하차도가 놓여졌으며 도로 주변에는 상가..

[옛사진]981년 양명고 가는 길 안양천 나무다리

#응답하라 #1981년 #안양 #양명고 #안양천 #나무다리/ 안양2동 구도로에서 안양천 건너 망해암과 양명고쪽을 연결해 주던 나무다리로 양명고교 학생에게는 소중한 통학였습니다. 나무다리가 있는 곳은 현재 구도로(만안로)에서 청원지하도를 지나면 보이는 양명교가 놓여진 곳으로 안양천에 물이 많았던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드럼통으로 만든 줄배를 타고 건너야 했는데 이후 임시 나무다리가 가설됐는데 안양2동 김귀연 전 주민위원장의 부친으로 안양 의용소방대에 소방대원으로 근무하셨던 고 김인섭 어르신께서 매년 사비를 들여 놓으셨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나무다리라도 건너 등하교를 할 수 있었지만 여름철 비라도 많이 내려 물이 불어나면 다리가 잠기거나 다리가 물에 떠내려가면 비산동 임곡교 또는 안양유원지쪽으로 빙..

[안양권지도]1750-1768년 제작 조선지도(奎 16030)속 금천

1750-1768년 무렵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지도(奎 16030) 경기도편의 과천현지도. 전라도 56개 고을을 제외한 함경도(23장)·평안도(42장)·강원도(27장)·황해도(23장)·경기도(33장)·충청도(54장)·경상도(71장)의 고을이 순서대로 1책에서 7책으로 묶여있는 지도책이다. 모든 지도는 4.2cm의 방안(方案) 위에 그려져 있다. 이 방안은 축척(縮尺)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국 모든 고을이 동일한 축척 아래 그려져 있는 보기 드문 지도책이다. 따라서 지도에 표현된 고을의 크기는 실재의 면적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지도해설)현재 서울특별시의 영등포구, 구로구, 관악구, 금천구, 동작구 일부지역과 경기도 광명시와 안양시 일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한강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양권지도]1750-1768년 제작 조선지도(奎 16030)속 과천

1750-1768년 무렵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지도(奎 16030) 경기도편의 과천현지도. 전라도 56개 고을을 제외한 함경도(23장)·평안도(42장)·강원도(27장)·황해도(23장)·경기도(33장)·충청도(54장)·경상도(71장)의 고을이 순서대로 1책에서 7책으로 묶여있는 지도책이다. 이 지도에는 관악산, 수리산, 청계산, 태을산과 함께 현재의 학의천은 인덕천으로 표기되었다. 특히 갈산참(현재의 갈산동)이 등장해 당시 이 지역이 숙박과 식사를 할수 있는 주막들이 자리하였던 주요 교통로의 한 지점임을 알수 있으며 안양(安陽) 한자 지명은 볕양으로 표기되었다. 참고로 안양의 한자 표기에 있어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安陽(볕양)으로 표기했다고 하나 安養(기를양)과 安陽(볕양)이 혼재하며 표기되었다. ..

[안양]1976년 안양시내 가족계획 거리 캠페인

#안양 #가족계획 #출산 #산아제한 #만안 #안양로/ 1976년 안양시내에서 펼쳐진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가족계획 거리캠페인 모습으로 사진속에 안양의 가장 변화가였던 안양 만안구 중앙 중앙시장앞, 우체국사거리, 안양목재소 등이 보여 안양5동 안양우체국 사거리에서 석수동 안양대교까지 거리 행진을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60년대에는 산아제한, 즉 가족계획사업은 무엇보다도 절실한 국가적 과제였다. 당시 가임기 여성(15∼49세) 한 명이 평균 6명의 자녀를 낳을 정도로 다산(多産)이 보편화 돼 개인·국가적으로 큰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60년대), ‘딸 아들 구별말고 둘만낳아 잘 기르자’(70년대). 당시 가족계획 캠페인의 대표적인 슬로건이었다. 1962년 수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