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677

1968년 안양 시대동과 태평방직 주변

#안양 #도시 #마을 #동네 #골목 #옛사진 #안양1동 #태평방직 #구시장 #수푸루지 #임곡교 #안양천 #시대동 #닐미샬로프/ 안양3동의 금성방직과 함께 1950-70년대 굴뚝공장 산업단지 안양을 상징하던 안양1동의 태평방직과 주변 시대동 풍경으로 당시 석수동 미군부대 전령으로 근무했던 닐미샬로프가 1968-1969년 겨울에 헬기에서 찍은 사진이다.먼저 사진속에 안양 상공을 동시에 날고 있는 헬리곱터 한대를 설명한다. 이 헬기는 미국 보잉사가 개발한 대형수송헬기인 CH-47D 치누크 헬기(Chinook helicopter)로 1962년 실전 배치된 이후 50년이 지난 2012년까지 1,200여대가 생산됬고,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도 포함하여 16개국에서 운영중인데 기록에 의하면 1968-69년 당시 석수동..

1970년대 초 안양 중앙동 화진정 골목

#안양 #기록 #기억 #역사 #만안구 #원도심 #동네 #골목 #안양1동 #안양일번가 #화진정 #유래정 #삼성집 #1970년/ 사진은 1970년대 초 안양읍에서 가장 번화가였던 안양역앞 안양1동(현 안양일번가 안양로 304번길) 골목길의 풍경이다. 사진을 찍은 위치는 장내로 149번길의 현 식당-두끼(2층), 명랑핫도그가 있는 교차로에서 중앙시장쪽을 항한 곳으로 세게과자할인점, 식당-두끼(2층)찍은 것으로 사진속 뒷쪽 왼쪽에는 화진정, 오른쪽에는 유래정과 삼성집, 그 뒤로는 신영순의원 간판탑이 우뚝 서 있다. 화진정은 갈빗집으로 유명했다. 화진정 식당 출입문 왼쪽으로 유리로 둘러싸인 갈비를 굽는 곳이 있었는데 그 고소함은 골목으로 진동했다. 초창기에는 수원의 유명한 갈빗집 주방장을 거액을 주고 스카웃 해왔..

1960년대 안양3동 율목마을과 수암천 풍경

1960년대 안양3동 율목마을과 수암천 풍경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원도심 #동네 #골목#1960년대 #안양3동 #수암천 #율목마을 #율목동 #피난민촌 #철길 #채석장 #율목주공/ 1960년대 안양9동 새마을 올라가는 길 옆 개천(수암천)의 풍경으로 사진 오른쪽이 현재 율목2교와 한숲작은도서관과 주차장 주변이며 사진 중앙의 개천 건너 뒷쪽의 산자락 아래가 과거 율목동이라 불리오던 율목마을로 현재의 율목주공아파트가 줄어선 자리이다. 사진에는 안보이지만 어린이들 왼쪽 뒷쪽으로는 안양역에서 병목안채석장까지 놓여진 철길이 있었고, 자동차가 한대 정도 다닐 정도의 도로 앞으로는 삼진알미늄과 한국아트제지(현재의 프라자아파트, 1986년 신축)가 있었다. 사진속 동네는 수암천변을 '피난민촌'이라 부른다. 피난..

1959년 유유산업 안양공장 준공식

#안양 #기록 #기억 #옛사진 #이야기 #유유제약 #유유산업 #석수동 #김중업건축물/ 사진은 현재의 안양박물관(구 김중업박물관)에 자리했던 (주)유유산업 안양공장(현 유유제약)의 1959년 5월 준공식 장면이다. 1941년 유한무역주식회사로 시작한 ㈜유유는 1941년 안양풀장(안양유원지-안양예술공원) 초입의 포도밭 등 나대지를 매입해 안양공장을 준공해 2007년 제천으로 이전하기까지 국민의 건강증진과 국가 경제발전을 위한 제약기업이었다. 유유산업 창립자는 유득한 씨였는데 한국의 손꼽히는 건축가 김중업(金重業,1922∼1988)에게 건축을 의뢰한 결과 50년대를 대표하는 산업건축물이 탄생하는데 어려운 시대에 공장에 예술을 가미해 건축했다는 것은 높은 안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평가다. 특히 사무동 지..

1960년대 말 안양역앞 골목길(현 일번가)

#안양 #기록 #기억 #역사 #만안구 #원도심 #동네 #골목 #안양1동 #안양일번가 #안양역 #1960년/ 사진은 1960년대 말 안양읍에서 가장 번화가였던 안양역앞 안양1동(현 안양일번가-장내로 149번길) 골목길의 풍경이다. 사진을 찍은 위치는 장내로 149번길 현 세게과자할인점, 식당-두끼(2층), 명랑핫도그, 스킨후드 골목사거리에서 안양역공용주차장(당시에는 버스정류소) 방향으로 찍은 것으로 사진속 골목 끝자락 광장에 주차된 버스들이 보인다. 골목 왼쪽으로는 불고기, 갈비 등을 팔던 한식집 새마을식당(현 베트남칼국수, 와 노래연습장 검물) 간판이 보이는데 당시 이 곳은 관선시대 시절, 시흥군청, 안양읍사무소, 안양경찰서 등에 근무하던 직원들이 자주 드나들던 식당으로 꽤 유명했다. 새마을 식당 옆으로..

1970년대 안양1번가에 있던 안양경찰서와 역사

1970년대 안양1번가에 있던 안양경찰서와 역사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원도심 #동네 #골목 #1970년대 #안양1동 #안양경찰서 #중앙동/ 1970년대 안양 원도심(현 안양일번가)에 있던 안양경찰서 건물의 모습으로 "한국적 민주주의 이땅에 뿌리박자", "통일 위한 구국영단 너도나도 지지하자", "구국의 유신이다 새 역사를 창조하자" 등의 표어를 내걸고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 간듯 하다. 과거 국가는 근대화 초기부터 주도적으로 나서 포스터, 표어, 담화문 등의 수단을 이용해 국민을 계도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왔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각종 표어는 당시의 시대상과 시국의 모습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안양경찰서 정문에 내걸린 표어 역시 당시 박통이 장기집권을 꾀하며 유신의 정당성을..

1960년대 안양 구시장 가는길 땡땡땡 철길 건널목

#안양 #기록 #기억 #추억 #구시장 #시대동 #안양1동 #철길 #건널목 #간수/ 사진속 건널목은 1930-60년대 안양읍내 1번 국도와 안양역에서 시대동(안양1동) 구시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꼭 지나가야 할 연결 지점으로 현재의 진흥육교가 있던 자리로 사진 속 건널목 간수 뒷쪽으로 안양역이 희미하게 보인다. 당시에는 열차가 가까이 다가오면 건널목에 차단봉이 내려지고 땡땡땡땡땡~~~ 하고 종소리가 크게 들린다하여 '땡땡땡 건널목'이라 불리오던 이 건널목은 청계, 과천에서 1번국도 또는 안산으로 연결하던 간선도로가 지나던 주요지점이었다. 건널목 서쪽에는 안양역과 1번국도, 행정타운이, 동쪽에는 시흥군 최대 규모의 안양시장(구시장. 1926년 1월 28일 개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안양시장은 1929년 안양 ..

1968년 안양 용화사앞 도로변 상점들

#안양 #기록 #기억 #옛사진 #닐미샬로프 #안양역로터리 #잡화상 #용화사 #미륵불/ 1968년 안양읍내 잡화상 풍경으로 이 사진은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83병기대대) 전령으로 근무했던(1968.3-1969.4) 닐 미샬로프(Neil Mishalov)가 코닥 컬러슬라이드필림으로 찍은 것이다. 사진속 위치는 현재의 안양 CGV 대각선 반대편의 본프라자 빌딩 주변으로 당시 안양역 주변에는 각종 생필품을 사는 잡화상들이 즐비했다. 1960년대 말까지 안양에는 안양역앞을 지나는 1번국도가 유일했으나 1970년대 초에 석수동에서 구 안양경찰서(명학교) 까지 연결되는 안양로가 새로 개통되면서 차량과 사람의 통행이 많아지면서 안양의 번화가였다.. 현재의 본프라자 자리에는 당시 용화사라는 절이 있었다. 용화사는 194..

1977년 안양 대수해_안양유원지 산사태

#안양 #역사 #기록 #기억 #동네 #안양유원지 #계곡 #산사태 #안양대수해 #옛사진 #1977년 1977년 안양대수해 당시 안양시 석수동 안양유원지 지금의 벽천광장 우측 게곡에서 발생했던 산사태 현장의 처참한 모습으로 안양파빌리온(알바로시저 작품)이 들어선 뒷산이다. 당시 안양유원지에는 엄청난 비로 삼성산과 관악산 산자락과 계곡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거대한 바위와 흙이 쏟아져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계곡은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특히 집채만한 바위덩이들이 계곡으로 떨어지고 대영풀장, 몸모스수영장 등 천변 인공수영장의 풀장안으로 자갈과 바위들이 밀려들어 더이상 영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를 입혔다. 안양 사상 최대의 사건으로 지금도 안양 대수해, 안양 대홍수, 쌍칠(77)년 대홍수 등으로 불리..

1970년대 안양유원지 계곡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응답하라1970/ 사진제공: 이정범선생/ 1970년대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계곡의 모습으로 당시에는 천변 상점에서 자리가 좋은 곳에 평상과 천막을 치고 일명 자릿세를 받았다. 1960-70년대의 안양유원지는 서울과 수도권 시민들의 여름철 피서지였다. 1972년 발행된 중앙지 신문들을 보면 안양유원지에 한해 평균 100만 인파가 몰릴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안양유원지에는 국립도서관 임간문고, 우표 간인까지 별도로 있는 임시 우체국, 임시 경찰서까지 있었다. 또 1번국도(현 만안로.구도로)에서 안양유원지로 들어오는 경부선 철길(현 굴다리)에는 안양유원지 임시역이 설치돼 완행 열차들이 이 곳에 정차해 피서객들을 실어나를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