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660

1974년 안양 장내동성당(현 중앙성당) 뒷골목

1974년 안양 장내동성당(현 중앙성당) 뒷골목 정비 #안양 #기억 #추억 #도시 #골목 #장내동성당 #중앙성당/ 1974년 안양4동에 자리한 장내동성당(현 중앙성당) 뒷 골목(냉천로 172번길)을 정비하는 모습으로 사진 왼쪽 소나무 틈새로 살짝 보이는 건물이 옛 성당의 뒷쪽(제의실) 이고, 사진 중앙의 2층 건물이 당시 사제관(이후 수녀원으로 사용됨)으로 지금 그 자리에는 안양유치원이 들어서 있다. 사제관 건물 오른쪽 뒤로 굴뚝과 건물들이 보이는데 당시 고려석면 안양공장(현 2001아울렛_벽산쇼핑과 벽산아파트)이다. 안양 중앙성당(장내동성당)은 과거 지금보다 그 면적이 매우 넓었다. 사진속 골목길 오른쪽으로 지금은 단독주택 집들이 들어서 있지만 197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었으며 ..

1974년 안양역과 열차통학생

#안양 #추억 #기억 #기록 #열차통학 #안양역 #응답하라1974/ 1974년의 안양역 풍경으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는 학생들과 전철 플렛폼 공사가 한창인 모습이 담겨있는 한장의 흑백사진이다_경향신문. 1960-70년대 서울, 부산 등 대도시 주변에는 '통학열차'로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지금은 서울~인천, 서울~수원 구간 등이 멀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그때에는 등교에만 족히 2시간 가까이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특히 중·고교 평준화가 이루어지기 전인 1973년 까지만 하더라도 안양에 있던 고등학교는 안양여고, 안양공고, 근명여고뿐으로 인문계 남자고등학교가 없어 서울과 수원, 인천으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열차통학생은 지각이 가장 큰 두려움중 하나였다. 통학열차가 떠난 뒤에는 온가족이..

1947년 박두진 시인 안양중앙교회 장로 되던 날

1947년 박두진 시인 안양중앙교회 장로 되던 날 기념사진 #안양 #박두진 #시인 #안양중앙교회 #교회 #역사 #기록 #기억 #자료/ 골목길 탐방에 나서 재개발을 앞두고 한집 두집 이사를 떠나가는 동네의 골목을 다니다 보면 버려진 물건들 속에서 귀중한 물건을 득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사진 또한 그러한 과정에서 발굴한 것으로 1985년 5월 17일 발행한 안양중앙교회 55년사에 실린 것으로 철거 공사가 한창인 안양6동 소골안(소곡마을)을 마지막 풍경을 사진에 담기 위해 갔다가 철거를 앞둔 어느 집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한 책속에 담겨진 사진중 한 컷이다. 사진은 청록파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혜산(兮山) 박두진 시인이 안양에 거주하던 젊은 청년 시절 안양중앙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31살의 젊은 나이에 장..

1978년 5월 안양역 광장의 거리질서 캠페인

#기록 #기억 #역사 #옛사진 #응답하라 #안양 #안양역 #집회 #캠페인 #행사 #광장 #역전/ "쾌적한 도시는 질서확립으로 부터" 1978년 5월의 안양역 풍경으로 안양시의 거리질서캠페인에 새마을 등 민간단체와 관내 학교에서 학생들이 동원돼 플랜카드를 들고 거리를 순회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1960년대에는 읍민관(안양극장-현 다이소) 앞이 선거유세, 궐기대회 등 각종 집회와 읍내 행사의 장소였는데 1976년 무렵 안양여고 사거리까지만 개설됐던 도로(현 중앙로)가 안양대교가 놓여지고 석수동삼거리까지 도로가 뚫린 이후 안양역 광장에서 다중 집회가 자주 열렸지요. 사진을 보면 당시 안양역 광장은 지금의 원형 광장과 달리 화단 분리대가 중앙에 있고 역 앞에는 택시 승강장이 있으며 역 앞이 지금보다 더 넓어 당..

1969년 안양역 진입 경부선 철길

#안양 #기록 #기억 #철길 #안양역 #경부선 #한국특수제지 #금성방직 #닐미샬로프/ 1969년 경부선 철길의 모습으로 당시 안양 구시장 땡땡땡 건널목(현 안양1동주민자치센터 앞 육교)에서 안양역을 향해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석수동 미군부대(83병기대대)에 우편병(전령)으로 근무(1968년 3월-1969년 4월)했던 닐 미샬로프(Neil Mishalov)가 찍은 것으로 경부선 철길이 2개인 복선(현재는 복복선 4개) 당시로 지금과 달리 철길 주변에는 전봇대들이 철길과 함께 이어져 있다. 사진 앞은 안양역 방향으로 왼쪽에는 역사 오른쪽으로는 한국특수제지(현 안양1동 삼성레미안)가 있었다. 당시 안양역에서 병목안 채석장까지 철길이 놓여져 자갈을 실어 날랐을뿐만 아니라 한국특수제지와 금성방직 공장으로도 ..

1970년대 안양4동에 있던 중앙교회

#안양 #기억 #기록 #안양중앙교회 #예배당 #안양4동/ 안양시 만안구 안양4동 장내로 125(중앙시장 화신로 입구)에 자리한 안양 중앙교회의 옛 교회당(1960-70년대) 모습으로 당시 종탑이 우뚝선 안양 장내동성당과 함께 예배당 교회탑이 높다란 안양읍내 어디서나 눈에 띄는 건물이었다. 이 사진은 1985년 5월 17일 발행된 안양 중앙교회 55년사에 수록된 것인데 사진속 교회 현판에 안양중앙교회로 명시된 것을 보면 '대한기독교장로회 안양교회'에서 명칭이 변경된 1968년 5월이후인 1970년대 초반에 찍은 것으로 보인다. 안양 중앙교회의 연혁을 보면 1930.5월 양동익 전도사(제1대교역자) 안양청년회관 안양교회 첫 예배를 드린 것을 시작으로 1930.10월에 시흥군서이면 안양리 632번지에 예배당을..

1960년대 금성통신 안양공장 본관 건물

#안양 #기록 #기억 #금성통신 #1960/ 안양 호계동에 있었던 금성통신 안양공장 본관 건물의 1970 모습이다. 1969년 안양 호계동에 포진했던 금성통신은 1992년 매각되었으며 현재 그 자리에는 대규모 공구상가인 안양 국제유통단지 디오벨리가 들어섰다. 금성통신의 역사를 보면 1965년부터 부산 온천동(溫泉洞) 공장에서 EMD식 자동교환기를 생산하던 금성사는 폭증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1968년 안양(安養)에 통신기기 전용공장의 신축에 나선 데 이어 1969년 10월 기존 통신사업부를 주축으로 한 금성통신주식회사를 출범시키고 대표이사 회장에는 락희그룹회장 구인회(具仁會), 대표이사 사장에는 금성사 사장 구정회(具貞會)가 겸임했다. 금성통신 안양공장은 1992년 서울의 산업중기계 부품상 협동조합에..

1960년대 안양 호계동에 있던 금성통신 안양공장

#안양 #기록 #기억 #금성통신 #1960/ 안양 호계동에 있었던 금성통신 안양공장의 1960년대 모습이다. 사진 아래쪽의 도로는 1번국도로 왼쪽이 안양시내쪽, 오른쪽이 구군포(호계구사거리)방향으로 신작로라 불리우던 도롱로에는 포플러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지금도 이 도로의 대표적 가로수이다. 1번국도에서 공장쪽으로 담장안에는 녹색의 잔디밭이 마치 벨트처럼 넓게 이어져 있는데 당시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멋진 휴식처였다. 금성통신 본관 뒤로는 그야말로 허허벌판이다. 1970년대 중반인 76년 무렵 경수산업도로(경수대로)가 뚫리면서 금성통신 뒷편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사진 우측의 공장동 뒷쪽으로 고층의 LG연구소가 들어서고 후문쪽 언덕 주변으로는 주택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인구가 대폭 늘어나기 시작한..

1970년 겨울 안양유원지 계곡(안양관광호텔 건너편)

1970년 겨울 안양유원지 계곡(안양관광호텔 건너편)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소풍 #마실 #안양유원지 #밥아후어한/ 1970-72년 무렵의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겨울 풍경으로 당시 석수동 미군부대(83병기대대)에 근무했던(1969년 9월–1972년 6월/2년 10개월) 'Bob Auerhahn'씨가 찍은 사진으로 최근(2017년 3월) 구글+를 통해 처음 공개한 사진이다. 사진속 위치는 안양관광호텔(현 블루몬테)에서 계곡 건너편으로 사진 윗쪽 산 정상에 있는 통신용 안테나는 수도군단 통신대가 운영하는 것으로 지금도 있다. 사진 오른쪽으로는 폭포수상회, 호수 여관 등의 간판이 보인다. 당시에는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물가였지만 지금은 계곡 윗쪽 염불암 삼거리까지 우회도로가 개통되고 다리까지 놓..

1968년 여름의 안양유원지 풍경(현 벽천광장앞)

#안양 #기록 #기억 #역사 #피서 #안양유원지 #닐미샬로프/ 1968년의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풍경으로 당시 석수동 미군부대(83병기대대)에서 우편병(전령)으로 근무했던(1968년 3월-1969년 4월/ 1년 1개월) '닐 미샬로프(Neil Mishalov)씨가 찍은 사진이다. 사진속 위치는 현재의 벽면분수가 있는 벽천광장 끝자락으로 연주암, 불성사, 망월암, 천인암, 삼막사, 염불암 등의 사찰 이름이 적힌 화살표 팻말이 걸려있다. 삼성산과 관악산에 자리한 사찰들에 지금은 등산객이나 찾지만 당시에는 안양유원지로 소풍온 나들이객들이 평범한 옷차림에 운동화, 고무신을 신고 비포장 산길을 올라 사찰까지 들렸을 만큼 관광지나 다름없었다. 1960-70년대의 안양유원지는 서울과 수도권 시민들의 여름철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