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677

[안양권지도]1936년 영등포 지도와 시흥군 역사

#지도 #시흥군 #영등포구 #안양 #금천 #시흥/ 시흥군청이 영등포에 있을 당시인 1936년의 옛 지도로 당시 영등포의 중요시설들이 상세하게 표기돼 있다. 자료를 보면 시흥군청은 1949년까지 지금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경인국도 언덕배기에 있었다. 일제 때에는 현 영등포구의 절반과 대림동 일대까지 시흥군에 속했을 정도였다. 안양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조 22대 임금인 정조가 1795년 수원화산 능행시 시흥현과 과천현 경계지점인 삼성천에 만안교를 건설하는 등 시흥대로를 건설하고 안양에 안양행궁을 짓자 민가와 거주민들 늘어나게 된다. 1905년 1월에는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안양역이 생기면서 점차 도시의 틀을 갖추기 시작한다. 19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안양의 중심은 호계동 일대였다. 이는 삼..

[옛사진]안양초교 38회 졸업(1969년) 앨범속 얼굴들

안양초등학교 38회(1969년 졸업) 졸업앨범이다. 40년의 세월을 말해주듯 빛바랜 앨범은 표지와 속장에 이어 두번째 페이지에는 교훈, 교가, 교기와 함께 교장선생님 얼굴, 세번째 페이지에는 은사들 얼굴, 이어 다음장 페이지부터는 각 반별 사진 그리고 사진 뒷페이지에는 사진속 인물을 따라 이름 적은 별지 순으로 8반까지 한반에 평균 6-70명씩 500여명의 학생들이 한 교정에서 공부하고 뛰놀았던 얼굴들이 담겨져 있다. 안양의 오래된 모습과 사람 등 옛 사진들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그 이유는 1977년 안양대수해로 인해 기관, 회사, 직장은 물론 각 가정의 책장 또는 장롱속에 보관하던 두툼한 앨범도 대부분 물에 젖거나 훼손, 분실, 망실되면서 과거의 수많은 기록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잠깐 안양 대홍수를 ..

[옛사진]1970년대 말 안양 관악역앞 만안로 이전 공사

#옛사진 안양 #역사 #기록 #기억 #골목 #철길 #석수동 #관악역 #만안로 #신필름 #안양영화예술전문학교 #영화촬영소 #1970년대 말/ 안양시 석수2동 국철 1호선인 관악역(冠岳驛. 석수2동 241)에서 안양역(남쪽) 방향으로 본 동네 풍경이다. 사진 우측 뒷쪽으로 보이는 큰건물이 당시 신상옥 역화감독이 운영하던 영화촬영소인 신필름(현재 안양로 532번길 현대아파트)이다. 큰 건물 2동중 왼쪽옆으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학교로 안양영화예술학교(현재 안양로 510번길 무림아파트)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진속 풍경은 도로 확장공사가 한창으로 수도권 전철1호선이 개통(1974년)한 이후 전철옆을 지나는 만안로(옛 국도 1호선)의 석수동 안양육교( 현 연현오거리)에서 안양유원지 입구인 안양교 사거리까지의 곡선..

1940년대 군포보통학교 2학년(25회 졸업생) 학기초 기념사진

군포보통학교(1920년 개교. 현 군포초등학교) 25회 졸업생들이 2학년 재학시인 1940년대 2학기 시작을 기념하며 찍은 단체사진이다. 지난 2015년 '군포옛삶터사진展'에 심태섭 어르신이 제공한 사진으로 사진속에는 군복 입은 담임선생님이 뒤로 단발머리 소녀들과 까까머리 남학생들이 차렷 자세로 카메라를 응시한 모습이다. 중간 중간 흰색도 있지만 여학생들은 검정색 치마저고리에 남학생들은 단추달린 웃옷이 당시 교복으로 보인다. 군포초등학교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6월 조선총독부로부터 보통학교 인가를 받아 다음해인 1920년 4월 1일 군포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한다. 개교 당시에는 학교가 군포장역이 있던 시흥군 남면 역전 인근(현 군포로 43. 우리은행 군포지점 삼거리)에 있었으나 ..

[옛사진]1968-69년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 인근 아이들(흑백)

#응답하라1968 #안양 #기록 #역사 #동네 #추억 #석수동 #닐미샬로프/ 안양시 석수동에 있던 미군부대(83병기대대) 전령으로 근무했던(1968년 3월~1969년 4월) 닐 미샬로프씨가 컬러 슬라이드필름으로 촬영한 당시 미군부대 주변, 안양 석수동에 살았던 아이들의 모습으로 콧물이 흐르던 천진만만한 아이들의 표정은 책가방과 옷차림 드을 통해 당시 어린이들의 삶을 살펴볼 수있다. 사진속 주인공들은 아마도 미군부대 인근에 자리한 삼성초등학교와 안양중. 안양여중에 다니던 어린이와 학생들로 그들은 이제 60-70대의 어른들이 되어 있을터. 83병기대대는 삼성천옆에 자리했던 대규모 부대(현재 석수 이편한세상아파트)로 1970년대 중반까지 있었다. 이 부대는 특수탄약을 관리하던 부대로 박달동 수리산 자락의 군용..

[옛사진]1968-69년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 인근 아이들(컬러)

#응답하라1968 #안양 #기록 #역사 #동네 #추억 #석수동 #닐미샬로프/ 안양시 석수동에 있던 미군부대(83병기대대) 전령으로 근무했던(1968년 3월~1969년 4월) 닐 미샬로프씨가 컬러 슬라이드필름으로 촬영한 당시 미군부대 주변, 안양 석수동에 살았던 아이들의 모습으로 천진만만한 아이들의 표정은 물론 컬러 색상을 통해 당시 어린이들의 옷과 신발-고무신, 머리 형태 등을 살펴볼 수있다. 사진속 주인공들은 아마도 미군부대 인근에 자리한 삼성초등학교와 안양중. 안양여중에 다니던 어린이와 학생들로 그들은 이제 60-70대의 어른들이 되어 있을터. 83병기대대는 삼성천옆에 자리했던 대규모 부대(현재 석수 이편한세상아파트)로 1970년대 중반까지 있었다. 이 부대는 특수탄약을 관리하던 부대로 박달동 수리산..

[옛사진]1970년대 초반 안양유원지 인기 놀이터 그네

1970년대 초반 안양유원지 최근 인기 놀이터 그네 #안양 #기록 #기억 #역사 #동네 #골목 #1960년대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그네/ 1970년 초 안양유원지 그네장의 풍경으로 당시 석수동 미군부대(83병기대대)에 근무했던(1969년 9월–1972년 6월/2년 10개월) 밥 아후어한(Bob Auerhahn)씨가 찍은 사진으로 2017년 3월 구글+를 통해 찾아낸 것으로 구글+에 올려진 그의 앨범(https://plus.google.com/photos/... )속 200여장의 사진중 하나입니다. 당시 안양유원지는 풀장과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여름뿐만 아니라 봄에는 딸기, 초가을에는 포도와 보트를 타며 데이트를 할 수 있어 그야말로 서울과 수도권 주민들의 휴식처였지요. 안양유원지 초입인 버스..

[옛사진]1968년 여름 안양유원지 계곡의 풍경

1968년 여름 안양유원지 계곡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옛사진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닐미샬로프 수도권 주민들의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받던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계곡의 1968년 여름 풍경으로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 전령을 근무했던 닐미샬로프가 코닥슬라이드 필름으 로 찍은 사진입니다. 무더위가 시작되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를 찾아 나서지요. 피서 풍습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지만 일상을 떠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잠시나마 더위를 잊고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한다는 의미는 변함이 없답니다. 근래에는 해외여행이나 시설 좋은 물놀이 공원에서의 피서가 흔한 풍경이 되었지만, 삶이 궁핍했던 1950~1960년대에 사람들은 산과 바다로 달려가 더위를 식혔다. 당시 서울..

[옛사진]1977년 안양6동에 자리했던 옛 시흥군청 모습

1977년 안양6동에 자리했던 옛 시흥군청 모습 #시흥군 #안양 #안양6동 #공공기관 #옛사진/ 경기도 안양시 안양 6동에 있는 옛 시흥군청(1977년 개관)의 모습으로 건물은 서너차례 증축과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 만안평생교육센터로 사용중이다. 시흥군 청사는 1936년 영등포에 있다가 1945년 안양1동(안양 1번가 현 삼원프라자호텔)으로 이전해 왔으며 이후 1977년 8월 30일 안양6동에 새 청사를 마련해 다시 이전했다. 안양6동에 있던 시흥군청은 1980년 소래면이 소래읍(현 시흥시)으로 승격되면서 안양에서 소래읍으로 다시 이전했다가 소래읍이 시흥시로 승격되면서 소멸된다. ■과거 거대한 행정구역이었던 시흥군 시흥(始興)이라는 명칭이 "넓은 땅(廣野)"을 의미하고 고구려 시대 지명인 잉벌노(仍伐奴)의..

1960년대 여름 안양유원지 아치와 신여성

1970년대 초반 여름 안양유원지 아치(현 지하차도) #안양 #기록 #안양풀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여름 #피서/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를 찾아 나서지요. 피서 풍습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지만 일상을 떠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잠시나마 더위를 잊고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한다는 의미는 변함이 없답니다. 근래에는 해외여행이나 시설 좋은 물놀이 공원에서의 피서가 흔한 풍경이 되었지만, 삶이 궁핍했던 1950~1960년대에 사람들은 산과 바다로 달려가 더위를 식혔다. 당시 서울에서 멀리는 대천·송도로 피서를 떠나기도 했지만 가까운 시냇가, 계곡, 한강, 뚝섬 등에서 물놀이를 했으며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는 인파가 몰리는 피서지중 한곳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