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677

1970년대 안양유원지 계곡의 풀장들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안양유원지 #응답하라1970 #풀장 #맘모스풀 #관광호텔수영장 #만안각수영장/ 1970년대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상류쪽 계곡과 유료 풀장들의 모습이다. 1960-80년대 안양유원지에는 2개의 공짜풀장과 더불어 대영장풀장, 맘모스풀장, 관광호텔수영장, 만안각수영장이 있었는데 사진에는 3개의 유료수영장 전경이 담겨 있다. 사진 위 왼쪽 귀퉁이 살짝 보이는 파란 건축물이 당시 맘모스수영장으로 지금의 벽천분수광장 위 24시 점포(세븐일레븐) 앞으로 풀장은 없어졌지만 2016년까지만 하더라도 부지 한쪽 귀퉁이에 70년대부터 운영하던 놀이시설이 있었는데 2017년 초 모두 없어지고 그동안 공사를 해온 대규모 상가 건물이 문 열기 직전이다. 맘모스풀장 오른쪽에 보이는 건축물은 당..

1960년대 안양천과 덕천마을 일대

#안양 #덕천마을 #안양천 #안양7동 #안양8동 #안양1동 #비산동 #태평방직 #비산대교 #안양냉동사 #삼풍 #동화약품 #쌍개울/ 1960년대 안양천과 안양1동, 안양6동, 안양7동, 안양8동, 비산동 등 광범위한 지역의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 귀중한 사진으로 안양 비산동 대림대학교 뒷산에서 의왕. 수원쪽 방향으로 찍은 것으로 사진 앞쪽이 남쪽 방향이며 왼쪽은 평촌벌, 오른쪽은 안양읍내쪽이다. 사진 아래 오른쪽에서 구비구비 곡선으로 왼쪽으로 희미하게 가로지르는 폭넓은 하천이 안양천이다. 하천 중앙과 오른쪽에 교량(다리)을 놓기 위한 교각들이 서 있는데 경수산업도로(석수동~호계삼거리)가 놓여지기 전으로 2개의 다리가 만나는 지점이 현재의 비산동 이마트 자리쯤 된다. 사진 오른쪽 아래 안양천에 놓여진 측면으로..

1977년 안양 대수해_수암천 안양3동.새마을 피해 복구 현장

#안양 #역사 #기록 #기억 #동네 #안양3동 #새마을 #수암천 #삼덕제지 #옛사진 #1977년 1977년 안양대수해 당시 안양3동과 새마을의 수암천변의 피해를 복구하는 현장 모습이다. 사진은 현 안양공고 앞으로 안양공고 학생들이 수암천변의 쌓인 부유물을 치우고 청소하느라 구쓸땀을 흘리고 있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공장은 삼덕제지(현 삼덕공원)이고 멀리 보이는 다리가 양지3교로 당시 수암천이 지금보다 꽤 넓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안양 사상 최대의 사건으로 지금도 안양 대수해, 안양 대홍수, 쌍칠(77)년 대홍수 등으로 불리우고 있는 1977년의 집중 호우는 7월 8일 밤부터 9일까지 단 하루만에 내린 강우량이 무려 454.5mm로 기상청 창설 이래 최대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당시 안양 원도심은 마치 양..

1977년 안양 대수해_안양천 수푸루지 피해 복구 현장

#안양 #역사 #기록 #기억 #동네 #안양1동 #안양천 #수푸루지 #한국제지 #옛사진 #1977년 1977년 안양대수해 당시 안양1동 구시장에서 비산동으로 건너가는 안양천 수푸루지 다리 인근의 천변을 청소하고 피해를 복구하는 현장 모습이다. 사진을 찍은 곳은 수푸루지다리(현 임곡교)위로 사진 앞쪽은 석수동 방향으로 멀리 미루나무 숲이 보이는데 그 앞이 양명고교이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대형공장은 아트지 등 고급종이를 생산하던 한국제지(현 안양1동 삼성 레미안아파트)이고 오른쪽 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도로는 석수동에서 호계삼거리를 연결하는 경수산업도로이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당시 수푸루지 다리는 안양지역의 집중호우로 다리가 끊어져 안양천 건너편 비산동 수푸루지 동네(임곡마을)에서 안양시내 및 전철 출..

1977년 안양 대수해_안양8동 성문여중고 복구 현장

#안양 #역사 #기록 #기억 #동네 #안양8동 #성문여고 #옛사진 #1977년/ 1977년 안양대수해 당시 안양8동 성문여중고의 피해를 복구하는 현장이다. 집중호우에 따른 수리산 산사태로 운동장이 흙더미에 매몰되어 복구하는데 상당 기간이 소요됐던 곳이다. 안양 사상 최대의 사건으로 지금도 안양 대수해, 안양 대홍수, 쌍칠(77)년 대홍수 등으로 불리우고 있는 1977년의 집중 호우는 7월 8일 밤부터 9일까지 단 하루만에 내린 강우량이 무려 454.5mm로 기상청 창설 이래 최대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당시 안양 원도심은 마치 양동이로 물을 쏟아 붓는 듯한 물폭탄과 해일처럼 밀려드는 물살에 잠긴 수중도시가 됐다. 9천4백39명의 수재민과 사망.실종 257명 재산피해 1백85억에 이르는 유래없는 참사를 빚었..

1977년 안양 대수해_안양3동 율목마을 매몰 현장

#안양 #역사 #기록 #기억 #동네 #안양3동 #옛사진 #1977년/ 1977년 안양대수해 당시 안양3동 율목마을(현재의 율목주공아파트 자리)의 피해 현장으로 수암천의 범람으로 천변에 있던 집들은 거센 물살에 휩쓰려 떠내려 가고 뒷산 밑에 있던 집들은 집중호우에 따른 산사태로 흙더미에 매몰되어 주민이 죽는 등 당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가장 컷던 지역이다. 안양 사상 최대의 사건으로 지금도 안양 대수해, 안양 대홍수, 쌍칠(77)년 대홍수 등으로 불리우고 있는 1977년의 집중 호우는 7월 8일 밤부터 9일까지 단 하루만에 내린 강우량이 무려 454.5mm로 기상청 창설 이래 최대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당시 안양 원도심은 마치 양동이로 물을 쏟아 붓는 듯한 물폭탄과 해일처럼 밀려드는 물살에 잠긴 수중..

1977년 안양 대수해_안양4동 산사태 매몰 현장

#안양 #역사 #기록 #기억 #동네 #안양4동 #옛사진 #1977년/ 국가기록원에서 발견한 1977년 안양대수해 당시의 사진으로 안양4동 수리산 끝자락 야산(현재의 수리산 성원상떼빌)이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사람과 집기들이 흙속에 매몰됐던 현장의 모습이다. 당시 이 산자락에는 판잣집같은 집들이 산비탈을 따라 옹기종기 자리했는데 토사와 함께 쓸려 내리면서 적지않은 인명피해가 발생했었다. 안양 사상 최대의 사건으로 지금도 안양 대수해, 안양 대홍수, 쌍칠(77)년 대홍수 등으로 불리우고 있는 1977년의 집중 호우는 7월 8일 밤부터 9일까지 단 하루만에 내린 강우량이 무려 454.5mm로 기상청 창설 이래 최대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당시 안양 원도심은 마치 양동이로 물을 쏟아 붓는 듯한 물폭탄과 해일..

1974년 안양 장내동성당(현 중앙성당) 뒷골목

1974년 안양 장내동성당(현 중앙성당) 뒷골목 정비 #안양 #기억 #추억 #도시 #골목 #장내동성당 #중앙성당/ 1974년 안양4동에 자리한 장내동성당(현 중앙성당) 뒷 골목(냉천로 172번길)을 정비하는 모습으로 사진 왼쪽 소나무 틈새로 살짝 보이는 건물이 옛 성당의 뒷쪽(제의실) 이고, 사진 중앙의 2층 건물이 당시 사제관(이후 수녀원으로 사용됨)으로 지금 그 자리에는 안양유치원이 들어서 있다. 사제관 건물 오른쪽 뒤로 굴뚝과 건물들이 보이는데 당시 고려석면 안양공장(현 2001아울렛_벽산쇼핑과 벽산아파트)이다. 안양 중앙성당(장내동성당)은 과거 지금보다 그 면적이 매우 넓었다. 사진속 골목길 오른쪽으로 지금은 단독주택 집들이 들어서 있지만 197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었으며 ..

1974년 안양역과 열차통학생

#안양 #추억 #기억 #기록 #열차통학 #안양역 #응답하라1974/ 1974년의 안양역 풍경으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는 학생들과 전철 플렛폼 공사가 한창인 모습이 담겨있는 한장의 흑백사진이다_경향신문. 1960-70년대 서울, 부산 등 대도시 주변에는 '통학열차'로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지금은 서울~인천, 서울~수원 구간 등이 멀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그때에는 등교에만 족히 2시간 가까이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특히 중·고교 평준화가 이루어지기 전인 1973년 까지만 하더라도 안양에 있던 고등학교는 안양여고, 안양공고, 근명여고뿐으로 인문계 남자고등학교가 없어 서울과 수원, 인천으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열차통학생은 지각이 가장 큰 두려움중 하나였다. 통학열차가 떠난 뒤에는 온가족이..

1947년 박두진 시인 안양중앙교회 장로 되던 날

1947년 박두진 시인 안양중앙교회 장로 되던 날 기념사진 #안양 #박두진 #시인 #안양중앙교회 #교회 #역사 #기록 #기억 #자료/ 골목길 탐방에 나서 재개발을 앞두고 한집 두집 이사를 떠나가는 동네의 골목을 다니다 보면 버려진 물건들 속에서 귀중한 물건을 득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사진 또한 그러한 과정에서 발굴한 것으로 1985년 5월 17일 발행한 안양중앙교회 55년사에 실린 것으로 철거 공사가 한창인 안양6동 소골안(소곡마을)을 마지막 풍경을 사진에 담기 위해 갔다가 철거를 앞둔 어느 집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한 책속에 담겨진 사진중 한 컷이다. 사진은 청록파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혜산(兮山) 박두진 시인이 안양에 거주하던 젊은 청년 시절 안양중앙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31살의 젊은 나이에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