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기사 46

[기사]길에서 뿌리를 찾다· 안양 시흥로(현 만안로)

[기사]길에서 뿌리를 찾다·15·끝 안양 시흥로(현 만안로) 경인일보 [길에서 뿌리를 찾다·15·끝]안양 시흥로(현 만안로) 애민정신 다져진 능행 안양상권 '탄탄대로' 정조, 사도세자 6차 원행부터 시흥로 이용 조선시대 교육·과학·예술 '통신사 역할' 1930년대 섬유관련 공업지역 자리매김 행정구역·경계 변경 거듭 교통요충지로 ▲ 조선 후기만 해도 왕의 행차시에 이용되는 다리는 행차시에만 임의로 길을 닦고 나무로 된 다리를 놓았다가 행렬이 지난 이후에 다시 철거하는 관례가 있었다. 그러나 정조는 돌로 만안교를 건립하면서 이같은 관례를 과감히 철폐했다. 조선 22대 정조(正祖·1776~1800년 재위)는 역대 누구보다도 궁궐 밖 행차가 많은 임금이었다. 이 가운데 아버지 사도세자가 모셔진 현륭원(顯隆園) ..

[기사]길, 그곳으로 가다·30 제주로-국도 1번의 모태

[기사]길, 그곳으로 가다· 제주로-국도 1번의 모태 [경인일보] 30. 제주로 >1< -국도 1번의 모태 조선후기 6대로(大路) 가운데 서울에서 제주까지 잇는 서부의 간선도로가 '제주로'이다. 이 길은 해남에서 바닷길을 통해 제주까지 닿았으므로 육지부의 종착점 지명을 따 '해남로'라고도 하고, 동래로의 별칭이 영남대로이듯 이 길은 '호남대로'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제주로는 경기도에서 과천~수원~진위~평택 등을 경유하며, 영화역·장족역·동화역·청호역·가천역 등이 본 도로를 관리했다. 제주로는 문헌에 따라 통영로의 분기로로 취급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수원로와 더불어 1번 국도의 모태가 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도이다. 1번 국도는 일제시기에 신작로로 정비된 제주로를 근간으로 한 것이었으나, 산업화 과정..

[기사]사라지는 전통문화 ‘안양의 산신제’

[기사]사라지는 전통문화 ‘안양의 산신제’ [2008/11/07 안양시민신문] 사라지는 전통문화 ‘안양의 산신제’ 문헌, 유래 등 기초자료도 사라져 일 년에 한 번. 마을 주민들이 모여 마을의 안녕과 복을 비는 마을의식인 마을제가 거의 자취를 감췄다. 마을제는 수목이나 비석을 대상으로 하는 방식과 산신을 대상으로 하는 산신제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져 있다. 도시개발이나 생활의 변화 등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는 마을제는 마을의 유대감과 친목을 도모하고, 마을의 어른들이 주민간의 갈등이나 민원을 조정하는 중요한 자리이기도 했다. 안양시의 경우 현재 4개 정도의 마을제만이 몇 몇 주민들에 의해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다. 이중 지난해부터 산신제추진위원회가 구성된 ‘임곡, 매곡, 운곡마을(비산동 지역)’을 찾아 마..

[기사]박찬응의 ‘이미지로 세상읽기’①

[기사]박찬응의 ‘이미지로 세상읽기’① [01/20 안양시민신문]安養通學生一同 16.2.11 박찬응의 ‘이미지로 세상읽기’① 安養通學生一同 16.2.11 이 사진이 내 손에 들어온 건 지난 99년이었다. 이 사진 속에 엄청난 양의 정보가 숨어있는 것만은 확실한데 해가 바뀌도록 특별한 정보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게으른 탓이다. 지금까지 읽어낸 몇몇 정보를 기술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사진의 해석에 가장 중요한 단서는 사진 아래 부분에 선명히 새겨진 ‘安養通學生一同 16.2.11’이다. 직역 하자면 ‘소화 16년 2월10일 기차를 타고 통학하던 중고생 29명이 안양역전에 모여 단체로 사진촬영을 하다’이다. 소화 16년이라면 서기 1941년이고 그해 12월7일 일본군은 진주만을 공격했다. 앞줄엔 8명이 의자에..

[김인수]군포초교, 살아있는 군포의 역사

김인수의 서정직 군포초등학교 동문회 22대회장 인터뷰 지역발전 중심축 역할 수행..시의원 절반이 군포초교 동문 군포시 인구 28만명 가운데 3% 미만만이 군포시에서 태어난 원주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3%가 군포시 전체에 끼치는 영향력은 나머지 인구 97%에 못지 않은 집중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원주민들만이 가질 수 있는 애향심과 함께 모두가 군포초등학교 동문들이라는 구심점이 만들어 낸 자긍심과 단결력이 있기 때문이다. 15년 전 까지만 해도 불과 인구 4~5 만명의 군포읍이란 작은 마을이 산본 신도시라는 배경을 갖게 되면서 28만 명의 군포시로 급성장한 그 과정을 우리는 항상 재조명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군포시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매개체인 군포초등학교를 반드시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사]안양 박달리 원자력연구소 후보지였었다

[05/03 경향신문] “이승만 대통령도 원폭제조 시도”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은 원자폭탄에 관심을 갖고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로(연구용 원자로)를 서울에서 떨어진 진해, 안양 등지에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미국측의 반대로 결국 서울공대가 있던 공릉동에 지어졌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서울대 김성준 연구원(과학사 및 과학철학협동과정)은 지난달 28일 서울대에서 열린 한국과학사학술대회에서 ‘1950년대말 두 미국인 과학자의 한국 원자력 보고서’를 발표했다. 김연구원은 이 논문에서 “이대통령이 원자폭탄을 염두에 두고 연구용 원자로를 인적이 드문 외진 곳에 지으려 했다”고 밝혔다. 김연구원은 그 증거로 물리학자로서 초대 문교부 원자력과장을 지냈던 윤세원 박사의 개인 비망록 등을 들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