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1/ #신문 #기사 #역사 #안양 #대교보신탕 #모수차이/ 1981년 가스폭발사고
안양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점을 꼽으라면 어디를 지목할까. 안양사람뿐 아니라 타지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곳이 바로 안양 대교보신탕이 아닐까. 1969년에 문을 열었으니 55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우숫개 소리로 까스 폭발사고 이후 안양뿐 아니라 전국에서 대교보신탕 모르면 간첩이라 할 정도가 됐다.
대부분의 보신탕집들은 허름하거나 산골, 골짜기, 유원지의 주막 분위기인 것과 달리 대교보신탕은 우선 규모 부터가 다르다. 위치야 예전 안양천변 그 자리에 있지만 15평 규모였던 식당은 전국 최대 규모의 초대형 보신 전용회관으로 변모했다.
자고로 동사나 명사는 말할 것도 형용사 문장에도 ‘개’라는 한 글자면 같다 붙이면 요상하게 바뀐다. 개소리, 개지랄, 개꿈, 개털, 개판, 개놈, 개년, 개새끼, 개밥, 개망신에, 개똥이다, 개발로 쓴글씨, 개같은 생각, 개같은 잠버릇, 개같은 술버릇, 개같은 인생 등 끝이 없다.
하지만 개고기는 예로부터 전통적으로 몸보신에 최고로 여겨져 사시사철 즐겨찾는 음식으로 보신탕으로 불리우며 사랑을 받았으나 근래 들어 혐오식품으로 외면당하고 있다
2000년 엣 건물이 있을 당시 대교식당에 들어서면 벽면에 부모님 대형 사진과 함께 부모님 뒤를 이어 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장수민, 장수명 형제 CEO의 인사말과 대교보신탕의 40여년 연혁을 적은 액자가 걸려있었다.
그중에는 어두운 역사도 있다. 1981년 7월 가스안전공사로부터 안전시설상을 받은 다음달인 1981년 8월 13일 프로판가스 폭발 사고도 발생해 당시 밤 10시 반에 터져서 10명이 사망하고 38명이 중경상을 당했다. 사람 많은 낮에 사고가 나지 않은게 천만다행이다.
이 사고로 대교보신탕은 쫄딱 망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1981년 가스업자가 실형을 받고, 1982년 4월 다시 개업을 했지만 1987년에는 88올림픽을 앞두고 보신탕이 혐오식품으로 철퇴를 맞으면서 식당을 안산으로 가는 길목의 수암면으로 이전해야 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하지만 대교보신탕의 맛을 인정한 맛객들은 안산까지 찾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며 발길이 줄을 이으며 성황을 이루었다. 이후 대교보신탕은 1990년 다시 현재의 장소로 복귀했으며 1992년까지 보상금과 합의금 지불을 마무리할 정도로 보산탕은 부를 갖다주었다.
이집의 메뉴도 세월의 변화와 함께 많은 변화가 있다. 옛날에는 수육을 주문하면 주인장의 단골 여부에 따라 알아서 부위를 내주었만 언제부터인가 배부분, 갈비살, 목살 수육전골, 수육무침 등 세분화돼 나오고 단품으로 전골과 장수탕과 장수왕탕이 있고 삼계탕도 추가됐다.
1980년대 중반 안양근로자회관에서 일할 때 서말가리다 독일수녀님이 이 집을 즐겨 찾았다. 당시 주인장은 외국인이 그것도 여성이 보신탕을 먹는 것이 신기해 반갑게 맞아주었다.
1980년 중반 독일에서 근로자회관을 방문했던 한 외국인은 보신탕을 맛보고 싶다고 해서 출국하기 전 보신탕을 맛보고는 맛있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당시 외국에서는 88올림픽을 앞두고 혐오식품을 먹는 한국에 대한 비판이 일어날 때라는 점에서 맛으로 판정한 격이다.
대교식당의 보신탕 맛은 일단 깔끔하다. 프렌차이즈화라는 틀로 같은 맛을 내놓아 장점일 수도 있겠지만 독창성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단점도 됳 수 있다. 탕을 잘하거나 맛있다는 음식점 대부분의 기본 찬이 무언가 남다른 것처럼 대교식당의 김치와 깍두기 맛도 상당하다.
대교보신탕은 2002년부터 프렌차이즈화에 나서 군포(2003년)와 부천(2005년) 등 전국에 분점을 내는 등 변신을 꾀하면서 상호도 장수명가로 바꾸었다. 이후 2101년 무렵 안양대교 본점 자리에 새건물을 신축했는데 식당이 마치 대형 회사 건물을 연상케할 정도로 탈바꿈했다. 상호도 다시 '모수차미'로 바꾸었다. 어머니 손맛이 첫번째 맛이고, 그 두번째 맛이라는 의미로 '모수차미'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장수명 대표이사는 예전 인터뷰 당시 “보신탕은 국제적으로 국내에서도 여러가지 말은 많지만 기호 식품이고, 보양식으로의 효능을 믿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보신음식”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앞으로 3세들에게 가업을 물려주어 튼실하게 뿌리내리고 싶은 게 꿈이다. 1백년 전통의 식당 탄생을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매일경제]콘크리트건물 박살 안양보신탕집 가스폭발
1981-08-14 19:55:19
13일 밤 9시40분께 경기도안양시 안양2동857의5안양천변 주택가에 있는 대교보신탕집(주인 장영조·55)에서 프로판가스가 폭발,식사를 하던 김정식씨(31·서울동대문구장안동257의4)등 손님과 종업원11명이 숨지고 김순례씨(28·식당종업원)등 20명이 중경상을 입고 안양시내 대양외과등 6개병원에분산입원,치료를 받고있다.
이 폭발사고로 보신탕집1층60평·지하50평·옥상6평등 연건평 1백16평의 철근콘크리트 슬라브건물이 형체도 없이 산산조각이 났고 집앞에 있던 10년생 수양버드나무가 뿌리째 뽑히거나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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