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600

[신원성]왕송호수의 철새는 계속 날아와야 한다.

[신원성]왕송호수의 철새는 계속 날아와야 한다. [2007/03/30 의왕시홈페이지] 왕송호수의 철새는 계속 날아와야 한다. 오늘 아침 안양방송의 왕송호수 조류학습관 관련 대담프로그램을 보고 몇자 적어 본다 4~5년 전부터 왕송호수 도시자연공원 건립과 함께 진행되어 오던 의왕시 조류학습관에 대해 최근 한 시민단체의 문제제기가 대두되고 있다. 시민단체의 문제제기는 크게 몇 가지로 요약되는데 첫째, 현재는 철새들이 왕송호수 주위에 날아와서 겨울을 나고 있지만 그 주변이 개발되는 향후 5~10년 뒤에도 과연 철새들이 이곳에 날아 올 것인지가 의문이고, 만약 향 후 철새가 날아오지 않는다면 조류학습관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점 둘째, 조류학습관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적극적인 의견 청취가 제대로..

[심용선]전진상 이야기

[심용선]전진상 이야기 [2007/03/30]안양여성의전화 대표 전진상 이야기 안양전진상복지관에 대해 아시나요? 지난 1969년 여성노동자를 위한 기숙사인 ‘근로자 회관’으로 출발한 전진상은 60, 70, 80년대 열악한 노동자들의 쉼터이자, 교육장이 되었으며 노동운동, 문화운동, 지역활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의 피난처이자, 모임터가 되었다. 60년대 산업화의 여파로 가난한 시골에서 숟가락 하나 덜자고 공장으로 모여든 10대의 어린소녀들은 12시간이상의 중노동, 열악한 노동환경, 임금체불, 성폭력 등으로 몸과 마음이 망가져갔었다. 이러한 어린소녀들을 위한 기숙사에 대한 소명을 받은 AFI(국제카톨릭형제회)가 독일의 후원을 받아 세워진 곳이 ‘근로자회관’이었다. 종교기관이면서 지역민들의 자유로운 나눔과 소통..

[임종순]안양천, 학의천을 지역 문화공간으로

[임종순]안양천, 학의천을 지역 문화공간으로 [2007/03/16]前 안양시의원 안양천, 학의천을 지역 문화공간으로 학의천을 따라 걸어가면서 안양천과 만나는 쌍개울에 와있다. 이곳은 초등학교 시절 나의 중요한 놀이공간이었다. 물이 가슴까지 오는 깊은 곳에서 개헤엄을 즐겼으며, 쫄대를 들고 피라미와 불거지를 잡았다. 더 어려서 능골(안양9동)에 살 때는 안양예고 앞 수암천에서 물장구를 치고 놀면 큰 형들이 햄머로 바위를 쳐 고기를 잡던 모습도 기억한다. 그 후 70년대부터 공업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학의천과 안양천 물은 오염되기 시작했으며, 악취로 인해 식물과 고기들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또한 도시가 발전하고 평촌벌이 개발되면서 지하수가 고갈돼 하천의 건천화가 동시에 진행됐다. 그 이후 하천 뚝방 ..

[조광연]깡통이 보물이었던 시절과 안양천 대보름축제

[조광연]깡통이 보물이었던 시절과 안양천 대보름축제 [2007/02/28]평촌 청솔학원 원장 깡통이 보물이었던 시절과 안양천 대보름축제 안양천대보름축제 조직위원장 깡통을 얻는 건 정말 횡재였다. 우연하게 발견한 ‘꽁치통조림 깡통’의 비린내는 멋쟁이들만 뿌리는 향수와 같았다. 비료 포대나 소주병, 낡은 고무신을 엿장수 아저씨한테 들고가서 ‘최고급 군것질거리’인 엿과 바꿨던 때의 일이다. 겨울이면 늘상 학교 운동장이나 논두렁․밭두렁에서 연날리기, 깡통돌리기를 하였다. 어렵게 구한 깡통에 어설픈 망치질로 못을 박아 구멍을 뚫고 철사를 꿰고나면 손은 온통 상처 투성이였다. 동네 형들 어깨너머로 자연스레 익힌 솜씨였다. 최고로 치는 것은 분유깡통이었다. 깡통이 클수록 땔깜을 많이 넣을 수 있었고, 그만큼 불기운이..

[임종순]안양을 상상하다

[임종순]안양을 상상하다 [2007/02/09]논설위원·前 안양시의회 의원 안양을 상상하다 1월 중순 네팔을 다녀왔다. 수도 카투만두는 수많은 차량과 오토바이, 자전거 행렬들이 바쁘게 흐르면서 근대화하려는 몸부림이 대단하다. 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의 여유가 없다. 물이 가장 풍부한 나라임에도 먹는 물, 버리는 물 문제가 심각해서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네팔이 하루빨리 불안한 정국에서 벗어나 번영의 길로 접어들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우리나라 지도자들을 생각해 보았다. 이것저것 흠잡을 때 많겠지만, 국민의 땀을 세계 10대 강국으로 끌어올린 근세의 국가 지도자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한다. 우리 안양 이야기를 해보자. 안양시는 73년 시로 승격된 이후 많은 관선, 민선 시장이 거쳐 갔..

[최기원]의왕시는 한자표기 변경을 중단해야 합니다

[최기원]의왕시는 한자표기 변경을 중단해야 합니다 [2007/02/03 의왕시홈페이지]시민 의왕시는 한자표기 변경을 중단해야 합니다. 의왕시는 의왕시의 현재 한자 표기 ‘儀旺’이 본래 한자 표기 ‘義王’의 일제 때 왜곡이라고 주장하면서 2월 20일부터 새로운 한자표기를 사용한다고 일간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2004년부터 주민의견 조사를 실시하고 2005년도에 시의회와 도의회를 의결을 거쳐 2006년 12월 22일에 국회까지 통과되어 2007년 1월 19일 법률이 공포되었습니다. 의왕시는 무슨 역사적 근거로 이런 주장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역사적 자료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검정을 거쳤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김정호 선생이 대동여지도를 목각하는데 기초가 된 필사본 ‘동여도’에 보면 광주부 의곡(義谷)면과 왕륜(..

[이종태]아크로타워 사태, 시민토론회 제안한다

[이종태]아크로타워 사태, 시민토론회 제안한다 [2007/02/02](사)한국교육연구소장 아크로타워 사태, 시민토론회 제안한다 아크로타워 입주자 자녀의 학교 배정문제가 신학기 시작을 앞둔 시점에서 아직도 표류하고 있다. 관련 당국인 교육청과 시, 그리고 입주자들의 엇갈린 주장이 합일점을 향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시간만 흐르고 있는 것이다. 제3자 입장에서 이 문제를 볼 때 답답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본래 업무용 건물이 어떻게 해서 주거용으로 둔갑해 학군배정 문제를 야기시켰는가 하는 점이다. 여러 보도 내용을 종합해 볼 때 건축허가를 내주고 시공을 감독해야 하는 시당국이 먼저 책임을 져야 할 문제이다. 이에 대해서는 시의회나 언론에서 이미 문제삼은 바 있지만 재발방지를 위해 더 분명하게 ..

[안기영]시청 앞 ‘아크로타워’학생배정 민원을 보며

[안기영]시청 앞 ‘아크로타워’학생배정 민원을 보며 [2007/01/19]한국청소년보호연맹 경기중부연맹장 시청 앞 ‘아크로타워’학생배정 민원을 보며 안양시가 시의 상징으로 만들겠다고 허가를 내준 시청 앞 아크로타워(42층)가 입주도 하기 전에 학생수용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입주예정자 자녀들의 학교 배정문제 때문이다. 결국 법정 싸움까지 갈 모양이다. 입주예정자들은 근거리 배정을 희망하고 기존학교에서는 과밀학급을 이유로 배정을 꺼리고 있고, 행정기관인 안양시청이나 안양교육청은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안양시의 관계기관과의 협의와 설득능력 등 정치력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교육청과 긴밀하게 대책을 협의하고 학교와 학부모들을 설득하는 등 정치력을 발휘하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

[땡감초]안양시 선거사범 발단의 사태에

[땡감초]안양시 선거사범 발단의 사태에 [2006/12/30 공무원노조홈페이지] 과욕의 객기행동이었던가 ...? 기회주의자의 발로였을까...? 과잉충성을 위한 객기일까...? 이번 안양시 선거사건이 발단된 사실은 시 집행부 간부공무원들에게 명백하게 전적으로 모든 책임이 있다 하겠다. 간부들이 슬기롭게 좀 깊이 생각하고 널리 앞을 염려했다면 이런 초유의 최악사태는 사전에 예방하고도 충분히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노조측에서도 사전에 총무국장과 총무과장에게 핵폭탄의 실험을 하겠다고 강력하고 단호하게 수차례 경고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두 간부공무원은 이를 일언지하에 단독으로 일축해 버리고 말았다. 노조가 행동을 하면 얼마나 하겠지 하는 안일하고 단순한 생각으로 맘대로 해보라는 식으로 아예 무시..

[문원식]양지마을의 까치소리

[문원식]양지마을의 까치소리 [2006/12/22 안양시민신문]논설위원·성결대학교 교수 양지마을의 까치소리 안양에 대해서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의 서가에 꽂혀 있는 책 중에 ‘양지마을의 까치소리’(1991)가 있다. 이 책은 안양3동 양지마을에서 나서 자란 이용구(李瑢求)선생의 자전적 수필집으로 선생의 유년 시절인 일제 강점기부터 8·15해방 이후 안양의 산업화·도시화 과정과 생활상, 풍속 등을 다양한 형태로 싣고 있어서 이 시대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료적 가치도 높게 평가되고 있다. 1926년 10월생인 선생은 유년시절 동네 서당에서 천자문(千字文)과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배우고 9살 나던 1934년에 안양공립보통학교를 7회로 입학해서 졸업했다. 연후 경기공립상업학교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