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역마와 물자이동의 중심축이었던 과천공로는 남태령고개를 넘어 과천, 인덕원, 귀인마을, 호계동, 고천을 경유하여 수원으로 연결되어 현재의 안양을 비껴가고 있었다. 1795년 정조가 비운에 간 부친 사도세자의 능을 찾던 제 6 차 현륭원행(顯隆園幸)이 시흥을 경유하여 안양지역을 통과한 것이 이 지역 공로개척의 효시였을 정도로 안양지역은 발전의 변경(邊境)지대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한 사실은 과천과 시흥에는 각기 오늘날의 공교육기관에 해당하는 향교가 있었지만 이 지역에는 향교가 없었다는 사실이 증명한다. 또한 과천 및 시흥과 안양지역과의 격차를 산술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자료는 초등학교의 개교 년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시흥초등학교가 1911년, 과천초등학교가 1912년에 개교한 것에 비하여 안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