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홍대실 권사는 성결대학교 설립자인 故영암 김응조 목사를 도와 성결대의 전신인 성결교신학교를 세우는 데 공헌했으며, 이후 경기도 안양에 자신이 소유한 땅 73.481㎡(22,228평)를 학교 교지로 기증하며 성결교 신학교의 안양캠퍼스 시대를 열게 했으며 4년제 종합대학인 성결대학교의 초석을 마련한 공로자이기도 하다.
안양 성결대학교 설립의 초석을 놓은 홍대실 권사를 조명해 본다.
1. 성장과 입신
홍대실(洪大實)은 1901년 10월 6일 평안남도 용강군 금곡면 월곡리에서 부친 홍석필(洪錫弼)과 모친 정건백(鄭健伯)의 2남 2녀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홍대실은 완고한 전통적인 유교가정이었지만 너그럽고, 인자한 아버님의 가르침과 어지신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 큰 어려움 없이 곱게 성장하였다. 그녀는 19세 나이에 같은 용강군에 살고 있는 장학섭 청년과 부모님의 소개로 중매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생업을 구축하며 시간이 갈수록 손을 대는 일마다 흥했다고 한다
어느 날 봄 그녀는 교회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홍대실은 교회에 발을 디뎌놓기가 무섭게 신앙의 진보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열심을 다하여 교회에 출석하는 중에 25세 때인 1928년 입석교회에서 세례를 받게 되며 3년 후인 1931년 30세에 남편의 고향인 평남 용강군 진지리에서 초가집을 얻어 진지리성결교회를 개척한다. 진지리에 교회를 세운 것은 출석하는 입석교회가 거리가 먼 연유도 있었다. 집사로 봉직했고, 그 이듬해 신개척해 1년 후 부군의 헌금으로 40평 교회를 세웠다.
1943년 5월 24일 일제 탄압으로 전국 성결교회 교단이 강제 폐쇄됨과 동시에 성결교회 교역자와 장로, 집사 등 300여명을 검거할 때 투옥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1945년 해방과 동시에 교회 부흥을 위해 이성봉 목사를 초청해 재건예배를 드렸다.
6.25한국전쟁 피난기간 중 1.4 후퇴 때 월남하여 부산 온천성결교회에서 집사, 부인회 회장직을 역임하며, 피란신학교와 피난민 성도들을 돌보면서 봉사를 하다가 서울로 귀경한 홍대실 집사는 1954년 성결교회 모교회인 중앙성결교회 집사로 임명받았다. 1959년에는 부인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봉사하다가 신생부인회 전국연합회 부회장직을 수년간 맡아 교단적으로 전국부인회를 이끌며 전국을 대상으로 순회사역을 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안타깝게도 성결교회가 교단분립의 고통 속에 둘로 나뉘어지고 서울신학교가 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 남게 되었다. 그러자 성결교회 본래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1962년 9월 20일에 서울 충정로 김응조 목사 사저에 성결교신학교 임시교사를 마련하고 개교하였다. 그러나 개인 가정집에서 시작한 신학교가 교사(校舍)가 마련되지 않아 많은 난관이 있었다. 김응조 목사는 절박했던 초창기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음 해에 또 학생을 모집하니 역시 50명이다. 이제는 100명이 한 집에서 법석대는 판이다. 온 집안에 사람 천지이다. 안방과 복도까지 공개해도 100명을 수용하기는 불가능이다. 비용 문제도 막심하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위로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교장 김응조 목사는 ICCC국제대회 참석과 성결교신학교 건립기금을 목적으로 도미하였으나 별다른 성과없이 귀국하였다. 김응조 목사가 홍대실 권사를 찾아가 성결교신학교를 건축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고 조심스럽게 권고하자, 그녀는 그 자리에서 기쁘게 바로 허락하였다.
이후 홍대실 집사는 1963년 11월 10일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대지를 매입하고 238평의 3층 벽돌건물(현, 예성총회 본부건물)을 단독으로 건립하여 신학교 교사로 봉헌하였고, 이듬해인 1964년 8월 20일에는 다시 4층 62평을 증축하여 확장시켜 주었다. 여성 혼자 힘으로 한 교단의 신학교 건물을 지어 봉헌한 것은 한국교회 역사에 있어 보기 드문 예외적인 일이었다.
홍대실 집사는 1964년에 중앙성결교회에서 초대 권사로 피택되었다. 그녀는 성결교신학교 수용관리가 현재 시설로는 교단의 교역자 수요에 부족함을 느끼고, 기도하는 중 남편에게 동의를 얻어 예수교대한성결교회의 미래 백년을 바라보며 자신이 보유한 경기도 안양시 안양8동의 22,228평을 학교교지로 기증하여, 성결교신학교의 안양 캠퍼스시대를 열게 하였다. 성결교신학교는 홍대실 권사가 건립한 행촌동 건물을 신학교 건물로 사용하면서 발전의 계기를 갖게 되었다.
건물 건립 이후 성결교신학교는 문교부에 학교법인 성결교신학원 재단 설립을 신청하고 1964년 12월 16일 설립인가를 받게 되었다. 1966년에는 4년제 정규대학과 동등한 학력인가를 받음으로 오늘의 기독교 명문 사학인 성결대학교로서의 굳건한 발판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녀는 성결교신학교 4대 이사장으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1971년 3월 2일 소천할 때까지 3년간 일하면서 본인은 평생 밤색치마 회색저고리 한 벌로 생활하고 신발은 터진 고무신을 꿰매 신는 등 청빈한 삶을 살았지만 전 재산을 바쳐 헌신했다.
홍대실 권사는 교회 개척에도 온 힘을 쏟아 생전에 그녀가 건립한 교회는 진지동교회를 비롯하여 강릉교회, 온양교회, 묵호교회, 속초교회, 백은교회, 고길리교회, 대전성결교회까지 총 8개 교회를 건립하여 봉헌하였다.
또 성락원 사업에 적극 협조하여, 70여 평의 대지 및 건물을 구입해 봉헌했으며, 1968년 4월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성락원 원장으로 취임하여 은퇴 여교역자와 미망인 사모를 돌보는 등 소리 없이 섬김의 봉사를 하기도 했다.
한편 성결대학교는 故 홍대실 권사를 추모하고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성결대학교 예성80주년기념관의 연주회 공간을 홍대실홀로 명명했으며 학술정보관 앞에는 지난 3월 홍대실권사 기념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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