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끝에 지난 2013년 3월 24일 숨을 거둔 아름다운 청년운동가 故김애정님의 11주기 추모제가 지난 24일 오전 11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렸다. 군포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했던 그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본다.
故김애정님은 군포청년회 창립 준비위원 및 제2대 회장, 경기청년연대 중서부권역 의장,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실 보좌관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고인은 암투병 와중에도 통합진보당 재건과 당원가입 사업에 앞장서는 등 수많은 당원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했다. 고인은 장례는 2013년 3월 26일 서울 서초동 반포동 서울성모병원에서 '진실한 청년운동가 故김애정동지 애국청년장'으로 치뤄졌으며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경기청년진보당 위원장 김도현입니다.
아름다운 청년운동가 故김애정동지의 불꽃같은 인생을 소개합니다.
1978년에 서울에서 태어난 김애정동지는 1997년 동일여자전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특성화고를 졸업했던 고졸노동자 김애정동지는 2000년부터 무려 10년동안 삼성의료원 비정규직 노동자로 근무했습니다. 매년 말이면 계약서를 새로 쓰며 조금도 오르지 않는 연봉과 ‘노조없는 삼성’이라는 글이 박혀있는 수첩을 받았는데요. 늘 제게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노동문제에도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김애정 동지는 낭만있는 청년이었습니다. 병원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 덕에 알게된 가수 안치환씨를 따라 2002년 미군장갑차 여중생 살인미군 처벌 촛불항쟁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불평등한 한미관계에서 희생당한 여중생들을 안타까워하며 촛불자원봉사를 시작했고 인연이 되어 2003년에 반미청년회에 가입하였습니다.
2006년 군포청년회를 만들며 우리 동네부터 청년들의 지역공동체를 형성하고 청년운동가를 발굴‧육성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2년 뒤 2008년 군포청년회 2대 회장을 맡았는데요. 당시 회장직을 부담스러워했던 동지였지만, 조직이 요구하는 일에 앞장섰던 동지답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회장 역할을 수행했고 군포지역 많은 청년들이 따르는 회장님이었습니다.
김애정 동지는 늘 노력하는 동지였습니다. 대중단체인 청년회의 특성상 모든 청년들이 내 마음과 맞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을 한명, 한명 소중히 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동지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던 날입니다. 수첩에서 재미있는 글귀를 발견하였습니다. <회원 000의 장점 10가지> 000 회원은 의리가 있고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하였지만 주사가 있어 선배들이 많이 걱정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원과 함께 하기 위해서 장점을 찾고 그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던 동지입니다. 이렇게 사람에게 진심이었던 김애정 동지는 2010년 경기청년연대 중서부권역 의장을 하면서 김포, 부천, 안양, 군포, 시흥의 청년단체 회장들과 함께 청년운동을 이끌고 나갔습니다.
2011년 보궐선거로 당선된 통합진보당의 김선동의원의 보좌관이 되어 진보정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10년만에 병원을 벗어나 새로운 일을 하게된 동지는 제게 모든 것이 처음이라 어렵다면서도 진보정치에 기여할 수 있고 하나씩 배우는 즐거움이 있다며 늘 의원실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저 또한 이때의 에피소드들을 들으며 진보정치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배워갔습니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같은해에 대장암을 발견하고 투병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늘 긍정적이었습니다. 당시는 통합진보당이 창당하고 정치적으로 주목받을 뿐만 아니라 어려움도 많았던 시기입니다. 진보정치가 잘 되어야 자신과 가족처럼 돈과 권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의 권리를 지켜가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한 동지는 입원한 병원에서 조차 당원가입을 시키며 다음해 통합진보당 경기도당의 모범 당원상을 수상했습니다. 조직의 요구에 충실하고 사람을 소중히 대하며 끊임없이 노력했던 김애정동지의 진 면모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암 세포는 김애정 동지를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새로 개발된 약으로 항암치료를 하고 있었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온몸으로 암세포는 퍼져들었고, 이후에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 조차 어려웠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애정 동지를 만났을 때가 기억납니다. 화장품 냄새조차 역겨워 힘들어했던 동지가 제 두 얼굴을 감싸고 ‘네가 잘 해야 한다’며 운동하는 삶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것인지 동지의 삶으로써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2013년 3월 24일 오후 1시, 36살 짧은 인생이지만 동지를 만났던 모든이에게 따스한 햇살 같았던 그는 영원히 잠들었습니다.
<故김애정 동지 약력>
1978년 10월5일 서울출생
1997년 동일여자전산상업고등학교 졸업
2000~2010년 삼성의료원 비정규직 노동자로 근무
2002년 미군장갑차 여중생 살인미군 처벌 촛불항쟁 참가
2002~2003년 광화문 미선효순 추모 촛불자원봉사 활동
2003년 반미청년회 가입
2006년 군포청년회 창립 준비위원
2008년 군포청년회 제2대 회장
2010년 경기청년연대 중서부권역 의장
2011년 김선동의원실 보좌진으로 활동
2011년 대장암 발견 및 투병
2012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모범 당원상 수상
2013년 3월 24일 13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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