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문원식]담을 헐자-좁은 국토 넓게 사용하기

안양똑딱이 2016. 5. 3. 16:54
[문원식]담을 헐자-좁은 국토 넓게 사용하기


2003년 5월 19일 오후 2시, 안양문예회관 국제회의실에서는 안양지역시민연대 문화체육위원회(위원장 박 찬응)가 주관한 만안지역 문화벨트 조성을 위한 시민공청회가 열렸다.

공청회는 경기도에 의해서 벤처타운이 설립되는 것으로 알려진 구 가축위생검사소 부지 4,145평에 대한 문화시설 및 녹지공원으로의 활용방안을 모색하기 위하여 마련되었다. 아울러, 문예회관, 수의과학검역원, 만안구청, 만안여성회관 및 안양세무서 등과 연계하여 동안구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낙후된 이미지를 주는 만안지역에 새로운 문화공간을 조성하고자 기획된 공청회였다. 가축위생검사소 부지는 원래 98년까지는 약 200억 원에 안양시에 매각되어 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었으나 99년 초 경기도지사의 현장방문에서 벤처기업 유치시설로 용도가 바뀌었다.

이미 상세한 내용이 방송과 지면을 통하여 보도된 바와 같이, 발제와 토론에서 나타난 성과는 지역사회의 문화적 저력을 보여준 일대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본 발제는 중앙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IDS라는 건축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배 기철 소장에 의해서 수행되었다. 배 소장은 사전에 만안지역에 대한 도시모형과 가축위생연구소와 문예회관을 연결하는 건물모형을 제작하여 문제의 소재를 입체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공청회의 내용적 성공을 예고했다. 이어 선진도시의 유명 건축물들을 슬라이드를 통해서 보여줌으로써 도시공간이용의 유형을 보여주고, 동안과 만안지역에 소재한 주요 지점의 조형상의 특징을 자연스럽게 부각시킴으로써 만안지역이 안고 있는 공간개발의 낙후성을 알기 쉽게 이해시켜 주었다. 그 밖에도 배 소장은 가축위생검사소 부지가 갖는 위치상의 강점과 이 지역을 중심으로 안양의 각종 도시 기반시설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방안 등에 관하여 몇 가지 의미 있는 제안을 하였다.

여기서 필자는 공청회의 사회를 보면서 도시설계(urban design)면에서 앞서가고 있는 선진국의 사례에서 느낀 바를 동안지역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낙후한 만안지역의 도시공간 개발의 방향으로 삼기 위하여 다시 한번 정리해 본다.

배 소장은 슬라이드 상영을 통해서 앞서 언급한 선진국과 우리 나라를 비교·분석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선진적 도시설계방식에 대한 깨달음을 주었다. 광장을 주로 활용하는 선진국의 도시설계방식은 통상적으로 도시공간을 서로가 공유하는 문화적 특성을 아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광장과 같은 공유공간에 모여 대화하고 즐기는 모습은 선진국에서는 일상적인 것으로써, 이는 도시건축 단계에서부터 염두에 두고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비하여 우리 나라의 산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집과 집 사이의 담벼락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은 도시공간을 공유하지 못하고 좁은 국토를 더욱 좁게 사용하는 우리 나라 건축문화의 후진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안양의 경우도 평촌과 만안의 공간처리방식의 차이는 두 지역간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평촌의 모든 관공서와 아파트 및 중앙공원의 설계는 담장 없이 설계되어 공간처리가 지극히 시원한 형태로 되어 있지만, 만안의 관공서들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밖으로 잘 드러나지도 않고, 또 중앙공원과 같은 큰 공원은 찾아 볼 수도 없다.

여기서 공청회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가축위생검사소의 담장이 사라진다면 계양빌딩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안양문예회관의 웅장한 모습이 드러날 것이고, 가축위생검사소 안에서 수십 년째 자란 아름드리 수목들의 아름다운 경관은 시민들의 눈을 푸르게 씻어 줄 것이다. 이어서 만안구청, 만안여성회관, 안양세무서, 수의과학검역원 등 인접한 관공서들이 일제히 담을 헐고 녹지공간을 시민과 공유하게되면 만안지역의 심리적 녹지 분포율이 눈에 띄게 향상될 것이며, 우리 모두는 좁은 국토를 넓게 쓰는 방법에 대한 깨달음 같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물론 관공서의 보안문제와 같은 후속조치가 필요하고, 건축양식 자체에 대한 시민 인식의 변화도 따라야 할 것이다.

이렇게 공간을 소유하고 처리하는 방식에 대하여 인식의 변화를 가지게 된다면, 좁은 국토를 현재보다 넓게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공동체로서의 유대감도 보다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21세기, 안양시의 도시(재)개발은 개별 공간이 단절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계되어 시민들간의 교류를 촉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하여 공간의 담과 더불어 마음의 담도 헐어 버리고, 동시대를 사는 이웃으로 서로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도시공간을 창조해 나가야 할 것이다.

2003-06-07 13:5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