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원식]양지마을의 까치소리
[2006/12/22 안양시민신문]논설위원·성결대학교 교수
[2006/12/22 안양시민신문]논설위원·성결대학교 교수
양지마을의 까치소리
안양에 대해서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의 서가에 꽂혀 있는 책 중에 ‘양지마을의 까치소리’(1991)가 있다.
이 책은 안양3동 양지마을에서 나서 자란 이용구(李瑢求)선생의 자전적 수필집으로 선생의 유년 시절인 일제 강점기부터 8·15해방 이후 안양의 산업화·도시화 과정과 생활상, 풍속 등을 다양한 형태로 싣고 있어서 이 시대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료적 가치도 높게 평가되고 있다.
1926년 10월생인 선생은 유년시절 동네 서당에서 천자문(千字文)과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배우고 9살 나던 1934년에 안양공립보통학교를 7회로 입학해서 졸업했다. 연후 경기공립상업학교를 다닌 선생은 졸업한 이듬해인 1945년 1월부터 40년간 근속으로 철도청에서 근무한 후 1984년 정년으로 공직생활을 마치셨다.
학창시절 작문시간이면 고역을 치르곤 했던 선생은 철도청에서 발간하는 ‘교통’이란 잡지를 보고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껴 ‘여행의 유혹’이란 제목으로 투고했더니 이후 3회에 걸쳐 게재가 되고, 원고료도 받고 동료들의 칭찬과 격려까지 들어 몹시 즐거웠다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이후 기쁜 마음에 여기저기 투고 하게 되었고, 투고하는 것 마다 게재가 되어 30년간의 문필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선생은 회상하고 있다.
“우리 형제가 아버님께서 쓰신 글을 읽어 볼 때마다 길이 남기고 싶은 마음이었던 차 형제끼리 상의하여 추리고 다듬어 한 권의 책으로 묶어 펴내게 되었다”고 ‘양지마을의 까치소리’의 ‘펴내는 말’에서 선생의 세 자식들이 책을 만들어 자신들의 부친께 헌정한 소이를 밝히고 있다.
‘양지마을의 까치소리’는 ‘풍금소리’, ‘철도는 영원한 고향’, ‘우리 종인들’, ‘내고향 양지 마을’, ‘인생의 여행길’로 각각 소제목을 붙인 5장 182편의 주옥같은 수필들로 그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이 글들 속에는 선생의 유년에서 학창시절에 이르는 꿈과 삶의 소리, 공무원으로서 삶을 국가에 헌납하는 공직자의 생활, 우리 사회에서 잊혀가는 조상의 얼과 소중함을 일깨우는 교훈, 정감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고향 양지 마을에 대한 회상, 퇴직 후 삶을 순리대로 이끌어 가고 있는 노년의 모습 등이 진솔하게 한 폭의 수채화처럼 담겨 있다.
서일대학 교수이자 안양YMCA이사를 역임한 임칠호 선생은 “글을 대하면서 우리 삶의 터전인 안양을 알게 되고, 옛 정을 그리게 되며 오늘날 풍요가 주는 사회 병리 현상을 구석구석 보게 될 것이다”라고 서평을 가름하고 있는 것에서 보듯이 이 책은 산업화되기 이전의 그리운 안양의 모습을 담고 있다.
선생은 ‘양지 마을의 까치소리’ 발간 후에도 ‘내가 처음 탄 비행기’(1995), ‘왜 깨우지 않았어’(1998), ‘필문필답’(2000), ‘무엇이든 들고 오라’(2002), ‘연중 5월만 같아라’(2005) 등 수필집을 연속해서 간행하고 있는 바, 연세가 들수록 더욱 왕성한 문필활동을 하고 계시다.
‘양지 마을의 까치소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웃에서 일상적으로 대할 수 있는 은퇴한 노 선배의 평범한 생활의 기록이 얼마나 위대한 교훈이 될 수 있는지를 잔잔하게 들려주고 있다.
안양에 대해서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의 서가에 꽂혀 있는 책 중에 ‘양지마을의 까치소리’(1991)가 있다.
이 책은 안양3동 양지마을에서 나서 자란 이용구(李瑢求)선생의 자전적 수필집으로 선생의 유년 시절인 일제 강점기부터 8·15해방 이후 안양의 산업화·도시화 과정과 생활상, 풍속 등을 다양한 형태로 싣고 있어서 이 시대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료적 가치도 높게 평가되고 있다.
1926년 10월생인 선생은 유년시절 동네 서당에서 천자문(千字文)과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배우고 9살 나던 1934년에 안양공립보통학교를 7회로 입학해서 졸업했다. 연후 경기공립상업학교를 다닌 선생은 졸업한 이듬해인 1945년 1월부터 40년간 근속으로 철도청에서 근무한 후 1984년 정년으로 공직생활을 마치셨다.
학창시절 작문시간이면 고역을 치르곤 했던 선생은 철도청에서 발간하는 ‘교통’이란 잡지를 보고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껴 ‘여행의 유혹’이란 제목으로 투고했더니 이후 3회에 걸쳐 게재가 되고, 원고료도 받고 동료들의 칭찬과 격려까지 들어 몹시 즐거웠다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이후 기쁜 마음에 여기저기 투고 하게 되었고, 투고하는 것 마다 게재가 되어 30년간의 문필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선생은 회상하고 있다.
“우리 형제가 아버님께서 쓰신 글을 읽어 볼 때마다 길이 남기고 싶은 마음이었던 차 형제끼리 상의하여 추리고 다듬어 한 권의 책으로 묶어 펴내게 되었다”고 ‘양지마을의 까치소리’의 ‘펴내는 말’에서 선생의 세 자식들이 책을 만들어 자신들의 부친께 헌정한 소이를 밝히고 있다.
‘양지마을의 까치소리’는 ‘풍금소리’, ‘철도는 영원한 고향’, ‘우리 종인들’, ‘내고향 양지 마을’, ‘인생의 여행길’로 각각 소제목을 붙인 5장 182편의 주옥같은 수필들로 그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이 글들 속에는 선생의 유년에서 학창시절에 이르는 꿈과 삶의 소리, 공무원으로서 삶을 국가에 헌납하는 공직자의 생활, 우리 사회에서 잊혀가는 조상의 얼과 소중함을 일깨우는 교훈, 정감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고향 양지 마을에 대한 회상, 퇴직 후 삶을 순리대로 이끌어 가고 있는 노년의 모습 등이 진솔하게 한 폭의 수채화처럼 담겨 있다.
서일대학 교수이자 안양YMCA이사를 역임한 임칠호 선생은 “글을 대하면서 우리 삶의 터전인 안양을 알게 되고, 옛 정을 그리게 되며 오늘날 풍요가 주는 사회 병리 현상을 구석구석 보게 될 것이다”라고 서평을 가름하고 있는 것에서 보듯이 이 책은 산업화되기 이전의 그리운 안양의 모습을 담고 있다.
선생은 ‘양지 마을의 까치소리’ 발간 후에도 ‘내가 처음 탄 비행기’(1995), ‘왜 깨우지 않았어’(1998), ‘필문필답’(2000), ‘무엇이든 들고 오라’(2002), ‘연중 5월만 같아라’(2005) 등 수필집을 연속해서 간행하고 있는 바, 연세가 들수록 더욱 왕성한 문필활동을 하고 계시다.
‘양지 마을의 까치소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웃에서 일상적으로 대할 수 있는 은퇴한 노 선배의 평범한 생활의 기록이 얼마나 위대한 교훈이 될 수 있는지를 잔잔하게 들려주고 있다.
2006-12-22 18: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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