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0/ #아카이브 #옛신문 #기록 #역사 #자유신문 #since1946/포탄 40만톤 안양에서 발견 (1946.02.18일자 자유신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아냄.
8.15이전 의군(일본)들이 포탄 50만톤을 안양비행장 부근에 감추어 두엇던 것이 이번 양군(미군)에게 발견되였다고 하는데 미군에서는 이를 황해에 던질 모양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를 매일 10차량씩 운반하여도 6개월 가량이 걸린다고 한다. 위 기사에 나오는 포탄이 저장된곳은 박달군용지로 일제강점기 당시 평양 육군병기창 안양분창이 있던곳이다. 그곳에는 포탄과 만주에 보낼 각종 군수물자들이 비축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기록을 보면 박달 군용지에는 일제강점기 이전 동수암, 막상골, 미름물, 선녀골, 양호다리, 붓골, 웃말, 웃박달리, 횃골 등 9-12개의 마을이 있엇는데 일제가 1930년대 평양 육군병기창 안양분창 건설을하면서 주민들을 다 내쫓고 폐동시켰다. 또 이곳에 있던 후령군, 엄정구, 엄황, 엄성 등의 묘 및 구만(충신)의 정문 등 선현묘와 문화재가 멸실되었다고 한다.
2020년 일제강점기 흔적을 찾아 전국을 누비는 KBS 다큐멘터리국 이완희 PD를 안내해 박달군용지를 갔었는데 그때 안양에서 얀산 넘어가던 곤드레미 고개길(범고개 생기기 이전) 초입에 일제가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다리(박달교)를 발견했었다. 이후 이완희 PD가보내온 아시역사자료센터 기록물에 박달교 관련 문서가 있었다. 1941년 5월 조선군경리부에서 안양-안산 도로 개축공사를 한 설계도인데, 도로의 길이는 12M 폭 1,190M, 7M 폭 5,238M인데, 그 공사의 일부로 박달교를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박달교는 길이 15M, 폭 4M라고 되어있는데 처음 만들 때는 목조다리로 만들었다가 나중에 콘크리트로 만들고 해방이후 미군이 보강공사라를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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