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택지에서 약 500미터쯤 떠러진곳에 잇는 종래 일본군의 소유이든 화약고 수개소는 9일 돌연히 폭발되어 피해가 상당한 양으로 방금도 경찰부에서는 급거히 현장에 출동하야 원인과 손해를 조사중이다."
이 기사는 박달군용지에 자리했던 일본군 평양육군병기창 안양분창내 탄약고를 일제 폐망이후 박달 군용지를 접수한 미군이 폭발시킬 당시가 아닐까 싶다.
작고하신 안양 원로 고 변원신어르신 구술에 의하면 일제는 1941년 천혜의 요새인 박달동 수리산 깊은 골짜기에 육군성 소속 탄약 저장시설(일명 군용지)을 설치했다. 일제의 패망 이후 탄약저장 시설과 탄약을 인수한 미군은 일본군 탄약을 안산 넘어가는 곤드레미 고개 아래 굴을 파서 그 안에서 폭발시켜 폐기처리했다.
고 변원신님은 주민대피령이 내린 가운데 지축을 울리는 폭발소리에 안양 도심의 창문이란 창문은 모조리 떨어졌고, 파편은 자신이 살고 있던 안양3동 양짓말까지 날아왔다고 증언한바 있다.
이 기사를 보면 탄약 폭발하던날이 1945년 11월9일이다. 이후 자유신신문 1946년 2월18일자에 "포탄 50만톤 안양에서 발견"의 포탄 관련 기사가 게제됐다. 이는 박달군용지 탄약와는 다른것으로 보인다. 무엇일까.
이 기사의 내용을 보면 8.15이전 의군(일본)들이 포탄 50만톤을 안양비행장 부근에 감추어 두엇던 것이 이번 양군(미군)에게 발견되였다고 하는데 미군에서는 이를 황해에 던질 모양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를 매일 10차량씩 운반하여도 6개월 가량이 걸린다고 한다" 결국 이 기사에 나오는 포탄이 있던 곳은 어디일까. 일제강점기 안양 곳곳에는 포탄을 저장했던 탄약고 시설이 있었던 듯 싶다. 또 기사에 안양비행장이 등장하는걸 보면 실제 비행장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디일까. 달안리(평촌?)
한편 안양에서의 대규모 폭발사고는 3건(1. 박달군용지 탄약고 폭발 2. 한국전쟁 당시 안양역 탄약열차 폭발 3. 호계동 탄약 분해공장 폭발)이 있었는데 안양시 연표에는 2건 ( 1946년 04월19일 안양화약고 폭발과 1964년 03월05일 탄약분해공장 폭발로 3명 죽고 100여명 중상)만 기록되어 있으며 1번의 폭발 날짜는 틀리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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