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김영부]벽산로의 진실…안양문화의 현실 1

안양똑딱이 2016. 6. 30. 14:40
[김영부]벽산로의 진실…안양문화의 현실 1

[2005/08/05 안양토박이, 청년 원태우를 닮자!]


 

벽산로의 진실…안양문화의 현실 1

만1년이 지났다. 평화적이며 문화적으로 시작된 ‘만안구 문화의 거리 조성운동’은 안양사회에 큰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권력은 사실을 왜곡하고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있다.

이에 현혹된 시민들은 새로운 피해자가 아닐까? 이에 부족하지만 감히 지난 1년간 벽산로의 진실을 밝힐 결심을 하였다. 다른 의견을 가진 분의 토론이나 답변도 환영한다.

2주 전에 한 초상집에 문상 가서 있었던 일이다. 난데없이 한 어른께 붙잡혀서 경고를 들었다.

“이 XX, 옆구리에 칼 한방 먹고 싶어?”

조폭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끔찍한 표현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만큼 잘못한 일도 없지만, 빈소 앞에서 들을 말은 더더욱 아니어서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당황스럽고 씁쓸한 마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지난 3월, 안양시의 벽산로 노점상 강제철거 당시로 거슬러 간다.

한 공무원과 좋지 않은 인연이 닿았다. 기자회견을 위해 시청사에 들어서는데 의도적으로 시비를 걸어 검문을 하면서 일은 시작된다. 자신의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두손은 주머니에 넣고 시종일관 반말에 나중에는 욕설까지 내뱉었다.

보는 사람이 없었거나 주변에서 말리지 않았다면 주먹까지도 휘두를 태세였다. 그는 이후 언론사 기자들에게도 폭언과 폭행을 일삼아 ‘안양시장에게 과잉충성을 하는 인물’이라는 평을 받으며 언론에 오르내렸다.

초상집의 ‘그 어른’과 시청의 ‘그 공무원’은 선후배이며, ‘안양 토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대목에서 글쓴이의 우상을 고백하고자 한다.

‘안양의 자랑 … 원태우 의사’이다. 일제의 수괴 이등방문을 저격해 민족의 울분을 달랜 분이다.

을사조약이 체결된 닷새 후,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백성들의 분노가 들불처럼 타 오를 무렵 안양청년 원태우(당시 24세)는 수원에 사냥나갔다 열차로 돌아오던 이등박문을 향해 석수동 서리재 고개에서 일격을 가한다.

조선청년 원태우가 던진 돌멩이에 정통으로 머리를 맞은 이등박문은 일주일간 입원을 했으며, 국내와 일본언론에 크게 보도된 것을 보면 대단한 사건이었던 모양이다.

그 뒤 일제에 붙잡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원태우 의사는 평생을 감시와 탄압 속에서 지내다 결혼도 못한 채 69세에 타계한다. 하지만 이등박문을 저격한 안양청년 원태우의 의거는 온 국민을 통쾌하게 했으며 반일정신을 고취시켰다고 한다.

글쓴이가 아는 안양사람 가운데 가장 훌륭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원태우를 꼽는다.

시대가 흐르고 흘러 민주주의시대에도 여전히 친일파의 후손들이 큰 소리치는 세상이지만, 언제고 기회가 닿는다면 그를 추모하는 문화제와 그를 주인공으로 연극을 만들고 싶다.

진리를 위해 자신을 던지고 불의에 항거하는 ‘참 사람’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2005-08-11 07:3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