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김희정]사람과 문화가 죽어버린 반문명적인 안양 벽산로 노점상 철거

안양똑딱이 2016. 6. 30. 14:13
[김희정]사람과 문화가 죽어버린 반문명적인 안양 벽산로 노점상 철거

[2005/03/25 안양시민]

 


3월 17일 비오는 새벽 철거 현장에 있었던 시민의 유감을 적는다.

찬비 내리는 깜깜한 밤,안양 구삼원극장부터 외환은행까지 늘어선 일명,닭장차라 불리는 전경차의 긴 행렬과 전경,경찰,철거 용역,공무원 등 천여명이 아울렛부터 벽산아파트,전진상복지관까지 벽산로 진입을 삼엄하게 차단한 채 행한 벽산로 노점상 철거는,가히 계엄령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우스웠다. 노점상의 거의가 힘없는 부녀자나 고령의 노인들인데,규모와 인력이 어울리지 않게 무지막지했기 때문이다. 시(市)가 이런 힘과 인력을 동원해 없애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회의가 들었다. ‘그들이 없애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 노점이 아닐지 모른다. 사전 통보 없는 한밤의 일방적이고 무자비한 철거에 없어지는 것은 생계가 막막한 힘없는 노점상만이 아닐지 모른다. 그건..그건..’

그리고 오마이뉴스와 안양시 게시판에 실린 관련기사와 글들을 읽었다. 그간의 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시가 작년부터 일방적으로 제시한‘벽산로 정비계획’과 노점상인들의 이의,협상 요구와 시민사회단체들의 중재 노력과 시의 협상 거부,철거까지의 과정을.

1.'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시정

‘그건..무얼까.’ 시의 일방적인 벽산로 정비계획은 노점상을 비롯 지역 사회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나 간담회의 절차등을 거치지 않은,그래서 주민의 보편적인 민의를 수렴한 정당한 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더욱이 노점상의 생계가 걸린 중대한 문제라면 그들의 입장과 고충을 배려한 세심하고 탄력적인 시정이 필요했음에도 시민사회단체의 중재노력이나 철거 시기와 방법에 관한 노점상의 협의 요구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한밤의 기습적인 철거가 있었을 뿐이다. 힘없는 상인들의 목숨줄을 손쉽게 끊어 버린다는 것 외에 보이지 않는 더 중요한 진실이 거기엔 숨겨져 있다.

‘사람과 공동체’의 가치에 대한 파괴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칼자루를 쥔 시가 어떤 대화의 노력을 했는가. 상인들과 시민들을 대하는 그들의 마음자세는 어떠했는가. 노점들이 보행자들에게 불편을 준다면,도시미관에 거슬린다면,재래시장 활성화에 방해가 된다면,시의 일방적인 논리만이 아니라 노점상과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합리적인 해결을 도모했어야 했다. 일방적인 철거 계고는 노점상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목숨이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고려없이 행한 일방적인 행정이 결국 사람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건 사람에 대한 불신과 절망,미움 같은 것들이다. 더욱이 시민이 철거로 얻은 득이 ‘주차하기 편하고 걸어다니기 편하고 그저 거리가 휑하니 사람으로 북적대지 않아 좋다’는 것인데 비해 잃은 것이 ‘사람에 대한 믿음’이라면 어쩔 것인가. 왜냐면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는 것보다 더 무서운 실(失)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치가 실종된 사회는 희망이 없다. 이런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시는 어떤 노력을 했는가. 보이는 것만의 노점 철거가 보이지 않는,사람들의 가치와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거라는,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았는가. 과연 수십대의 포크레인과 지게차,트럭,소방차,천여명의 물리력을 동원한 무자비한 철거가 없앤 것이 그저 허름한 수십개의 노점 뿐일까.

2.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시정

안양 중앙시장은 안양 일번가와 마주보며 안양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시민들과 함께 호흡해 온 뿌리깊은 곳이다. 그만큼 이곳은 지난 30여년간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 온 주민들의 땀과 눈물,삶과 애환이 깃든 재래시장으로,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공동체였다. 이번에 철거된 노점상도 근 20년간 이 뿌리깊은 재래시장의 부분으로 존재해 왔다. 더욱이 1994년 이래 시의 지원으로 잠정적 노점상 허용구역으로 합법적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건 여기 노점상을 이용하는 주민들과 시민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해온 나름의 질서와 문화를 시도 인정해준 거였다. 사람이 오가고 물건을 사고 정을 나누고 생활을 유지하는 그런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루아침에 무참히 파괴되어서도 안된다. 거기엔 수많은 사람들의 자취와 삶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 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의사를 물어 보았어야 한다. 노점이 좋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니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철거해야 하느냐 아니냐는 그 사람들이 결정해야 한다. 왜냐면 그런 문화를 만든 것은 그 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지역 주민 의사와 상관없이 어느 누가 공권력을 행사하는가. 시가 일방적으로 공권력을 동원해 흔적없이 지워버린 것은, 그 지역 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나는 이런 시행정에 깔린 공무원의 ‘사람과 문화에 대한 인식’에 환멸감을 느낀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지위가 주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편의대로 행정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고압적이고 안일한 행정 편의주의의 발상,말이다. 이번 철거가 있기까지 이런 여러 문제들에 대한 숙고가 있었다면 지역 사회의 마찰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을 지휘하는 총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시장의 역할에 문제를 제기한다. 시행정의 꼭대기에 있는 테크노크라트라면 공권력의 오용과 남용을 컨트롤하고 민의를 공평하게 수렴하고 반영하는 시정을 위한 나름의 철학과 방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시정은 일체의 민의 수렴을 위한 노력과 성의를 보이지 않은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으로,시정에 종사하는 공무원들의 세심하고 성의있는 행정으로 조절하지는 못할망정 더없이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대책없는 행정으로 이끌었다. 여기에 어떤 대안과 협의와 노력이 있었는가 말이다. 그냥 불도저로 밀어 부치듯 단순하게 밀어 부치면 되는 것인가.

3. 끝으로 시의‘벽산로 정비계획’이 이유로 든‘도시미관,보행자의 편의,재래시장 활성화’와 노점의 관계에 대해 간단히 반론을 제기한다.

노점 철거의 이유로 든 것이 도시미관인데,‘노점이 사라진 거리는 아름다운가’라는 오마이 뉴스 기사에서처럼 과연 아름다움의 기준이 무엇인가. 넓고 쭉 뻗은 매끈한 대로만이 아름다움이 아니다. 사람들이 복작대는 작은 시장길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문화재 보존에 관련해 어떤 사람의 말이 떠오른다. “불도저로 깨끗이 밀어 없애고 다시 짓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작은 오솔길을 옛모습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더 노력과 돈이 든다.”고. 벽산로 노점길이 문화재란 말은 아니다. 그만큼 어떤 것을 없애고 다시 만들고,또는 보존하는 과정엔 숙고가 필요하단 것이다. 미관이 이유라면, 노점을 이용자가 이용하기 편리하고 깔끔하게 다듬는 데 노력할 수 있지 않았을까. 보행자의 편의도 고려해서 말이다.

선진국에서 운전자 차량 위주가 아닌 보행자 위주로 도로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마당에 차도를 넓히고 인도를 줄인다는 것이 벽산로 정비계획 초기 의도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평촌 중앙 공원에서 차량 진입 통제를 하듯,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도 보행자 위주로 벽산로를 조성하고, 노점이 재래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면,철거가 아니라 이용자의 보행에 불편을 주지 않게끔 정비하면 되지 않았을까.

이번 철거된 노점의 이용자는 꽤 많았고,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도 노점 철거는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 대안없는 일방적 노점 철거는 당연히 생계가 달린 노점상들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이런데도 시에서 든 벽산로 정비의 이유가 일반시민에게 설득력이 있을까.

결론은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노점 정비를 할 수 있었음에도,시민과 상인에게 어떤 이득을 주는 지 불분명한 채 커다란 파행을 자초할 게 자명한 철거라는 최악의 수단을 선택함으로써, 민의를 외면한 시정으로 비난을 면키 어렵다.
지금부터라도 원점에서 다시 벽산로 노점의 문제를 그 지역 사회 주민과 함께, 사람과 문화를 존중하는 입장에서, 숙고해 주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안양의 인간 중심적인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신과 문화,전통을 지키는 차원에서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2005-03-25 10:3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