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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용]재밌는 우리마을 안양 소골안의 기억(2020.09.14)

안양똑딱이 2023. 2. 4. 13:10
김승용
 
내가 살던 마을은 계곡 마을이라 거의 남북으로 흐르는 계곡천 좌우로 마을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집들은 대부분 동향 아니면 서향이었다. 아니면 무향집이었다. 집 지을 자리가 너무 좁아 집이 사방의 집들 가운데 들어앉아 어른 어깨 넓이의 좁은 골목으로 지그재그 들어가야 제 집에 드나들 수 있는 집들도 꽤 됐다.
그 마을은 조금이라도 비가 많이 오면 어른들이 죄다 하천가에 나와 물이 불어나는 속도를 지켜봤다. 하천이 넘치면 하천가 집담은 여지없이 무너졌으니까. 대신 물 걱정은 안 했다. 수도가 들어온 게 70년대 중반으로 안양시에서 아마 가장 늦었을 성싶다. 계곡물 자체가 1급수라서 조금만 상류로 올라가면 마실 물이 얼마든지 있었다. 가끔 밤에 퍼온 물을 아침에 봤을 때 가재가 들어 있기도 했다.
그 마을에서는 잘 안 키우는 가축이 있었다. 의외로 닭이었다. 계곡마을이라 소리가 잘 울려서 닭을 키우면 욕을 먹었다. 그래서 마을에서 닭을 키우는 집은 유일하게 우리 집뿐이었다. 마흔한 마리나 키웠다. 대신에 초저녁부터 아침까진 늘 포대기를 덮었다. 빛 들어가지 말라고, 눈치 없이 수탉 홰치지 말라고.
동네에서 가축을 가장 많이 키우는 집이 우리 집이었다. 닭 41마리, 돼지 9마리, 토끼 7마리, 개 12마리, 고양이 1마리, 흑염소 2마리, 토종닭 2마리, 긴꼬리닭 5마리, 청둥오리 2마리, 자라 1마리, 금붕어 2마리. 가난에 몸서리치던 아버지가 죽기살기로 키웠다. 그 덕에 동물과 교감하는 능력이 생겼지만 그만큼 아이로서 놀 시간은 없었다. 학교 끝나면 바로 집에 와서 가축들을 건사해야 했으니까. 아마 여덦아홉 살부터 낫을 쥐고 작두를 밟았지 싶다.
마을 형과 누나들은 대개 날라리 아니면 공순이거나 둘 다였다. 마을에서 대학을 간 사람은 내가 알기로 딱 한 사람이었다. 상류 쪽 동네 돌담집 누나였는데 대학 다니다 머리가 돌아버려서 자퇴하고 집에서 수예를 하거나 과외를 해주었다. 하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고문 후유증 아니면 성폭행 피해자라는 얘기가 쉬쉬였다. 동네가 음해서 성적인 사건은 무척 많았고 또 그만큼 많이들 쉬쉬했지만 귀가 밝고 잠이 없는 나는 온동네 쉬쉬를 다 들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까져서 어른들 소설을 섭렵했기에 대충 무슨 뜻인지, 진상은 무엇인지까지 알고 추리해냈다. 상류 계곡물에 목욕하다 뱀 알이 몸에 들어가 나중에 배불러 뱀을 낳았다거나, 낫질하다 잘못해서 손목을 그었다거나 하는 애기들. 심지어 상사병에 목 매달아 죽은 아들의 명예(가 아닌 집안망신 덮기)를 위해 끌어내린 아들의 시신을 헛간에 넣고 불을 지른 이야기까지 나는 다 들었다.
마을에는 장애인들이 꽤 있었다. 도시 사람들의 꺼림칙한 시선을 피해 안양 사람들도 잘 모르는 그 마을로 들어온 거다. 유전적으로 스무 살 무렵부터 백내장이 생겨 헐크 눈동자가 되는 병이라든가, 간질병, 스스로 자해하는 정신질환, 젖통을 내놓고 돌아다니는 아주머니 등등 이상한 사람을 어려서부터 참 많이 봤다. 그래도 다행인 건, 마을 사람들 스스로가 대개 따라지들이고 내세울 것도 지킬 것도 없어 그런 사람들에게 측은지심을 가졌다는 거다. 그래서 매일 아랫도리가 축축한 동네 바보형에게 꼬마들도 함부로 하지 않고 그 형 츄리닝이 젖으면 두셋이 손 잡아 이끌고 집에 데려다줬다.
마을엔 토속신앙이 참 많았다. 남묘호렌쿄도 있었고 예배당도 있고 절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토속신앙을 선호했다. 어차피 바칠 돈도 공물도 전혀 없는 가난한 동네에, 병원은커녕 마을 밖 약국에 가는 것만도 벅찼으니까. 그래서 웬만한 병은 정화수 아니면 민간요볍이었다. 어려서 남의 집 개한테 엉덩이를 크게 물린 적이 있었다. 그때의 민간요법은 그 개의 털을 한 주먹 잘라서 불에 태운 뒤 그 재를 물린 자리에 된장 섞어 바르는 게 다였다. 아직도 내 엉덩이에는 그 흉이 있다. 흉하진 않지만 나의 다비드 몸매에 옥의 티다 후후후
마을 남정네들은 도박을 즐겼다. 그리고 대다수의 도박의 끝은 만취와 폭력과 돈 내놓으라고 여편네 잡는 소리였다. 솔직히 웬만히 충격적이지 않으면 한국 소설의 내용이 싱겁다. 나이 일곱 살에 이미 이발소 퇴폐 맛사지부터 낙태와 변태성욕, 온갖 미친 군상들, 수많은 양아치와 깡패, 발랑 까지다 못해 면도날 씹던 누나들에 소매치기로 살아가는 형들도 다 보면 컸으니까. 우리 마을을 외지 파출소에서도 넌더리를 냈다. 1년에 한 번은 살인이 일어났으니까. 그것도 대개는 도박판이고, 어이없이 윷놀이 돈내기에 목이 찔려 죽기도 했다. 흉기는 막걸리 안주로 김치 집어먹던 젓가락. 그리고 형사들이 자주 들어왔다. 수배범이 잘 숨어들기도 하고 마을 사람이 외지에서 죄 저지르고 돌아와 숨기도 했으니까. 어설픈 범죄자는 제 집 아닌 다른 집에 의탁하고, 머리 좀 돌아가는 범죄자는 산에 토굴을 파고 숨었다.
나 살던 마을 이야기만으로 소설을 써볼까 생각을 해본다. 아직 이런 마을을 다룬 이야기는 못 읽어봤으니까. 다닥다닥 좁은 마을에 참 사건이 많았고, 나는 많이 들었고, 여태 기억하니까. 재밌는 우리 마을, 소골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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