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실이네 과수원에서 몰래 따온 덜 익은 복숭아를 먹으며 친목동에 사는 친구들이 아침부터 자랑을 하곤 하였다.
우리 집은 지금 범고개(호현마을이라고 바꿨는데 나는 별로 탐탁치가 않아 그냥 범고개라고 부른다) 안동네에 있었는데 길 너머로 큰 고모네가 있었고 집 뒤로는 같은 반 친구네 공장이 있었다.
사실 친목동 친구들도 집 앞으로 지나갈 때도 있지만 대개 그들은 윗동네로 우회하여 육골로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가 절대로 육골 쪽으로 다니지 못하게 하였고 범고개 사는 친구들 따라서 신작로를 걸어 학교에 다니도록 하였다.
그래서 언젠가는 나도 한 번 꼭 육골을 가보고 싶었는데 당최 그 쪽으로 가지지를 않았다.
몇달 차이 아니라고 해도 한해 일찍 들어간 학교에서 나는 유난히 작았다.
어머니는 그런 이유로 동네 큰 친구들을 쫓아 다니게 만들었고 육골로 돌아 다닐 기회가 마땅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육골로 집에 갈 기회를 잡았다.
친목동의 영수와 용만이를 따라 육골 계곡으로 난 길로 집에 오게 된 것이다.
뜨거운 여름, 신록으로 덮인 나무 숲 사이로 종실이네 복숭아밭이라고 친구들이 손가락으로 알려주는데 누구도 서리를 하러 들어갈 생각을 안하였다.
내가 육골에 가고 싶은 단 하나의 이유. 그것은 나도 덜 익은 복숭아를 따먹어 보고 싶었던 것인데...
하여간 혼자 김이 빠져서 터덜 거리며 집에 오자 이게 웬일...
집이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닌가.
집안에는 사람만 없는 것이 아니고 세간살이가 다 없어진 것이다.
난감함에 어쩔줄 모르며 그 쪽으로 다니지 말라는 데 오늘 그 쪽으로 와서 내가 벌을 받는가 보다... 하다가 불현듯 생각이 났다.
아, 맞다. 오늘 이사가는 날이지.
갑자기 주막거리 한길 옆에 얼마 전에 아버지가 지은 새 집이 생각 났다.
가방을 다시 둘러 메고 주막거리 새 집에 가니 어머니를 비롯하여 아버지와 동생이 있었다.
그 때 그 안도의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
글쓴이 임희택(맑은한울)님은
안양시 박달동 범고개에서 태어난 1963년생 안양토박이로 안서초, 안양동중(신성중), 신성고, 한양대(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안양시민권리찾기운동본부 대표 등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맑은한울 별칭의 논객으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며, 사회복지사로, 맑고 밝고 온누리를 추구하는 자칭 진정한 보수주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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