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박찬응]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안양똑딱이 2016. 6. 21. 16:09
[박찬응]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2000년 7.8월 기전문화]스톤앤워터 관장

 

함민복 시인의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라는 시구를 생각하며 현시대 미술문화를 생각해 봅니다.
80년대 중후반 아주 짧은 한때, 대중들의 열망에 힘입어 미술이 생활 속에서 꽃피우던 때가 있었습니다. 거리에 깃발, 만장, 걸개그림이 내 걸리고 시민미술학교가 열리고 시민들의 참여와 창작욕구를 북돋으며 정체된 미술계에 물꼬가 터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각 지역에선 시민미술패가 생기고 공장에선 노동자미술패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정말 한때는 그랬었습니다. 열망의 도가니탕이었습니다. 지금은 현대미술관 창고에서 ‘민중미술’이란 꼬리표가 붙은 박제가 되어 먼지 쌓인 채로 잠자고 있습니다.

거리에 깃발, 만장, 걸개그림이 내 걸리고 시민미술학교가 열리고 시민들의 참여와 창작욕구를 북돋으며 정체된 미술계에 물꼬가 터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각 지역에선 시민미술패가 생기고 공장에선 노동자미술패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다시 그 열망속의 미술로 돌아갈 순 없어도 미술의 본성을 찾아가는 노력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그 열망속의 미술로 돌아갈 순 없어도 미술의 본성을 찾아가는 노력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전히 미술의 본성은 삶이고 미술의 거처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거리에 극장에 운동장에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화랑과 미술관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합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생산자들(작가들)끼리 모여 자축하고 마는 오프닝 파티를 빼고 나면 미술 전시장은 언제나 썰렁합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미술은 원래부터 대중들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현대미술의 난해함 때문이라고도 하고, 대중들이 TV나 컴퓨터 인터넷 영화관에서 시각적인 영양분을 보급 받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이런 관객부재 현상을 들어 통칭 ‘미술의 위기’라고도 합니다.

우리의 삶의 터전이자 생활전선에도 지각이 변동되는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생긴 이래 정치권력이 세 번이나 바뀌는 동안 여기 저기서 시도 때도 없이 뭉게구름 피어나듯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섭니다. 재건축 현장뿐 아니라 논에도 밭에도 산에도 아파트가 들어서고 사람들은 여기저기 아파트를 순례하며 살아갑니다.

‘어디 사세요?’하면 ‘삼성 래미안이요’‘현대홈타운 살아요’ 합니다.
으레 따라붙는 질문은 ‘집 값이 많이 올랐지요?’ ‘평당 얼마 에요?’ 합니다.
우리는 모두 몇몇 대재벌의 한가족이라도 된 듯 착각하고 삽니다. 도대체 어떤 나라가 국민들의 삶의 흔적들을 송두리째 갈아 없애며 아파트를 짓는가? 또 어떤 국민들이 시공사 이름을 자랑스럽게 붙이며 살아갈까요?

얼마 되지 않아 우리네 삶이 묻어있는 마을과 골목은 민속촌이나 드라마에서나 보게 될 거 같습니다.

나라밖 여행을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각 나라마다 집과 골목과 작은 시장이나 마을공터가 얼마나 소중한 문화자산으로 지켜지고 있는지를 잘 압니다. 100년,200년 동안 마을과 골목과 광장을 지켜온 그들의 문화를 보며 5천년의 자랑스런 민족문화 운운했던 것이 너무나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더군요.

자고 나면 자꾸만 사라져 가는 우리네 마을과 골목과 재래시장을 지키자는 원칙론에는 다들 고개만 끄덕입니다만 몸과 마음은 언제나 잿밥에만 관심이 집중되지요.

아파트 따라 들어선 단지내 상가는 온갖 간판으로 뒤덥히고 신도시마다 들어선 유흥가와 모텔의 레온싸인이 유치 찬란함의 극치를 달려도 비겁한 미술인들은 술안주거리로 욕만 해댑니다. 소수의 주류작가를 빼고는 자기 밥벌이도 못하면서 여전히 철학가인체 폼만 잡는가 하면 또 한편으론 생활의 터전이 뭉개지고 있는 것에 눈감아버리고 밥벌이에만 여념이 없습니다. 미술인들의 사회적 직무는 커녕 제 발법이가 안돼 부가적인 수단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건 미술인들을 송두리째 폄하 하고자 꺼낸 이야기도 아니고 자학의 몸부림도 아닙니다.

현시대 미술이 안고있는 문제점이나 결핍된 점, 부족한 부분을 보충 대리하는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해야만 합니다. 미술(예술)의 대안은 아직도 지역문화예술에 있고 마을과 골목이 있는 우리네 생활터전에 있다고 믿습니다.

개발과 재개발의 속도가 아무리 빠르다 해도 문화예술의 원류를 지키려는 문화예술인들의 실천이 있는한 ‘생활속의 예술’은 실현될 것입니다.

 
경기도 안양에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는 생활속의 예술을 실현하기 위해 태어낫습니다. 그 공간의 위치는 안양시 석수동의 시장골목 한켠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상가건물 2층 21평정도의 공간으로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개인작업실로 쓰이다가 공장 창고로 쓰이는 것을 보수하여 전시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 공간의 정확한 이름은 ‘supplement space Stone&water’입니다.

생활속에서 결핍되거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대리한다는 의미와 현시대 미술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보충 대리하는 공간이란 이중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스톤앤워터는 석수(石水)동의 지명에서 나왔습니다.
2002년 6월부터 지금까지 5번의 기획전과 한번의 개인전이 있는 동안 450여명의 작가들이 참여했고 5천여명의 관람객들이 다녀갔습니다. 어렵게 찾아오는 이마다 한마디씩 합니다. 도대체 어쩌자고 이런 곳에 이런 공간을 만들었냐는 것입니다. 걱정된다고 하고 상식적이지 못하다고들 합니다.

이공간은 기존의 미술공간과 무엇이 다르며 어떠한 전시들이 이루어 질까요? 여기에 참여하는 생산자인 작가들은 어떤 작가들이며, 관람객과 무엇을 어떻게 교감할까요? 스톤앤워터의 개관전시로 열린 ‘리빙퍼니처 이것이 생활속의 예술이다’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전시는 독일에 거주하는 독립큐레이터 류병학이 기획하고 연출한 전시입니다.

리빙퍼니처전은 2001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형식으로 초대되었다가 무산되면서 부산에서 실현하는가 했는데 다시 우여곡절 끝에 안양의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의 개관전으로 그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상세한 내용은 아침미디어 간 ‘리빙퍼니처’ 참고)

이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미술과 공예, 산업과 건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가 네트워크로 미술을 생활속에 근접시켰다는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물론 대다수의 관람객들도 미술인들이 아닌 생활인들이었습니다.

한 명의 총 감독과 6명의 커미셔너 두 명의 코디네이터와 280명의 작가와 경기문화재단을 포함한 6개의 후원업체와 30개의 협찬사가 참여한 대규모 전시였습니다. ‘사람들은 왜 미술관에 가지 않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예술이여! 예술의 고향인 생활속으로 돌아가라”는 외침의 전시였습니다. 구조와 형태, 색채까지 풍수지리에 입각해서 가구들과 생활용품들이 연출된 원룸형식의 생활공간이었습니다. 많은 관람객들이 작품 위를 거닐기도 하고 만져보고 앉아보고 그 자리에서 직접 구입해가기도 했습니다.

이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미술과 공예, 산업과 건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가 네트워크로 미술을 생활 속에 근접시켰다는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물론 대다수의 관람객들도 미술인들이 아닌 생활인들이었다.

리빙퍼니처전 이후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실험과 모험의 장이 되고 있는 스톤앤워터의 목표는 ‘생활속의 예술’을 실현하는데 있습니다. 리빙퍼니처전에 이어진 재건축의 재건축전(윤현옥기획)은 잠실4단지 재건축 아파트 한 채를 그대로 옮겨오기도 하고, 새로운 희망(강영민기획)전에선 자생적 예술시장인 ‘희망시장’의 시민작가들을 초대하여 석수재래시장 상인들과 물물교환도 하고 초상화 그리기, 전철 퍼포먼스, 발도장 방명록 등 다양한 관객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하였으며 상상도서관전(권자연, 채진숙기획)에서는 이웃마을의 꿈나무어린이도서관과 연현초등학교와 연계된 전시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공동 공간 속에서의 전시는 행정력이 뒷 받침되어야 하고 거주민들과의 토론과 합의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작가와 행정력과 거주민간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7월에 있을 ‘웰컴투 작업실’(박소정,송동하,허민희기획)과 8월에 있을 생경 ‘익숙하게 낮선 풍경전(현시대미술발전모임기획)’에서는 전국에서 젊은 작가들이 매월 석수시장 골목을 방문답사하며 전시를 준비 중입니다. 즉,석수시장의 풍경을 바꾸는 전시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곳을 찾는 젊은작가들이 스톤앤워터 공간에서 석수시장골목으로 전시공간을 확장 사용하는 예가 많아졌습니다.

공공의 장소에서의 전시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수반합니다. 공동 공간 속에서의 전시는 행정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거주민들과의 토론과 합의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작가와 행정력과 거주민간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소가 아름답건 아니건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작가는 그 공간 자체로서 의미를 가져야 하고, 관람객들이 지나다니면서 보게되는 미술작품은 주변환경을 자연스럽게 변화시키며 영향을 끼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업그레이드 되며 생활 속에서 미술로 자연스럽게 꽃피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생활 속의 미술을 지향하는 공간들이 전국의 모든 도시에 생긴다면 더없이 좋은 일일 겁니다.

“서울외곽순환 예술벨트를 꿈꾼다”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 있겠습니다만 우선 ‘서울외곽순환 예술벨트’를 제안합니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는 구리시,남양주시,하남시,성남시,과천시,의왕시,군포시,안양시,광명시,안산시,부천시,김포시,고양시,의정부시등 14개의 시를 거처 순환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서울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위성도시들이 경계를 순환하고 있습니다. 서울주변 위성도시들을 원형으로 연결하는 이 도로는 서울 중심부에서 20㎞ 내외의 거리에 있고 총 33개의 인터체인지와 분기점을 갖고 있어, 경부·경인·제2경인·중부고속도로 등 기존 방사형 고속도로 및 시흥~안산간 고속도로, 인천국제공항 전용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와도 연결됩니다.

이로써 이 도로는 서울을 중심으로 방사형과 순환형이 조화된 수도권 교통체계를 구축하는 핵심도로로서 서울 주변 주요 위성도시들을 연결시켜주는 연결 고리의 기능을 합니다. 또한 남양주 인터체인지 가까이에서 중앙선이 지나고, 퇴계원 인터체인지에서 경춘선이, 동군포 인터체인지에서 경부선이, 송내 인터체인지에서 경인선이, 일산 인터체인지에서 경의선이, 건설중인 도봉산 지역에서 경원선이 지납니다. 이 순환고속도로를 생각하며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서울외곽순환도로 주변 도시에 사는 예술인들이 연대하여 중심(서울)을 포위하는 예술벨트를 조성하자는 제안입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해볼만한 거 아닌가요?

4년 임기 채우는 정치가나 단체장이 아닌 우리 예술가들이 10년 20년 아니 30년을 내다보고 추진한다며 안될 것도 없습니다. 이러한 시도로 경기도를 세계속의 문화중심도시로 거듭나게 하는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을뿐 아니라 각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문화네트워크로 진정한 지역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분명 앞으로의 미술은 변두리에서 꽃이 피어 중심과 주변의 논리를 무너뜨리고 생산자와 향유자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작가와 관객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다양한 경계에 문화의 꽃망울을 터트릴 것이라 믿습니다.

‘서울외곽 순환예술도로’에 연결된 구리시,남양주시,하남시,성남시,과천시,의왕시,군포시,안양시,안산시,광명시,부천시,김포시,고양시,의정부시의 문화예술인 여러분! 우리가 앞장서서 각양각색의 경계들을 무너뜨리고 생활속에서 꽃피는 예술을 실현할 그런 날을 만들어 봅시다.

-혼자 꾸는 꿈은 한갓 몽상에 불과 하지만 함께 꾸는 꿈은 또 다른 현실의 시작이다-

문화 소공간 네트워크 창출을 꿈꾸는 필자의 글은 예술가들이 주체로 참여, 생활속의 예술을 꽃피우자는 의도가 담겨있다. - 편집자 주

2004-08-28 16:1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