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대학교 교수, 안양학연구소 소장
석수동과 박달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현재 안양지역은 일제시대 초기까지 안양천을 경계로 상서면과 하서면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 두 개의 면이 합쳐서 서이면(西二面)으로 행정명칭이 변화된 시기는 1914년 3월 1일에 시행된 조선총독부령 제 111호에 의해서 인데이 때의 서이면사무소는 호계 2동 방죽말에 있는 구 교육청 자리 앞쪽에 있었다.
서이면사무소는 1917년 7월 6일 자로 현재의 안양 1동 사무소 옆 안양옥 자리로 옮겨오게 된다. 면사무소의 이전은 서이면의 중심지가 호계리에서 안양리로 바뀐 것을 의미하는데, 1905년의 안양역사 개설로 인하여 인구와 물자이동의 중심축이 안양리로 이동하였기 때문이다.
이 곳은 1941년 10월 1일 서이면이 안양면으로 개칭된 이후에도 계속 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1949년 8월 15일 안양면이 안양읍으로 승격되면서 안양 1동 사무소 옆 LG 패션 건물 자리에 안양읍 청사가 신축되자 평북 정주에서 의원을 하다 월남한 이 영래 씨에게 팔렸다. 당시 개업할 곳을 찾던 이씨는 60만원에 입찰공고가 나 있던 면사무소 건물을 70만원에 수의계약으로 매입한 후 삼성병원건물로 83년까지 사용했는데, 은퇴하면서 현재의 소유주에게 팔아 갈비집 ‘안양옥(安養屋)’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당시 면사무소의 직원으로 근무하다 안양읍 부읍장까지 지낸 김 형욱 옹은 당초 하서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서이면사무소로 간판을 바꿔단 이 건물을 1917년에 현재의 자리로 뜯어서 옮긴 것과 당시 귀인동 이 종문 씨 집의 행랑채를 헐어 건물의 규모를 키운 것을 증언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하서면이 나타나는 마지막 행정구역 개편이 1895년(고종 25년)에 이루어 졌으니 안양옥 건물은 최소한 백년이 넘은 것이 된다. 또한 당시 서이면사무소에 근무한 적이 있던 원로들과의 면담과정과 건축전문가들의 확인과정에서도 건물의 원형이 손상되지 않았고, 보존상태도 좋다는 것이 밝혀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1895년부터 1914년까지 19년 동안은 하서면사무소로, 1914년부터 1941년까지 27년간은 서이면사무소로, 1941년부터 1949년까지는 안양면사무소로 모두 54년간을 면사무소로서의 행정사무를 수행한 건물이 바로 안양옥인 것이다.
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초반에 이르는 동안의 기록을 보면 안양소년단이나 안양수양단 및 안양청년단과 같은 안양이란 지명을 사용한 단체의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일반적으로 안양이란 말이 지역의 대표성을 나타내는 말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하서면의 6개리 중의 일개 리(里)에 불과하던 안양리(安養里)가 발전하면서 지역의 대표성을 획득하고, 마침내 안양사람이란 말에서 표현되는 바와 같은 정체성(Identity)을 갖게되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온 것이 바로 안양옥인 것이다.
지난 연말 시의회는 2000년도 안양시 예산 중 대지 136평, 건평 80평의 안양옥을 구입하기 위한 예산항목 전액을 역사성과 문화재적 가치에 대하여는 찬동하지만 활용방안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삭감했다.
예산삭감에 대한 시의회의 입장이 단지 안양옥의 활용방안에 대한 설득력 부족이 이유라면 다음과 같은 대안을 선진 외국의 경우에 비추어 제시하고자 한다.
보통 선진국의 문화유산을 방문할 경우 원형이 보존된 유적과 그 유적과 관련된 별도의 사료관이나 박물관, 그리고 기념품이나 특산품 매장 및 지역 관광안내 센터 등이 세트로 관리·운영되는 것을 보게된다.
여기에 준하여 활용방안을 찾아보면 우선 안양옥을 매입한 후 전문가나 당시의 근무경험자들의 고증을 거쳐 면사무소의 시설이나 집기, 서책 및 면장실 등을 복원하여 일반에게 시간을 정하여 공개하는 것은 어떨까. 이어 총 320평 규모의 나머지 부문도 연차적으로 매입하여 원래 공회당이 있던 자리에는 향토사료관을 현대식 건물로 짓고 흩어져 있는 과거 안양의 유물이나 사료들을 모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놓자. 그리고 기념품매장도 열어 일반적인 관광기념품 뿐만 아니라 지역 특산품도 소개하고 판매하는 방안도 강구하여 보자. 한 걸음 더 나아가 안양을 알고 싶어하고 관광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안양옥을 출발하여 병목안의 옹기박물관과 천주교 성지, 자유공원의 고인돌과 평촌먹거리촌, 안양유원지의 자연경관과 안양사, 망해암에서 내려다 본 안양의 야경 등을 연결하는 하루 코스 정도의 관광일정도 이번 기회에 개발해 보자.
안양옥과 이를 둘러싼 주변지역이 새로운 관광명소로 태어나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지역의 정체성을 심어주는 교육장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안양을 관광하고자 하는 외지인에게까지 문화도시 안양의 모습을 알리는 첨병의 역할을 해 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이 두 개의 면이 합쳐서 서이면(西二面)으로 행정명칭이 변화된 시기는 1914년 3월 1일에 시행된 조선총독부령 제 111호에 의해서 인데이 때의 서이면사무소는 호계 2동 방죽말에 있는 구 교육청 자리 앞쪽에 있었다.
서이면사무소는 1917년 7월 6일 자로 현재의 안양 1동 사무소 옆 안양옥 자리로 옮겨오게 된다. 면사무소의 이전은 서이면의 중심지가 호계리에서 안양리로 바뀐 것을 의미하는데, 1905년의 안양역사 개설로 인하여 인구와 물자이동의 중심축이 안양리로 이동하였기 때문이다.
이 곳은 1941년 10월 1일 서이면이 안양면으로 개칭된 이후에도 계속 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1949년 8월 15일 안양면이 안양읍으로 승격되면서 안양 1동 사무소 옆 LG 패션 건물 자리에 안양읍 청사가 신축되자 평북 정주에서 의원을 하다 월남한 이 영래 씨에게 팔렸다. 당시 개업할 곳을 찾던 이씨는 60만원에 입찰공고가 나 있던 면사무소 건물을 70만원에 수의계약으로 매입한 후 삼성병원건물로 83년까지 사용했는데, 은퇴하면서 현재의 소유주에게 팔아 갈비집 ‘안양옥(安養屋)’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당시 면사무소의 직원으로 근무하다 안양읍 부읍장까지 지낸 김 형욱 옹은 당초 하서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서이면사무소로 간판을 바꿔단 이 건물을 1917년에 현재의 자리로 뜯어서 옮긴 것과 당시 귀인동 이 종문 씨 집의 행랑채를 헐어 건물의 규모를 키운 것을 증언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하서면이 나타나는 마지막 행정구역 개편이 1895년(고종 25년)에 이루어 졌으니 안양옥 건물은 최소한 백년이 넘은 것이 된다. 또한 당시 서이면사무소에 근무한 적이 있던 원로들과의 면담과정과 건축전문가들의 확인과정에서도 건물의 원형이 손상되지 않았고, 보존상태도 좋다는 것이 밝혀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1895년부터 1914년까지 19년 동안은 하서면사무소로, 1914년부터 1941년까지 27년간은 서이면사무소로, 1941년부터 1949년까지는 안양면사무소로 모두 54년간을 면사무소로서의 행정사무를 수행한 건물이 바로 안양옥인 것이다.
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초반에 이르는 동안의 기록을 보면 안양소년단이나 안양수양단 및 안양청년단과 같은 안양이란 지명을 사용한 단체의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일반적으로 안양이란 말이 지역의 대표성을 나타내는 말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하서면의 6개리 중의 일개 리(里)에 불과하던 안양리(安養里)가 발전하면서 지역의 대표성을 획득하고, 마침내 안양사람이란 말에서 표현되는 바와 같은 정체성(Identity)을 갖게되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온 것이 바로 안양옥인 것이다.
지난 연말 시의회는 2000년도 안양시 예산 중 대지 136평, 건평 80평의 안양옥을 구입하기 위한 예산항목 전액을 역사성과 문화재적 가치에 대하여는 찬동하지만 활용방안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삭감했다.
예산삭감에 대한 시의회의 입장이 단지 안양옥의 활용방안에 대한 설득력 부족이 이유라면 다음과 같은 대안을 선진 외국의 경우에 비추어 제시하고자 한다.
보통 선진국의 문화유산을 방문할 경우 원형이 보존된 유적과 그 유적과 관련된 별도의 사료관이나 박물관, 그리고 기념품이나 특산품 매장 및 지역 관광안내 센터 등이 세트로 관리·운영되는 것을 보게된다.
여기에 준하여 활용방안을 찾아보면 우선 안양옥을 매입한 후 전문가나 당시의 근무경험자들의 고증을 거쳐 면사무소의 시설이나 집기, 서책 및 면장실 등을 복원하여 일반에게 시간을 정하여 공개하는 것은 어떨까. 이어 총 320평 규모의 나머지 부문도 연차적으로 매입하여 원래 공회당이 있던 자리에는 향토사료관을 현대식 건물로 짓고 흩어져 있는 과거 안양의 유물이나 사료들을 모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놓자. 그리고 기념품매장도 열어 일반적인 관광기념품 뿐만 아니라 지역 특산품도 소개하고 판매하는 방안도 강구하여 보자. 한 걸음 더 나아가 안양을 알고 싶어하고 관광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안양옥을 출발하여 병목안의 옹기박물관과 천주교 성지, 자유공원의 고인돌과 평촌먹거리촌, 안양유원지의 자연경관과 안양사, 망해암에서 내려다 본 안양의 야경 등을 연결하는 하루 코스 정도의 관광일정도 이번 기회에 개발해 보자.
안양옥과 이를 둘러싼 주변지역이 새로운 관광명소로 태어나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지역의 정체성을 심어주는 교육장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안양을 관광하고자 하는 외지인에게까지 문화도시 안양의 모습을 알리는 첨병의 역할을 해 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2003-06-07 13:2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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