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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원]역사성이 풍부하게 누적되어 있는 안양유원지

안양똑딱이 2016. 6. 11. 08:06


한국 박물관학회 평의원/ 건축사


 

삼성천 좌측 유유산업에서 안양사 주변 거북골에는 5000년의 한국문화가 누적되어 숨쉬고 있다. 고대 신앙생활의 유적으로서 그 문화적 가치가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장수바위, 미륵장군등 세계적 관심거리가 되어 있는 거석문화의 흔적들이 이 주변에 널려 있다. 이것은 염불암에서 삼막사까지 연결되는 대장정이다. 만안교(거북다리)에서 시작하여 거북바위(광석바위)→안양사귀부(거북형상)→거북골→삼귀자바위는 거북이의 행렬이다. 중초사당간지주주변 우물은 하단이 4각형이고 상단이 원형으로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으로 조성되어 있다.

안양유원지 주변에는 99개의 절들이 배치되어 있었다고 전해지고 전설에는 이 절들을 다 볼려면 짚신을 등에 메고 들어가 다 닳아서 나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유유석 할머니) 광범위하게 깔려있는 고대 신앙지에 불교 사찰이 접목되면서 99개의 절이 건축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30여개의 절이 있다고 한다.

유원지 입구에 있는 유유산업은 건축가 김중업의 초기작품으로 50년대를 대표하는 산업건축이다. 광석바위라고 부르는 바위에서 삼성천방향으로 거북이의 머리가 있고 이 옆에 소나무가 있다. 머리 밑에는 샘이 있고 옆에 남근석이 놓여 있다. 이것은 신단수하(神檀樹下)의 정형적인 형태이다. 옆에는 후대에 만든 국내 유일한 마대종이 있다. 웃절터골 아래(남)에 있는 골짜기를 거북골이라고 하는데(안양시지명유래집 315P 이승언) 이 거북이와 골짜기는 서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광석바위 북서쪽 100M지점에는 자생종이 포함된 벗나무들이 흐드러지게 피는 곳이고 여기에는 많은 외지 사람들이 와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소로 유명하다. 여기서 북서 방향으로 300M정도 가면 백토광산이 있는데 이 곳은 고려청자의 원료가 공급되었으리라 추정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조사한 250여개의 청자가마터(비산도요지)는 백토의 공급 및 주변에 많은 장인과 종사자들, 농민들이 살았음을 예측하게 해준다. 거북골 계곡에는 미륵장군(?)이라는 커다란 비석같은 바위가 비스듬히 서 있는데 안내자(유유석)가 어렸을 때는 이것이 선바위로 있었다고 한다. 옆에는 마르지 않는 샘이 있고 앞에는 신단이 있다. 계곡에도 인공이 가해진 바위들을 볼 때 이 일대가 바위와 관련된 유적들이 많음을 느낄 수 있다. 이 바위유적은 염불암에서 정점을 이루고 다시 삼막사의 남근바위, 여근바위, 삼귀자바위, 마애삼존불로 이어진다.

5월의 안양사에는 하얀 수국꽃이 만발하는 곳으로 사찰의 옛 정취를 느껴 볼 수 있는 곳이다. 안양사에서 보는 수리산도 안양의 현대 도시를 폭 싸안은 형태로 안양의 일경이라 할 수 있다. 안양사 앞에는 김창용(자유당 정권시 이승만 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중 허대령의 저격으로 죽은 장군이다.)의 무덤터가 있는데 이 사건은 당시 커다란 사건으로 60대, 70대 국민들은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다.

유유산업 안양공장은 건축가 김중업에 의해 1957년에 설계되어 1959년 5월에 준공되었다. 사무동, 생산동, 수위실, 목욕실등이 배치되어 있고 당시 근무자의 증언에 따르면 사무동은 1층 바닥 하부를 파서 연못을 만들고 물 위에 건축하는 피로티형태로 진행되다가 염려가 되서 현재 상태로 마감되었다 한다. 수위실은 2층 원형으로 되어 있다. 이 수위실은 지금 탈의실로 쓰고 있는데 김중업건축기념관으로 쓴다면 매우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다. 작은 것도 기념관이 될 수 있다. 사무동 지붕은 역보로 되어 있고 생산동은 캔트리버로 형성된 코너가 삼성천의 시야를 확보하고자 하는 디자인 요소이다. 2층 양측코너에는 모자상 파이오니아 조각상이 각각 배치되어 있는데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는 조각가 박종배씨의 작품이다. 대문장식,철창 등이 쌍Y자를 모티브로 한 일관된 장식이다. 50년대 후반 어려운 시대에 이러한 건축이 건축되었다는 것은 유득한(유한양행 유일한의 친동생)사장의 높은 안목과 봉사정신이다. 건축가 김중업(金重業,1922∼1988)은 평양교보와 요코하마 고공건축과를 다녔다. 해방전 귀국하여 평촌비행기 공장 건설에 잠시 근무하였다. 1952년 불란서 세계적 건축가 르코르뷔지에 문하에서 새로운 유럽건축을 보고 배우고 와서 유유산업안양공장을 설계하였다. 안양유원지 주변을 재조명함은 안양문화 발달의 촉진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2000. 7. 14.

한국박물관회 평의원 최 승 원

2003-06-07 13:2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