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대학교 교수, 안양학연구소 소장
서이면 안양리에 최초의 공설시장이 들어선 것은 1926년 1월 28일, 안양 1 동 구시장 자리에 안양시장이 5일장으로 개장되면서부터이다.
안양시장은 시흥군의 중심이라는 위치상의 강점과 기차와 자동차로 동시에 접근할 수 있는 교통상의 이점 및 당시 안양리 지역의 비약적 경제성장과 더불어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안양시장은 1929년, 안양지역 최초로 전기가 송전된 곳이고, 정기적인 씨름대회나 서커스 공연 등이 열리는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선거유세나 각종행사 등 지역정치의 발원지이기도 하였다.
또한 시외버스 정류장이나 맛이 좋은 국밥집도 모두 안양장터에 있을 정도로 번화했던 옛 안양 1 번가였다.
이처럼 영화를 누리던 안양시장은 하천변에 위치한 저지대였던 관계로 홍수때마다 상습적인 침수피해를 입고, 주위를 에워싼 한국제지와 태평방직과 같은 큰 공장들이나 철로 등으로 고립화가 심화되자 상권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61년 5. 16 직후, 안양 4동에 현재의 중앙시장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침체되기 시작하여 한때 우시장으로 변신하기도 했으나 점포와 노점을 소형택지로 분양하면서 안양지역에서 주거환경이 가장 열악한 지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은 지하차도 건설로 주택의 대부분이 매입된 채 철거를 기다리고 있으며, 나머지도 주택공사에 매입되어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면 구시장은 과거의 영화를 뒤로한 채 그 흔적조차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앞서와 같은 안양 구시장이 쇠퇴하고, 후발 시장들이 들어서는 과정은 안양의 도시성장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우선 안양은 인구 10만을 돌파하여 시로 승격되는 73년까지는 중앙시장과 남부시장(72년 개장)을 합하여 3개의 시장이 있었다. 77년의 대홍수는 많은 수재민들을 만들어 내는데, 이들을 위한 집단 정착촌이 시 외곽지역에 건설되면서 안양은 또 한번 공간적 팽창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도시의 공간적 확장은 79년의 석수시장과 중앙지하상가 및 비산시장에 이어, 80년에도 관악시장, 명학시장, 현대종합상가(호계동 소재) 등이 개장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83년 이후 본백화점과 벽산쇼핑센터와 같은 대형 쇼핑센터가 들어서면서부터 안양의 상권은 이전과 다른 양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89년 평촌 신도시 입주와 함께 94년 세반백화점과 뉴코아 평촌점, 97년 E-마트, 98년 킴스아울렛, 99년 까루프 등의 개장에서 보듯이 초대형 매장을 갖춘 백화점과 할인점들이 속속 입점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LG 백화점 평촌점과 안양민자역사가 완공되어 롯데 백화점이 오픈하게 되면 안양은 다양한 상품들을 갖춘 쇼핑시설이 완비됨으로써 그 동안 타 지역으로 빼앗기던 약 20 %에 이르는 고객을 지역 내에 확보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대형 매장들이 ▶기존 재래시장을 침체시키고 ▶지역의 영세제조업체의 판로를 막아 지역주민의 고용을 줄어들게 할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확대재생산 되어야 할 돈이 서울로만 몰리게 하여 ▶지역경제의 중앙 예속화와 지역경제를 황폐화시킬 것이란 부정적 논리도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재래시장의 활성화방안이 지방자치시대의 커다란 숙제로 남겨지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대형 할인 유통업체들과 경쟁하면서, 고객들의 소비패턴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내의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을 국내현황 파악 및 외국의 사례 등을 참고하여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현재의 어려운 처지를 극복하고자 하는 상인들의 자발적이고 단합된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토지주, 건물주, 점포주 및 노점상들이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전 구성원들이 상설협의기구를 만들어 단합된 의사결정구조를 이룩하는 것이 재래시장 활성화의 선행조건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자가용 이용 고객들에 대한 주차서비스 확대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쳐야 한다. 주차공간을 증설하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기존의 주차장들과 협의하여 저렴한 주차권을 발급하는 등의 자구책을 세우기 위한 노력은 아무리 들여도 부족할 것이다.
셋째, 일본 구슈(九州)의 재래시장 상인들이 백화점으로 고개를 돌린 주부들을 위하여 시장 안에 첨단 화장실을 설치하여 마음을 돌린 사례는 이미 훌륭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처럼 청결한 화장실과 깨끗한 주변경관을 조성하는 데에도 힘써야 한다.
넷째, 카드결제를 일상화하고, 전자상거래제의 도입 등 시대적 상황에 맞는 거래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시대의 흐름과 같이 갈 때 잃어버린 고객을 되찾아 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잠재적인 고객의 확보도 용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노점상들과 점포상들이 도로를 침범하지 않고, 보행자의 보행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 시켜준다는 사실을 인식하여 자율적으로 도로침범을 자제하는 등 시장질서 확립에 솔선수범 하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지역의 지식인이나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과 협력하여 새로운 문화상품이나 시장 고유의 특화상품을 개발하고, 다른 시장과 차별화 되는 이미지를 구축하며, 이를 관광상품과 연계하여 판매방안을 찾는 등 다양하고 적극적인 상품개발과 판매방안을 찾을 때 재래시장의 활성화는 좋은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상인들의 의욕적인 자구노력이 구체화 될 때, 시민들과 시 당국의 지원책도 실효를 거두게 될 것이다.
우리 안양시가 이와 같은 지역현안을 해결하여 살고 싶은 도시, 풍요로운 자족도시로 거듭나길 바라면서 지역사랑의 글을 맺는다.
안양시장은 시흥군의 중심이라는 위치상의 강점과 기차와 자동차로 동시에 접근할 수 있는 교통상의 이점 및 당시 안양리 지역의 비약적 경제성장과 더불어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안양시장은 1929년, 안양지역 최초로 전기가 송전된 곳이고, 정기적인 씨름대회나 서커스 공연 등이 열리는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선거유세나 각종행사 등 지역정치의 발원지이기도 하였다.
또한 시외버스 정류장이나 맛이 좋은 국밥집도 모두 안양장터에 있을 정도로 번화했던 옛 안양 1 번가였다.
이처럼 영화를 누리던 안양시장은 하천변에 위치한 저지대였던 관계로 홍수때마다 상습적인 침수피해를 입고, 주위를 에워싼 한국제지와 태평방직과 같은 큰 공장들이나 철로 등으로 고립화가 심화되자 상권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61년 5. 16 직후, 안양 4동에 현재의 중앙시장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침체되기 시작하여 한때 우시장으로 변신하기도 했으나 점포와 노점을 소형택지로 분양하면서 안양지역에서 주거환경이 가장 열악한 지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은 지하차도 건설로 주택의 대부분이 매입된 채 철거를 기다리고 있으며, 나머지도 주택공사에 매입되어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면 구시장은 과거의 영화를 뒤로한 채 그 흔적조차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앞서와 같은 안양 구시장이 쇠퇴하고, 후발 시장들이 들어서는 과정은 안양의 도시성장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우선 안양은 인구 10만을 돌파하여 시로 승격되는 73년까지는 중앙시장과 남부시장(72년 개장)을 합하여 3개의 시장이 있었다. 77년의 대홍수는 많은 수재민들을 만들어 내는데, 이들을 위한 집단 정착촌이 시 외곽지역에 건설되면서 안양은 또 한번 공간적 팽창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도시의 공간적 확장은 79년의 석수시장과 중앙지하상가 및 비산시장에 이어, 80년에도 관악시장, 명학시장, 현대종합상가(호계동 소재) 등이 개장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83년 이후 본백화점과 벽산쇼핑센터와 같은 대형 쇼핑센터가 들어서면서부터 안양의 상권은 이전과 다른 양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89년 평촌 신도시 입주와 함께 94년 세반백화점과 뉴코아 평촌점, 97년 E-마트, 98년 킴스아울렛, 99년 까루프 등의 개장에서 보듯이 초대형 매장을 갖춘 백화점과 할인점들이 속속 입점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LG 백화점 평촌점과 안양민자역사가 완공되어 롯데 백화점이 오픈하게 되면 안양은 다양한 상품들을 갖춘 쇼핑시설이 완비됨으로써 그 동안 타 지역으로 빼앗기던 약 20 %에 이르는 고객을 지역 내에 확보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대형 매장들이 ▶기존 재래시장을 침체시키고 ▶지역의 영세제조업체의 판로를 막아 지역주민의 고용을 줄어들게 할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확대재생산 되어야 할 돈이 서울로만 몰리게 하여 ▶지역경제의 중앙 예속화와 지역경제를 황폐화시킬 것이란 부정적 논리도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재래시장의 활성화방안이 지방자치시대의 커다란 숙제로 남겨지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대형 할인 유통업체들과 경쟁하면서, 고객들의 소비패턴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내의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을 국내현황 파악 및 외국의 사례 등을 참고하여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현재의 어려운 처지를 극복하고자 하는 상인들의 자발적이고 단합된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토지주, 건물주, 점포주 및 노점상들이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전 구성원들이 상설협의기구를 만들어 단합된 의사결정구조를 이룩하는 것이 재래시장 활성화의 선행조건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자가용 이용 고객들에 대한 주차서비스 확대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쳐야 한다. 주차공간을 증설하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기존의 주차장들과 협의하여 저렴한 주차권을 발급하는 등의 자구책을 세우기 위한 노력은 아무리 들여도 부족할 것이다.
셋째, 일본 구슈(九州)의 재래시장 상인들이 백화점으로 고개를 돌린 주부들을 위하여 시장 안에 첨단 화장실을 설치하여 마음을 돌린 사례는 이미 훌륭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처럼 청결한 화장실과 깨끗한 주변경관을 조성하는 데에도 힘써야 한다.
넷째, 카드결제를 일상화하고, 전자상거래제의 도입 등 시대적 상황에 맞는 거래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시대의 흐름과 같이 갈 때 잃어버린 고객을 되찾아 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잠재적인 고객의 확보도 용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노점상들과 점포상들이 도로를 침범하지 않고, 보행자의 보행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 시켜준다는 사실을 인식하여 자율적으로 도로침범을 자제하는 등 시장질서 확립에 솔선수범 하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지역의 지식인이나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과 협력하여 새로운 문화상품이나 시장 고유의 특화상품을 개발하고, 다른 시장과 차별화 되는 이미지를 구축하며, 이를 관광상품과 연계하여 판매방안을 찾는 등 다양하고 적극적인 상품개발과 판매방안을 찾을 때 재래시장의 활성화는 좋은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상인들의 의욕적인 자구노력이 구체화 될 때, 시민들과 시 당국의 지원책도 실효를 거두게 될 것이다.
우리 안양시가 이와 같은 지역현안을 해결하여 살고 싶은 도시, 풍요로운 자족도시로 거듭나길 바라면서 지역사랑의 글을 맺는다.
2003-06-07 13: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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