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역사 #기록 #기억 #석수동 #안양육교 #닐미샬로프 #1968년/ 안양에서 서울로 가던 1번국도( 현 석수주유소 삼거리 인근)의 1968년 풍경으로 안양 석수동 83보급대대에 전령으로 근무하던 닐 미샬포프가 찍은 사진이다.
당시 서울에서 안양을 통과해 수원으로 연결되는 도로는 버스가 지나가고 있는 1번국도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도 2차선 도로였다.
이후 1970년대 초 왼쪽의 가로수 옆으로 새로운 길이 만들어져 석수동과 안양여고사거리-안양읍내-구 안양경찰서까지 연결하는, 안양시내를 관통하는 안양로가 새로 놓여졌으며 1970년대 말 중반에 안양육교에서 안양읍내를 통과하지 않고 안양유원지 입구와 비산동-호계삼거리를 여결하는 경수산업도로가 새로 뚫리면서 3개 도로 됐다.
멀리 오른쪽에 보이는 육교가 안양과 서울의 경계격인 안양육교이며 왼쪽 산자락(현 연현초교와 석수LG빌리지 자리)에는 탄약을 보관하던 격납고가 있었다.
안양육교는 1966년인가 무렵에 놓여진 것으로 아는데 그 이전에는 철도 건널목이 있었다. 어릴적 수원-영등포간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 나들이를 다녀올때 기억으로 탄약보관 격납고가 보이고 건널목을 건너면 이제 안양에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버스가 건널목을 건널때면 굉장히 조심했다. 기차가 요즈음처럼 자주 다니지 않았지만 건널목 간수(지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진에서 볼때 버스가 지나는 오른쪽으로는 경부선 철길이 지나가고 있으며 오른쪽은 현재 석수체육공원 앞의 안양시 석수동 안양자동차운전학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서리재고개 - 석수2동
동아제약 입구에 있는 안양육교(安養陸橋) 부근이 원래는 높은 고개였는데, 구 한말에 경부선 철도를 부설하면서 고개를 평탄화 하였다. 현재는 솔개고개(鳶峴)라 칭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이 곳 일대가 나무가 많고 숲이 우거졌을 뿐만 아니라 으슥한 곳이라 과거를 보러가는 과객이나 보부상(褓負商), 행인(行人)등이 한양을 가자면 반드시 이 고개를 거쳐야 했는데, 그때마다 으례 산적과 강도의 습격을 받아 빈털터리가 되곤 했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지금의 연현마을이 형성되기 이전에는 이곳이 농경지여서 참외, 수박 등 청과물을 이들 산적과 강도가 떼를 지어 서리를 해가는 바람에 농민들의 원성이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시흥(금천) 현령이 골머리를 앓곤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부터 산적과 강도가 참외, 수박등을 서리해 가는 곳이라 하여「서리재고개」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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