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1960년대 초 유유 안양공장(현 김중업박물관)

안양똑딱이 2016. 6. 3. 16:39

 

#기록 #기억 #안양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유유 #김중업 #옛사진/ (사진출처 및 촬영자 미상) 아주 오래된 흑백사진 한장이 시공을 넘어 과거속으로 시간여행을 하게 한다.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초입에 있던 유유 안양공장(현 김중업박물관)의 초창기 모습으로 통일신라 '중초사(中初寺)'이래 고려 '안양사'로 이어져 조선까지 불맥을 이어간 사찰지위에 한국 건축계의 거장 고 김중업씨가 설계한 제약공장 건물들이다. 공장동 뒷쪽으로 개인주택들이 있고 사무동 뒷편에는 공장 신축 당시에는 없던 가건물이 들어선 것으로 보아 196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유유 안양공장 터는 중초사(통일신라), 안양사(고려)가 자리했던 절터로 유유 창립자인 유득한 씨가 1941년 매입해 6.25전쟁 이후인 1959년 5월 안양공장을 건립한 후 2007년 제천으로 이전하기 까지 원기소 등 의약품을 생산해 오던 곳이다.
㈜유유 안양공장에 자리한 사무동과 공장동 건물은 한국의 손꼽히는 건축가 김중업(金重業,1922∼1988)의 초기작품이자 50년대를 대표하는 산업건축물로 어려운 시대에 공장에 예술을 가미해 건축했다는 것은 높은 안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평가다.
특히 사무동 지붕은 역보로 되어 있고 생산동은 캔트리버로 형성 삼성천의 시야를 확보하고자 하는 디자인 요소가 가미된 건축학적으로 의미있는 건물이며 공장입구에 자리한 2층 원형으로 된 수위실 역시 톡특한 형태로 문화유산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평이다.
또한 공장동 2층 양측코너에는 모자상 파이오니아 조각상이 각각 배치되어 있는데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는 조각가 박종배씨의 작품으로 대문장식, 철창 등이 쌍Y자를 모티브로 한 일관된 장식으로 현재 당시의 모습과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안양시가 유유 공장을 매입한 후 매장문화제 발굴과정에서 그동안 문헌으로만 존재해 왔던 안양사 명문기와가 출토되고 고려태조 왕건이 세운 7층 전탑의 실체가 드러나 통일신라 중초사 절터 위에 고려시대 안양사가 다시 세워지는 등 대규모 가람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현재 이곳은 리모델링을 거쳐 2014년 3월28일 김중업박물관으로 개관했으며 김중업관을 비롯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커뮤니티관,안양역사관, 이벤트홀, 공연실, 문화지킴소 등이 있다.
김중업박물관은 대지 1만6243㎡, 연면적 4천596㎡, 6개 동의 규모로 지난 2007년과 2011년 두차례로 진행된 안양시의 유유부지 문화공간 조성계획 수립 용역과 2년여 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옛 건물들을 문화적으로 재생하여 문화예술공간으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김중업박물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양시가 공장 부지를 매입한 이후 복합문화공간 활용에 따른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09년 실시한 중초사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이곳이 안양시의 지명 유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안양사(安養寺) 절터임이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이곳에는 신라시대 유물로 유일하게 명문이 있는 중초사지당간지주(보물4호)가 자리하고 있어 그동안 통일신라시대 중초사지 터로만 알려졌으나 2009년 부지내 사굴과정에서 900년경 태조 왕건이 창건한 안양사의 흔적인 安養寺銘文瓦(안양사명문와편)이 출토되고, 역사속 기록으로만 있던 칠층전탑의 흔적까지 발굴됨으로 안양사의 실체가 드러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발굴된 거대한 절터의 현장이 그대로 다시 흙으로 덮였다는 사실이다. 복합문화공간 활용 논의 과정에서 역사 교육의 일환으로 칠층전탑을 볼 수 있도록 유리로 덮는 방안이 거론됐으나 보존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무산됐다. 더욱이 어린이와 청소년 및 시민들이 역사의 현장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전혀 고려되지 않아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