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衿川)은 금주(衿州), 금양(衿陽)으로 통하던 향토의 옛 지명으로 가장 오래 불리던 이름이다.
문헌에 나타난 것을 보면 지명의 첫 이름은 고구려때에 잉벌노현(孕伐奴縣)이라 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경덕왕(757)때 진율군(津栗郡)이라 개칭하여 오다가 고려 태조(왕건)시기 934년부터 금천현(금주, 금양)이라 불렀다.
조선왕조 22대 정조대왕(1795)이 만안교(萬安橋)를 축조한 뒤 이 지역을 시흥(始興)이라 부르도록 하였으나, 기록상으로는 1914년 안산 및 과천과 군(郡)을 통합하면서 시흥군(始興郡)으로 명명된 것이다.
안양(安養)이란 지명은 여지도서(영조35, 1759)에 금주현(衿州縣) 현내면(縣內面) 안양리(安養里)로도 나타난다. 3군(三郡) 통합이후 시흥군 서이면 안양리를 합쳤으며 1941년 서이면이 안양면으로 바뀌었고 1949년 8월 14일 안양읍으로 승격하였다가 1973년 7월 1일 안양시가 된 것이다.
‘안양(安養)’이란 말의 원의(原意)는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일컬음이다. 극락세계에 들어가는 문을 ‘안양문(安養門)’이라고 한다.
안양시 석수동 안양유원지(현,안양예술공원) 뒤쪽에 고려 태조 왕건의 명을 받들어 창건된 ‘안양사(安養寺)’가 있었다. 애초에 지명에 안양리(安養里)를 쓰게 된 것이 거기에서 유래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향토 안양의 지명은 전국에서도 으뜸이라고들 한다. 그대로 ‘극락정토’이어야하고 훈훈한 인정이 넘치는 살기 좋은 도시로 가꾸어 편안하게 후손들을 길러가는 도시이어야 한다.
이 지역에 사는 모든 주민들이 내가 사는 곳의 지명의 변천사와 유래를 소상히 알고 살아가며 후손에게 알려주는 일도 의미 깊은 일이 아닐까 싶다. 내가살고 있는 이 고장에 조금은 더 사랑과 정성이 차오르지 않을까?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훌륭한 이름의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향토의 이름값은 하고 살자는 긍지를 가져보자. 안양을 살기 좋은 극락정토로 가꿀 수 있도록 다 같이 화합하고 응집하자. 안양의 옛 이름 금천성(衿川聲)이 울려 퍼져 그러한 사명을 다하고자 갈력할 것이다.
출처: 서성이는 앙금(1991. 03.15발간, 명지출판사, 저자 김정대)
김정대 소개
靑土 金正大(안양문화원 고문)
1938년생. 안양원로
안양9동 병목안 출신
안양초등학교졸업
중앙대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사)안양문화원장 15년 엮임
사)한국문화원연합회 경기도지부장 엮임
국사편찬위원회 사료근사 위원 엮임
자연환경신문사 주필 엮임
(주)안양광역신문 논설위원
안양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엮임
안양문화원 상임고문
(사)한국전통민족종교총연합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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