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양명고 앞에 놓여있던 안양천 나무다리(1981년. 김귀연씨 제공)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검정 교복과 교련복을 입고 다리를 건너는 이 사진은 2009년 11월 안양2동주민센터에서 발간한 사진으로 보는 안양의 재발견 사진첩에 실린 사진중 하나입니다.
지금은 안양천 곳곳에 튼튼한 세월교와 커다란 돌을 놓은 징검다리가 있어 하천을 건너기가 편리하지만 예전에는 수량이 많아 6-70년대에는 드럼통으로 만든 줄배를 타고 건너거나 80년에는 사진처럼 나무로 만든 다리를 건너 다녔지요.
안양천은 60-70년대 초만 해도 은모래가 깔려있고, 어항을 놓아 물고기도 잡고, 멱도 감을 정도로 정감어린 곳이었지요.
그러나 70년대 중반들어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인구집중, 공장 폐수, 생활하수가 뒤덮으면서 서서히 오염되기 시작해 8-90년대에는 악취가 코를 찌르며 물고기가 살수 없던 죽음의 하천으로 변했답니다.
안양시 자료를 보면 1992년 안양천의 BOD(생화학적 산소요구량) 농도는 66.7ppm으로 양재천 16ppm, 중랑천 14.3ppm, 탄천 3.9ppm 등에 비교할 수조차 없었는데, 2001년부터 시작한 안양천살리기 사업이 결실을 맺으며 2012년 측정한 안양천의 수질은 BOD는 3.9㎎/1으로 2급수를 유지하고 있지요.
따라서 안양의 가장 큰 변화는 되살아난 안양천이 아닐까 싶네요. 철새와 버들치, 참게가 다시 돌아오고 기피했던 천변 아파트가 살기좋은 곳이 됐으니까요.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검정 교복과 교련복을 입고 다리를 건너는 이 사진은 2009년 11월 안양2동주민센터에서 발간한 사진으로 보는 안양의 재발견 사진첩에 실린 사진중 하나입니다.
지금은 안양천 곳곳에 튼튼한 세월교와 커다란 돌을 놓은 징검다리가 있어 하천을 건너기가 편리하지만 예전에는 수량이 많아 6-70년대에는 드럼통으로 만든 줄배를 타고 건너거나 80년에는 사진처럼 나무로 만든 다리를 건너 다녔지요.
안양천은 60-70년대 초만 해도 은모래가 깔려있고, 어항을 놓아 물고기도 잡고, 멱도 감을 정도로 정감어린 곳이었지요.
그러나 70년대 중반들어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인구집중, 공장 폐수, 생활하수가 뒤덮으면서 서서히 오염되기 시작해 8-90년대에는 악취가 코를 찌르며 물고기가 살수 없던 죽음의 하천으로 변했답니다.
안양시 자료를 보면 1992년 안양천의 BOD(생화학적 산소요구량) 농도는 66.7ppm으로 양재천 16ppm, 중랑천 14.3ppm, 탄천 3.9ppm 등에 비교할 수조차 없었는데, 2001년부터 시작한 안양천살리기 사업이 결실을 맺으며 2012년 측정한 안양천의 수질은 BOD는 3.9㎎/1으로 2급수를 유지하고 있지요.
따라서 안양의 가장 큰 변화는 되살아난 안양천이 아닐까 싶네요. 철새와 버들치, 참게가 다시 돌아오고 기피했던 천변 아파트가 살기좋은 곳이 됐으니까요.
— 안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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