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1970년대 안양읍내(우체국 사거리) 풍경

안양똑딱이 2016. 5. 10. 15:39

 

 

안양시 만안구 안양5동 서안양우체국(과거 안양우체국) 사거리에서 안양천을 건너 이마트가 있는 동안구 비산동으로 넘어가는 관악대로의 1970년대 모습입니다. 
우측으로 보이는 하얀 건물은 안양초등학교이고요. 그 아래 주택들이 있는 자리에는 현재 중화당한방병원이 들어섰고, 좌측으로는 현재 남부시장이지요. 당시에는 경부선 철길을 넘아가는 고가도로가 놓여지기 전으로 도로는 비포장에 한산하기만 했지요.
이곳은 과거 교하동(안양5동)이라 불리웠는데 옛 지명인 남부동(안양1동)과 주접동(안양6동) 사이에 위치한 자그마한 동네로 사실 시민들이 알고 있는 안양5동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터넷지도로 안양5동을 검색해 보면 안양5동은 안양대학교와 근명고 주변인데 이 곳은 만안대로를 건너편에 있어 "이곳이 왜 안양5동이야" 하면서 의아해 하는 이들이 많지요.
교하동의 유래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습니다. 조선조 중엽에 이 마을에 어느 가난한 부부가 외아들과 함께 살았는데,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라 아들을 공부시킬 수 없게 되자, 그 아들이 서당 선생의 도움으로 무료로 글을 배워 노력 끝에 과거에 합격하였습니다. 이에 조정에서 그에게 높은 관직을 제수하려 했으나 끝내 사양하고, 오직 이곳 마을에 향교를 짓고 우매한 백성을 가르칠 것을 임금에게 아뢰자, 이에 감탄한 임금이 이곳에 커다란 집을 지어주고 교화당(敎化堂)으로 명명해 주었는데, 그 후부터 이 주변의 마을을 교화동(敎化洞)으로 부르다가 1927년 안양초등학교가 세워지자 학교 밑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교하동(校下洞) 으로 개칭되었다고 합니다.
옛날 교화당이 있던 자리에 바로 지금 안양국교가 들어섰으니 같은 배움의 자리라는 점을 생각하면 지명이 갖고 있는 의미가 우연을 넘어서는 것이지요.
이 마을은 구 한말까지만 해도 소나무가 무성했는데 일제강점 후 왜병의 군사훈련장으로 되었다가 1927년에 안양초등학교가 설립되자, 학교주변에 민가가 점차 늘기 시작했으며 안양 만안구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위 동네로 예전에는 부잣동네이기도 했습니다. 과거 골목골목에는 감나무와 은행나무가 심어진 한옥과 양옥집이 쭈욱 있었는데 지금은 단 1채의 한옥건물만 남아 있을뿐 다세대, 다가구, 원룸 주택들로 바뀌었습니다. 
일제시대 때만해도 안양에는 초등학교가 없어 그 당시 학생들은 군포보통학교나 과천, 안산까지 등교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안양산업사 엄기승 사장과 당시 초대 서이면장인 조한구 씨가 학교 건립에 나서 안양유지들과 두팔을 걷어 부치고 기성회를 조직하는 등 성금모금 활동을 나섰지요.
그러나 건립에 필요한 자금이 제대로 모이지 않자 동아일보에서 이런 사정을 알고 전국에 대대적인 홍보를 해주었는데 당시 일본인들은 방해 공작을 펼치기도 했다네요. 하지만 당시에도 교육열이 높았던 많은 국민들이 성금 모금에 동참해 모금운동은 성공리에 이루어져 1927년 12월 20일 안양공립보통학교(현 안양초교)가 개교하지요.
이 학교는 처음엔 4년제로 유지되다가 후에 6년제로 바뀌면서 안양교육 발전과 안양축구의 신실이 되었지요. 개교 당시에는 학교 정문이 만안로 변에 있었으나 현재에는 서쪽에 정문이 자리하고 있고, 옛 건물들은 모두 사라지고 인조잔디운동장에 새로 지은 건물들이 들어서 오래된 학교의 느낌은 당초 운동장앞에 있다가 현 교문 앞쪽으로 옮겨진 화랑상(1876년 세움) 등 동상의 모습에서나마 느낄 수 있지요. 안양초교 운동장 지하에는 민방위교육장이 숨겨져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