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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조성원]어머니 품 같은 수리산의 추억

안양똑딱이 2017. 3. 17. 03:33

[ 조성원]어머니 품 같은 수리산의 추억
(수리산을 아시는가)

수리산은 안양중심부에 위치한 음기가 서려있다는 자그마한 육산이다. 대표적인 봉으로는 산본 신시가지에 서있는 슬기봉(475m), 안양시내 서쪽 중앙에 위치한 관모봉(426m), 그 뒷 편에 서서 넌지시 주봉임을 알리는 태을봉(488m)으로 이루어졌다. 인구 2만의 그 시절의 읍내로부터 인구 50만이 넘는 지금까지 수리산은 그들을 모두 보듬은 안양의 어머니다.
수리산을 오르는 데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같은 집에 태어났어도 서로의 삶이 다르듯 수리산은 마치 이복동생을 데리고 있는 양 가는 갈래에 따라 닮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느낌을 제각기 전해주며 비교적 넓게 퍼져있다. 수리산 남쪽의 산본리 버스종점 인접한 한양아파트에서 약수터를 지나 오르면 슬기봉에 바로 닿는다.
봉 한편은 군인들이 지키는 곳이라 예나 지금이나 접근이 안 되는 철통방위의 곳이다. 산본 신도시를 낀 그곳은 월급쟁이 많은 동네답게 모든 게 질서정연하며 규격화되어있다. 약수터 ,벤치, 쉼터, 길옆에 쌓은 돌무더기까지. 삶의 선상으로 찾아온 손님 같은 현대인들이 곳에 잔뜩 모여 있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래서 삶의 이유가 가지런할 것도 같고 힘 잃은 관절이 똑같이 쑤실 것도 같다.
저녁엔 그 시각 어김없이 가로등 불이 켜진다. 불빛이 석연치 아니하다면 규격의 명분으로 발을 동동 구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 약수터에 물통 들고 5분만 서있으면 정해진 삶의 근저로서 소시민의 슬픔을 자연 느끼게도 된다. 거기서 계곡을 따라 북쪽으로 내려가면 사람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의외라 할 작은 천연림이 펼쳐진다.
바위틈에 낀 이끼하며 묵은 나뭇잎이 태초의 느낌으로 작은 물소리와 어울려 떡갈나무 아래서 조용히 잠을 잔다. 건너편에는 해 질녘 노을을 품에 안는 수암봉이 있다. 서편의 채색이 고운 날 그로 떠올려지는 천연의 첫사랑이다. 그 시절의 옥이는 어디쯤 있을까. 붉은 볼이 예뻤던 옥이는 노을 마냥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한사코 바라보기만을 바랬다.
안양 시내 쪽으로 좀 더 다가서서 산본중학교 근처에서 오르면 작은 샘터가 있고 바로 태을봉 주능선을 타게 된다. 그 산길은 수리산에서 제일 긴 능선으로 제대로 오르려면 그곳을 택하는 것이 맞다. 곳은 참나무와 소나무로 꽉 채워져 있어 산 오른 지 수분도 안 되어 자연 속에 빨려들고 만다. 제 할 일만 하는 속수무책인 성실한 인생살이가 꾸역꾸역 떠오르는 산행의 정석 코스가 바로 이곳이다.
하지만 여러 길 중에 제일 많이 오르는 길은 현충탑코스다. 6 25 격전의 곳이 안양이기 때문 세워진 탑은 어릴 적부터 줄곧 안양 시내를 한 눈에 보며 동네를 지킨다. 그 시절 수리산은 여우가 많았다. 하얀 눈 나리는 날 허기진 울음을 토하다 지친 수리산 여우가 소골안을 지나 크게 뚫린 신작로를 건너 동구 밖을 맴돌 그 무렵은 어김없는 섣달그믐이었다. 개들은 컹컹대고 닭장의 닭들은 호들갑을 떨었으며 이에 주인은 몽둥이를 조심스레 들었다. 바로 여우가 살던 그쯤 어디이다.
현충탑을 지나 길을 틀어 남으로 가면 바로 그윽한 솔 향내를 느끼며 하얀 바위 절리와 오밀조밀하게 생긴 바위가 겹겹이 포개진 작은 절벽을 지나 관모봉에 오르게 된다. 관모봉의 초가을 절벽 새로 번지는 수수함이란 이내 시들고 말 적상산이 부러워 할 지경이고 한여름은 산속 깊숙이 찾아든 뻐꾸기가 쉴 틈 없이 수천 번을 울어서야 비로소 마주하는 수암골에 저녁놀이 지는 그곳이 바로 수리산이다.
김홍도의 여인마냥 자그마한 체구에 아기자기한 볼거리를 곳곳에 숨겨두고 있어 속속들이 알기엔 지는 해가 마냥 아쉬운 그래서 너무도 감칠맛 나는 수리산은 예나 다름없이 안양의 어머니로서 그 모두를 품에 안고 있다. 나는 한때 밤새 아버지 병수발을 하다 새벽을 틈 타 수리산을 오르곤 했는데 이제는 서성이는 겨울 곁에서 그 시절의 여우가 그리 바라보았을 허기진 산길을 꿈길에서 겨우 보았을 뿐 이제는 수수께끼 같은 동화이다. 

조성원의 수필 '나 어릴적' 초고에서 발췌. 이 글을 쓴 조성원(어릴적 이름 조형곤)씨는 1957년 안양에서 태어난 안양초교 38회, 안양중학교 23회 졸업생으로, 저하고 동창으로 오랜 기간 대덕 모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지요. 블랙죠라는 이름을 글을 쓰다가 수필가로 등단해 현재는 한국수필가협회와 수필문학가협회에서 이사직으로 적극적인 문단 활동을 해오며 제2회 문학저널 창작문학상과 수필문학사가 주관한 제1회 소운문학상을 수상도 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수필집인 ‘빈 가슴에 머무는 바람 1&2’이외에도 ‘송사리 떼의 다른 느낌’, ‘작게 사는 행복이지만’, '‘오후 다섯 시 반’ 등 7권의 수필집을 내놓었으며 ‘2천 년 로마 이야기’와 ‘스페인 이야기’ 등 여행 에세이집도 발표했습니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