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기억

[기억-정진원]장터(장대 場垈)

안양똑딱이 2017. 1. 29. 07:22

장(場)이 서던 곳이 장터이다. 대개는 오일장, 닷새에 한 번씩 장이 서는 정기시였다. 물건(상품)의 수요공급의 균형을 시간 차로 조절하던 전통시장 시스템이다. 그래서 정기시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장돌림(장돌뱅이)이 있게 마련이었다. 전국 어디에나 그런 장터가 있었다. 이른바 전통시장으로 명맥을 지키고 있는 곳도 있지만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대개는 대규모 상업지역, 상가로 변화되면서 퇴색되어 버렸다. 안양에도 안양장이 열렸었다. 비산동에서 임곡교를 건너면 바로 오른쪽으로 소시장, 왼쪽으로 태평방직공장이 있었고, 그곳에서 철도 길까지 좌우로 안양(시)장이 있었다. 새 시장이 만들어지면서 그곳이 구시장이 되더니, 지금은 장터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장터에 얽힌 이야기는 다 말할 수 없이 많다. 독립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던 아우내 장터, 메밀꽃 필 무렵의 봉평장(터) 등이 그런 곳들이다. 대전시 사정동, 효동, 충주시 연수동에 장터골(장대 場垈), 충주시 엄정동, 청원군 가덕면, 제천군 금성면, 청원군 미원면, 오창읍, 음성군 감곡면, 음성군 음성읍, 진천군 백곡면에 장터(장대 場垈), 단양군 매포읍, 영동군 상촌면에 장터(시장 市場), 단양군 영춘면에 장터거리, 단양군 적성면에 고려 말 장이 섰던 곳이라는 장뽈, 보은군 내북면, 산외면에 장터, 보은군 마로면에 장판골, 청원군 강내면에 미호장터, 청원군 부용면에 장터(부촌 富村), 진천군 덕산면에 장터(장기 場基), 충주시 신니면에 나무꾼들이 장치기하던 곳 장테(장대동 場垈洞) 등 마을이름이 있다.

정진원, 문학박사, 의왕시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