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이병택]안양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제언

안양똑딱이 2016. 5. 9. 15:30
[이병택]안양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제언

[01/01/10 전 안양경실련 초대집행위원장]


 

이전 홈페이지 자료를 정리하다 작고하신 이병택 님의 글을 발견했습니다. 안양경실련 초대 집행위원장을 역임하시기도 한 이 선생님의 글을 이곳에 올리며 삼가 고인 명복을 빕니다.

안양의 생김새, 문화공간의 미학

- 안양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제언 -
이병택 (안양·의왕경실련 공동대표·안양문화원장 역임)

지난 6월 9일 안양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정립하고 체계화하며 더 나아가 안양시의 바람직 한 미래상을 정립하는데 목적을 둔 성결대학교 안양학 연구소가 개설되었다. 이를 계기로 안양의 정체성(identity)을 언제, 어디서부터 찾고 또 무엇을 확립할 것인가 하는 것이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안양의 생김새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제시할 수 있는 공간적 이해방식에 대한 깊은 물음이기도 하다.

이렇게 안양이라고 하는 한 도시의 정체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도시를 어떤 모습으로 그 려내고 발전시킬 것인가, 즉 바람직한 도시의 성격을 만들어 내는데 그 도시의 정체성과 생 김새를 외면하고서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도시의 정체성은 그 도시의 역사와 문화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문화공간에 대한 미학에 대한 접근이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안양의 역사와 문화 를 외면하거나 그 역사와 문화를 어느 것 하나만을 단편적으로 떼어서 생각 할 때에는 당연 히 왜곡되거나 침소봉대(針小棒大)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안양학 연구소의 취지는 1905년 안양역사(安養驛舍)가 개설된 시기를 기점으로 2005년에 근대안양 100년을 맞이하는 것을 계기로 지역학으로서 안양학 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에 안양학 연구소는 근대화에 초점을 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 이날의 기조연설, 발표 논문 등에서 언급한 것을 보았을 때 「2005년, 안양 100년 대축제」 를 맞이하자는 밑그림이 안양시 당국의 의도나 연구소 운영과 활동 준비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과연 안양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것으로 이러한 촛점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것 이다. 결론적으로 여기에는 안양의 정체성이 크게 왜곡되고 훼손되므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 질 수 밖에 없다.

안양역(安養驛)의 역사(驛舍)는 우리 나라 역사에 치욕적인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1905 년, 일본인에 의해 부설된 경부선 철도의 산물이다. 이러한 안양역사 개설을 안양의 출발점 으로 볼 수 있으며 「2005년, 안양100년 대축제」의 기원으로 보아도 좋을 것인가. 십분 양 보해서 「2005년, 안양근대화 100년 대축제」라고 하는데도 문제가 있다. 그것은 우리 나라 에 있어서 근대화의 개념과 기준시기에 대한 문제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17세기 계몽사상으로부터 근대화를 이야기하고 일반적으로 우리 나라에 있어서는 근대화의 붕아(崩芽)는 임란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과 호란(병재호란 및 정묘호란) 이후, 싹트기 시작했고 영조와 정조 에 이르러 크게 일어난 실학사상으로 부터 찾고 있으며 이후 동학난을 거쳐 구한말 고종때 의 갑오경장이 근대화를 촉진시킨 사건으로 이야기한다.

물론 경부선 철도 개통에 따른 안양역의 개설은 안양발전의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것은 안양역의 개설이후 인구가 늘고 행정, 경제 교육의 중심지가 되어 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교통의 발달은 그 지역발전에 중요한 의미를 던져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교통의 발달만으로 보았을 때에도 안양역사 이전에 안양발전의 효시가 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조선조 정조대왕때에 놓여진 정조대왕의 효심과 임금에 대한 충성심에 의해 놓여진 만안교의 부설인 것이다.

만안교가 부설되기전 까지는 춘향전에서 나오는 노정처럼, 한양으로 가는 국도를 수원을 기점으로 하여 보면 지지대 고개를 거쳐 호계동, 인덕원, 과천, 남태령 고개를 넘어 노량진 나루터를 건너 한양에 도달하게 된다. 이 노정이, 정조대왕의 부친인 사도세자가 뒤주속에 갇혀 죽을 때에 사부이던 영의정 김상노에게 구해달라는 애원의 눈초리를 보낼 때 "아버님 말라야죠" 하는 사부 김상노의 말을 좇아 뒤주속에 들어 갔다가 끝내는 목숨을 잃게 된바 바로 이러한 김상노의 형인 김약노의 묘소가 부친의 묘소가 있는 수원 화산능으로 가는 정 조대왕 능행차길중 과천을 지나면서 관악산 쪽에 놓여 있어 이를 몹시 불편하게 생각한 정 조대왕의 마음을 헤아려 수원 지지대 고개에서 호계동을 거쳐 안양 만안교를 지나 시흥과 신림동을 거쳐 노량진 나루터로 가는 새로운 노정이 마련되고 이후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들 이 이 노정을 거쳐 지나면서 점차로 과천은 한적한 촌락으로 변모하고 안양이 발전되어 갔 던 것이다.

따라서 안양발전의 첫걸음은 분명히 만안교인 것이다. 즉 근대안양의 생김새는 선조들의 역사와 같이 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만안교에는 안양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나 라 고유의 민속놀이인 답교놀이가 다리가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나 있었는데 만안 답교놀이 가 바로 그것이었다. 만안 답교놀이는 일반적으로 답교놀이에서 보여주었던 농자천하지대본 (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대장기만 있었던 것과는 달리 안양답교놀이에서는 천자문에 나오는 효당갈력충즉진명(孝當竭力忠則盡命)이라는 대장기가 또 하나 있어 부모에 대한 효도와 나 라(임금)에 대한 충성이 강조되고 이곳에 사는 후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보는 것처럼 안양은 충효의 고장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밝혀 둘 것은 공동체의 식의 발현인 이러한 만안 답교놀이는 일제에 의해 중단되었다.

이제 안양지명의 역사성을 보자. 우리는 안양지명의 유래에서도 안양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안양이라는 지명이 역사적으로 고려태조 왕건이 서기 900년 당시 궁예의 휘하에 있을 때 금주(시흥), 과주(과천)등의 지역을 정벌하기 위해서 삼성산(안양시 석수1 동 산 27)을 지나다가 능정(能正)이란 늙은 스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을 때 그의 뜻과 왕 건의 뜻이 일치한바 이를 기리고자 안양사(安養寺)를 창건하게 되었고 이후 역사에서 안양 이라는 지명이 나타나게 됨으로서 바로 이 안양사가 안양지명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러면 안양(安養)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바로 불교에서 나오는 용어로 안양문(安養門) 하면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이고 안양세계(安養世界)라 하면 곧 극락세계를 의미함으로써 안양은 곧 살기좋은 곳, 현세의 극락세계인 것이다.

여기에 바로 안양을 살기좋은 곳, 삶의 질이 최상인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교훈이 서려있 는 것이다. 또한 현대적 의미의 안양을 보자.

첫째, 말 그대로 편한 안(安), 기를 양(養)으로 후세를 편하게 잘 양육하라는 교육적 의미 가 담겨있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교육과 문화의 도시로 안양이 자리매김 해야할 이유가 있 는 것이며 안양사가 있던 삼성산 기슭인 안양 석산에 경기교육의 산실인 경기도 교육대학이 들어서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둘째, 해방이후 안양은 경인공업도시의 한 축으로 공업이 활발히 일어났던 곳으로 그 이유 는 서울이 가깝고 또한 질좋고 풍부한 물에 있었다. 따라서 국내 유수(有數)의 방직공장과 제지공장이 많이 들어섰던 곳이었다. 이제 우리안양은 첨단산업도시를 지향함으로써 환경을 염두에 둔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고 옛 경인공업도시의 명성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앞에서 안양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안양의 역사를 더듬어 안양의 생김새에 대한 이해를 돕 고자 하였다. 근대안양의 생김새는 선조들의 역사적 과정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이러한 역사적 과정 들이 안양의 공간적·문화적 미학과 토착적 문화를 형성시켜왔던 것이다.

그러나, 안양의 생김새는 지역을 규정하는 다양한 방법론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한다. 가령, 지방적으로 보는 지역단위로는 수도권 경기 남서부 지역, 국가적으로 보는 지역단위 로는 한강권역지역, 국제적으로 보는 지역단위로는 주변부적 동남아 지역으로 설명할 수 있 다. 또한 지역적 의미로는 대도시권지역으로 구분하기도하며, 공간적 기능으로는 등질지역, 기능·극화·결절지역 등으로 구분하기도 하며 국토계획에 의한 대권, 중권, 소권 으로 구 분하여 안양의 생김새를 설명해 왔다. 이러한 방식에 근거한 공간적 이해는 전통적 공간구 조 이론과 결합된 인문지리적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에서는 공간의 미학, 특히 문화공간으로서의 미학은 전혀 찾아볼 수 가 없다. 즉, 안양이라는 공간은 역사적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행위가 어제와 오늘을 제시 하고 있는 것이며, 그 안에는 도시성을 제시하고 공간의 의미를 구체화시킬 수 있는 문화적 미학들이 숨어 있다. 또한 문화공간은 단편적인 문화 현상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으로 떠 오 를 수 있다. 안양1번가, 평촌1번가, 대농단지, 평촌먹거리촌 등이 근대 공간의 미학적 수단 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그 안에는 안양의 역사적 과정에 대한 공간적 이해가 그 무엇보다 도 중요하며 그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문화공간의 미학적 요소는 새롭게 제시되어야 한다

2003-06-13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