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안양의 사랑의선교수녀원을 방문한 마더데레사 수녀. #안양 #마더데레사 #사랑의선교수녀원 #안양2동/ 빈자의 성녀’로 불리는 테레사 수녀(‘마더 테레사’·1910∼1997)가 성인을 추대돼 4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례로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서 시성식을 갖는다. 가톨릭 교회가 공식 인정하는 ‘성녀(聖女)’가 되는 것이다.
사진속에서는 1985년 1월 26일 한국을 세번째(1981.5.3/ 1982.4.28) 방문한 마더데레사 수녀가 안양에 둥지를 틀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데레사 수녀가 창립한 사랑의 선교수녀회 안양분원을 찾은 모습이 담겨있다. 사진출처: 안양2동주민자치센터
가톨릭신문 기록을 보면 사랑의 선교수녀회는 1981년 처음 서울대교구로 들어와 용산의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휴양의 집에 임시로 머물렀다.
1983년, 거처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수녀들은 당시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를 찾아가 수원교구로 들어가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김 주교의 승낙을 받았다.
그때 안양 석수동본당에서 사놓은 땅이 하나 있었는데, 수녀들은 그 땅을 자신들이 쓰고 싶다고 교구에 청원했다. 결국 본당에서 그 땅을 싼값에 수녀회에 넘겨줘 한국의 첫 둥지를 안양에 틀었다.
안양에서의 활동이 자리를 잡아갈 무렵, 도시계획에 의해 집 앞에 도로가 생기게 되면서 또다시 이사를 해야 했다. 교구는 이번에는 안산에 있는 교구 땅을 무상으로 지원해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성인품에 오른 마더 데레사 수녀
1997년 87세로 인도에서 선종한 마더 테레사 수녀는 선종 6년 만인 2003년 10월 1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으며 2016년 3월 교황청 시성위원회는 테레사 수녀를 성인으로 추대했다. 사후 20년이 안 된 상태에서 성인품에 오르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교황청은 그 사유로 2가지 기적을 내세웠다. 하나는 2002년 테레사 수녀 타계 1주년 기도회에 참석한 30대 인도 여성의 종양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2008년 다발성 뇌종양으로 시한부를 선고받은 한 브라질 남성이 테레사 수녀에게 기도한 뒤 완치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례로 거행되는 시성식은 바티칸중앙텔레비전을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된다. 교황청 산하 바티칸 라디오는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 6개국어 이외에 테레사 수녀의 모국어인 알바니아어로도 시성식을 중계한다.
한국에서는 동시간대인 9월4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수원교구 용호성당에서 시성축하미사가 봉헌된다.
이날 미사는 파리외방전교회와 사랑의선교회에서 공동 주최·주관하고 천주교 수원교구 안양대리구에서 후원하고 안양대리구 청년연합회에서 연합성가대와 전례를 맡는다. 이 미사에서는 마더 데레사 생애 영상 시청과 성시간, 마더 데레사의 유해 친구식 예절도 함께 진행된다. 수원교구 용호성당의 위치는 군포시 군포2동 금당터널 지하차도 사거리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마더데레사 수녀가 1950년 세운 사랑의 선교회는 현재 130여 개국에서 빈민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국내에서는 1977년 남자 수도회인 ‘사랑의 선교 수사회’, 1981년 여자 수도회인 ‘사랑의 선교 수녀회’가 각각 설립돼 노숙인을 위한 봉사활동 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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