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규]‘安養’ 찾기 청원서
[2008/02/01]안양시민신문 회장.시인
[2008/02/01]안양시민신문 회장.시인
‘安養’ 찾기 청원서
지난 1월24일 자로 안양시의회에 이색적인 청원서 하나가 제출됐다.
요지는 안양사칠층전탑지(安養寺七層塼塔址)와 중초사지(中初寺址)가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212번지의 구 (주)유유산업 부지 일대의 동일 장소일 것으로 추정되니,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매장 유물들을 발굴하여 ‘安養’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安養寺’터를 확인해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청원의 주인공은 중세 만주어 연구를 통해 한반도 지명의 현재 위치를 규명하는 ‘역사 제터잡이’ 연구가 정덕한(鄭德漢)씨.
정덕한씨는 제출한 ‘청원이유서’에서 1960년 당시 시흥군 청년학생단체 협의회장 자격으로 유유산업(주) 안양공장 신축 허가와 관련하여, 삼층석탑을 해체하면서 착공한 유유산업의 신축허가 취소와 원상복구 요청을 하였던 바, 관계자들로부터 삼층석탑의 복원과 발굴되는 역사 유물들의 보관 이행각서를 받았음을 상기시키면서, 옛노인들의 “탑비(塔碑)가 땅 속에 묻혀 있다”는 주장이나, 고고학계의 “유유산업 부지에 安養이라는 지명의 원천이 되는 안양사칠층전탑이 자리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 그리고 회사 측에서 보관 중인 중초사지 출토물 중에는 칠층전탑의 탑전(塔塼)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들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매장 유물들의 발굴을 시도해서 이들을 확인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유유산업 이전 부지는 안양시가 지난 해 6월에 240억(3년 분할)에 매입하여, 그 활용방안에 대해서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한 상태인데, 그 위치가 안양예술공원 초입이라는 점, 특히 공장건물이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김중업의 근대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이를 기리는 박물관으로의 리모델링이 우선순위로 예상되고 있다.
정덕한씨의 청원에는 전래되어 오는 왕건과 능정스님과의 설화적인 차원을 넘어 고려사(高麗史)·조선왕조실록·한국중세사·한국의 전탑연구·조선의 전탑에 대하여·안양사탑 중신기 등의 역사기록과 연구서적에서 관계내용들을 발췌한 고증적 자료가 충실히 소개돼 있어, 청원의 타당성과 청원인의 학문적인 연구성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
그에 따라 안양사가 왕건의 고려 건국에서부터 최영의 마지막 화원전투에 이르기까지 승군(僧軍)의 요처였던 점, 이들이 거란군 침공 때 ‘관악산 초적(草賊)’의 신분으로 고려왕권을 수호하는 유력한 군사조직이었다는 점, 고종 때 최충헌 무신정권에 의해 파괴된 안양사가 최영에 의해 다시 제모습을 갖추게 된 점, 정인지가 안양사의 재건을 철저히 금지시킬 것을 상소한 점, 능정이 최초에 건립한 ‘安陽寺’가 ‘安養寺’로 개칭된 점, 왕건이 세운 칠층탑에 김부식의 비문(碑文)은 유실되고 이숭인의 중수기(重修記) 원문은 남아 있다는 점, 그 중수기에 왕건과 능정의 안양사 건립 배경이 소개된다는 점 등을 알 수 있다.
더욱이나 청원서에는 ‘건물은 건드리지 않고 대지에 대해서만 발굴을 해보면 규명할 수 있는, 자기 고장의 역사적 참모습 찾기를 외면하고 서둘러 현대건축의 요람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그렇게 시급한 일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대목이 있다.
근 30쪽에 이르는 청원서를 읽는 동안, 나의 뇌리를 사로 잡은 것은 안양사람으로 이 문제를 소홀히 해 왔다는 사실에 대한 자책감이었다.
安養이라는 지명 자체가 문화재이고, 그 역사적 사실성을 규명할 수 있는 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왔는데도 이를 등한시했다는 것은 애향심에 있어 일종의 직무유기가 아니었던가.
나는 인근 주민들의 재산권 문제도 중요하고, 김중업기념 박물관 건립이나 이에 따른 국고지원 문제도 현실적으로 중요하지만, 매장 문화재 발굴을 통한 安養寺터의 확인은 더 소중한 역사적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청원인이 ‘청원이유서’의 말미에서 ‘다른 소견을 가진 분들이 계시다면, 필요에 따라 공개토론 또는 청문회를 통하여 중초사지 매장유물 발굴의 정당성에 대하여 성실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음을 아울러 밝히는 바입니다’라는 제안이 우선 수용되기를 희망한다. 아무래도 시의회가 이를 공식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지난 1월24일 자로 안양시의회에 이색적인 청원서 하나가 제출됐다.
요지는 안양사칠층전탑지(安養寺七層塼塔址)와 중초사지(中初寺址)가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212번지의 구 (주)유유산업 부지 일대의 동일 장소일 것으로 추정되니,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매장 유물들을 발굴하여 ‘安養’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安養寺’터를 확인해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청원의 주인공은 중세 만주어 연구를 통해 한반도 지명의 현재 위치를 규명하는 ‘역사 제터잡이’ 연구가 정덕한(鄭德漢)씨.
정덕한씨는 제출한 ‘청원이유서’에서 1960년 당시 시흥군 청년학생단체 협의회장 자격으로 유유산업(주) 안양공장 신축 허가와 관련하여, 삼층석탑을 해체하면서 착공한 유유산업의 신축허가 취소와 원상복구 요청을 하였던 바, 관계자들로부터 삼층석탑의 복원과 발굴되는 역사 유물들의 보관 이행각서를 받았음을 상기시키면서, 옛노인들의 “탑비(塔碑)가 땅 속에 묻혀 있다”는 주장이나, 고고학계의 “유유산업 부지에 安養이라는 지명의 원천이 되는 안양사칠층전탑이 자리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 그리고 회사 측에서 보관 중인 중초사지 출토물 중에는 칠층전탑의 탑전(塔塼)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들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매장 유물들의 발굴을 시도해서 이들을 확인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유유산업 이전 부지는 안양시가 지난 해 6월에 240억(3년 분할)에 매입하여, 그 활용방안에 대해서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한 상태인데, 그 위치가 안양예술공원 초입이라는 점, 특히 공장건물이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김중업의 근대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이를 기리는 박물관으로의 리모델링이 우선순위로 예상되고 있다.
정덕한씨의 청원에는 전래되어 오는 왕건과 능정스님과의 설화적인 차원을 넘어 고려사(高麗史)·조선왕조실록·한국중세사·한국의 전탑연구·조선의 전탑에 대하여·안양사탑 중신기 등의 역사기록과 연구서적에서 관계내용들을 발췌한 고증적 자료가 충실히 소개돼 있어, 청원의 타당성과 청원인의 학문적인 연구성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
그에 따라 안양사가 왕건의 고려 건국에서부터 최영의 마지막 화원전투에 이르기까지 승군(僧軍)의 요처였던 점, 이들이 거란군 침공 때 ‘관악산 초적(草賊)’의 신분으로 고려왕권을 수호하는 유력한 군사조직이었다는 점, 고종 때 최충헌 무신정권에 의해 파괴된 안양사가 최영에 의해 다시 제모습을 갖추게 된 점, 정인지가 안양사의 재건을 철저히 금지시킬 것을 상소한 점, 능정이 최초에 건립한 ‘安陽寺’가 ‘安養寺’로 개칭된 점, 왕건이 세운 칠층탑에 김부식의 비문(碑文)은 유실되고 이숭인의 중수기(重修記) 원문은 남아 있다는 점, 그 중수기에 왕건과 능정의 안양사 건립 배경이 소개된다는 점 등을 알 수 있다.
더욱이나 청원서에는 ‘건물은 건드리지 않고 대지에 대해서만 발굴을 해보면 규명할 수 있는, 자기 고장의 역사적 참모습 찾기를 외면하고 서둘러 현대건축의 요람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그렇게 시급한 일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대목이 있다.
근 30쪽에 이르는 청원서를 읽는 동안, 나의 뇌리를 사로 잡은 것은 안양사람으로 이 문제를 소홀히 해 왔다는 사실에 대한 자책감이었다.
安養이라는 지명 자체가 문화재이고, 그 역사적 사실성을 규명할 수 있는 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왔는데도 이를 등한시했다는 것은 애향심에 있어 일종의 직무유기가 아니었던가.
나는 인근 주민들의 재산권 문제도 중요하고, 김중업기념 박물관 건립이나 이에 따른 국고지원 문제도 현실적으로 중요하지만, 매장 문화재 발굴을 통한 安養寺터의 확인은 더 소중한 역사적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청원인이 ‘청원이유서’의 말미에서 ‘다른 소견을 가진 분들이 계시다면, 필요에 따라 공개토론 또는 청문회를 통하여 중초사지 매장유물 발굴의 정당성에 대하여 성실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음을 아울러 밝히는 바입니다’라는 제안이 우선 수용되기를 희망한다. 아무래도 시의회가 이를 공식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2008-02-01 15: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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