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한]안양사(安養寺) 귀거래사(歸去來辭)
[2008/02/01]역사연구가
[2008/02/01]역사연구가
안양사(安養寺) 귀거래사(歸去來辭)
이번 겨울의 안양은 유난히도 새로 오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부산한 계절이 되고 있다.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안양시장의 재선거에 이어, 국회의원 총선이 다가오고 있으니 이래저래 금년에 우리는 많은 사람을 보내고, 또 새로 맞이하면서 제 나름 마다의 귀거래사를 들어야 될 것 같다.
귀거래사는 중국의 도연명(陶淵明)이 진나라 때 팽택(彭澤)이라는 고을의 령(令)으로 부임할 때, 군(郡)의 장관(長官)이 의관을 갖추고 인사를 올리라는 데에 분개하여 그날로 사직하고 귀향할 때 지은 글인데, 중국 역사상 으뜸으로 치는 명시(名詩)로 꼽히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김극기(金克己)라는 시인이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마음에 새겨두고 그의 시심(詩心)을 사모하는 많은 글을 남긴 나머지 고려 말기에 간행된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에 무려 150여 편에 달하는 그의 시가 실리기도 했다. 특히 그가 남긴 안양사를 주제로 한 시는 수준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돼 전국 50여개 누각에 적혀 있을 정도다. 지면을 고려하여 원문은 생략하고 우리말로 번역된 것만 소개한다.
안양사- 붉은 다리를 지나 감색 불궁에 이르니, 조촐한 놀이길이 다행히 부처 있는 곳과 함께 했다/ 푸른 못에는 교교하게 가을 달이 잠겼고, 붉은 잎사귀에는 쓸쓸하게 밤바람이 운다/ 불사 안에는 일찍이 사객(謝客 나그네)을 용납하지 않는데, 시냇가에서 다행히 도옹(陶翁 도연명의 시심을 가진 주지)이 맞이한다/ 서로 이끌어 웃음 띄며 돌아가기를 늦추는데, 지는 해가 서쪽에 넘어가니 고갯길이 반쯤은 붉었다/ 야윈 말을 몰아 서울로 가다가, 우연히 안양사에 들어 유숙했다/ 새벽닭이 처음으로 홰를 치는데, 데운 밥 먹고 그윽한 골짜기에서 나온다/ 조각달은 잘린 옥고리처럼 나지막하고, 성긴 별은 금 좁쌀을 흩은 듯하다. 깊은 골찌기로 난 길은 성난 뱀이 가듯 꾸불꾸불 3백 굽 이여라/ 시냇물 얼음 되니 새로 흰 것이 보태었고, 산마루에 구름 끼니 본래의 푸르름이 없어졌다/ 여윈 말은 고슴도치 털처럼 까칠하고, 파리한 아이는 거북이 등처럼 움츠린다/ 내 본래 풍진 밖의 사람으로서, 평생에 얽매임이 적었으니. 10년 동안 산림에 놀 제, 건구로서 사슴을 좇았었네/ 어쩌다가 조물(造物)의 속임을 만나 내 한가함으로 오로지 하지 못했으니, 명리(名利 명예와 잇속) 속에서 지나온 천리 길의 행역(行役)이 괴롭구나/ 나는 어느 때에나 인패(印佩)를 던지고 원적(阮籍)이 궁도(窮途 궁박한 처지)에서 울던 꼴을 면하랴.
이글에 나오는 원적(210~263년)은 이른바 중국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우두머리로서, 몸 담아있던 위나라의 세력이 기울어 사마(司馬)씨의 진나라로 넘어가는 정권변혁 상황 속에서 느끼는 선비의 고독과 시름을 담아 전작 82수의 유명한 영회시(詠懷詩)를 남겼다. 그의 시에서 인패란 차고 다니는 여러 개의 직인(職印 감투) 꾸러미 같은 뜻이지만 눈앞에 공적을 세워서 빠른 영달(榮達)을 이루려는 공명심(功名心)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우린 안양사를 시제로 한 김극기의 귀거래사가 있는지도 모른채 정신없이 살아왔다. 누구나 오를 때와 내리막 때의 귀거래사는 있기 마련이고, 더욱이 떠날 때 느끼는 아쉬움에 젖어 저마다 시인의 마음이 되기도 한다. 이젠 우리가 원적의 인패를 던지고 김극기의 시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리고 떠나는 자에게 따뜻한 미소를 담아 시 한수를 보내는 두보(杜甫)의 시심(詩心)을 배워보자.
이번 겨울의 안양은 유난히도 새로 오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부산한 계절이 되고 있다.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안양시장의 재선거에 이어, 국회의원 총선이 다가오고 있으니 이래저래 금년에 우리는 많은 사람을 보내고, 또 새로 맞이하면서 제 나름 마다의 귀거래사를 들어야 될 것 같다.
귀거래사는 중국의 도연명(陶淵明)이 진나라 때 팽택(彭澤)이라는 고을의 령(令)으로 부임할 때, 군(郡)의 장관(長官)이 의관을 갖추고 인사를 올리라는 데에 분개하여 그날로 사직하고 귀향할 때 지은 글인데, 중국 역사상 으뜸으로 치는 명시(名詩)로 꼽히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김극기(金克己)라는 시인이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마음에 새겨두고 그의 시심(詩心)을 사모하는 많은 글을 남긴 나머지 고려 말기에 간행된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에 무려 150여 편에 달하는 그의 시가 실리기도 했다. 특히 그가 남긴 안양사를 주제로 한 시는 수준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돼 전국 50여개 누각에 적혀 있을 정도다. 지면을 고려하여 원문은 생략하고 우리말로 번역된 것만 소개한다.
안양사- 붉은 다리를 지나 감색 불궁에 이르니, 조촐한 놀이길이 다행히 부처 있는 곳과 함께 했다/ 푸른 못에는 교교하게 가을 달이 잠겼고, 붉은 잎사귀에는 쓸쓸하게 밤바람이 운다/ 불사 안에는 일찍이 사객(謝客 나그네)을 용납하지 않는데, 시냇가에서 다행히 도옹(陶翁 도연명의 시심을 가진 주지)이 맞이한다/ 서로 이끌어 웃음 띄며 돌아가기를 늦추는데, 지는 해가 서쪽에 넘어가니 고갯길이 반쯤은 붉었다/ 야윈 말을 몰아 서울로 가다가, 우연히 안양사에 들어 유숙했다/ 새벽닭이 처음으로 홰를 치는데, 데운 밥 먹고 그윽한 골짜기에서 나온다/ 조각달은 잘린 옥고리처럼 나지막하고, 성긴 별은 금 좁쌀을 흩은 듯하다. 깊은 골찌기로 난 길은 성난 뱀이 가듯 꾸불꾸불 3백 굽 이여라/ 시냇물 얼음 되니 새로 흰 것이 보태었고, 산마루에 구름 끼니 본래의 푸르름이 없어졌다/ 여윈 말은 고슴도치 털처럼 까칠하고, 파리한 아이는 거북이 등처럼 움츠린다/ 내 본래 풍진 밖의 사람으로서, 평생에 얽매임이 적었으니. 10년 동안 산림에 놀 제, 건구로서 사슴을 좇았었네/ 어쩌다가 조물(造物)의 속임을 만나 내 한가함으로 오로지 하지 못했으니, 명리(名利 명예와 잇속) 속에서 지나온 천리 길의 행역(行役)이 괴롭구나/ 나는 어느 때에나 인패(印佩)를 던지고 원적(阮籍)이 궁도(窮途 궁박한 처지)에서 울던 꼴을 면하랴.
이글에 나오는 원적(210~263년)은 이른바 중국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우두머리로서, 몸 담아있던 위나라의 세력이 기울어 사마(司馬)씨의 진나라로 넘어가는 정권변혁 상황 속에서 느끼는 선비의 고독과 시름을 담아 전작 82수의 유명한 영회시(詠懷詩)를 남겼다. 그의 시에서 인패란 차고 다니는 여러 개의 직인(職印 감투) 꾸러미 같은 뜻이지만 눈앞에 공적을 세워서 빠른 영달(榮達)을 이루려는 공명심(功名心)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우린 안양사를 시제로 한 김극기의 귀거래사가 있는지도 모른채 정신없이 살아왔다. 누구나 오를 때와 내리막 때의 귀거래사는 있기 마련이고, 더욱이 떠날 때 느끼는 아쉬움에 젖어 저마다 시인의 마음이 되기도 한다. 이젠 우리가 원적의 인패를 던지고 김극기의 시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리고 떠나는 자에게 따뜻한 미소를 담아 시 한수를 보내는 두보(杜甫)의 시심(詩心)을 배워보자.
2008-02-01 15:45:50
'안양지역얘기 > 담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창연]4.9총선과 의왕의 과제, 그리고 시민의 책임 (0) | 2016.07.17 |
---|---|
[이태무]안양시외버스터미널… 어느때나 시민의 발이 되려나? (0) | 2016.07.17 |
[김수섭]서이면사무소와 故 박두리 할머니 (0) | 2016.07.17 |
[신대현]중초사지 (0) | 2016.07.17 |
[이재선]잃어버린 아이들 (0) | 2016.07.17 |
[김대규]‘安養’ 찾기 청원서 (0) | 2016.07.17 |
[김광남]이필운 시장의 철학, 방향 그리고 슬로건 (0) | 2016.07.17 |
[김용현]미래도시계획에 포함되야 할 조건들 (0) | 2016.07.11 |
[이재동]곰직자의 자세과 품격 (0) | 2016.07.11 |
[조창연]의제21에 대한 짧은 생각 (0) | 2016.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