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805

1960년대 초 유유 안양공장(현 김중업박물관)

#기록 #기억 #안양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유유 #김중업 #옛사진/ (사진출처 및 촬영자 미상) 아주 오래된 흑백사진 한장이 시공을 넘어 과거속으로 시간여행을 하게 한다.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초입에 있던 유유 안양공장(현 김중업박물관)의 초창기 모습으로 통일신라 '중초사(中初寺)'이래 고려 '안양사'로 이어져 조선까지 불맥을 이어간 사찰지위에 한국 건축계의 거장 고 김중업씨가 설계한 제약공장 건물들이다. 공장동 뒷쪽으로 개인주택들이 있고 사무동 뒷편에는 공장 신축 당시에는 없던 가건물이 들어선 것으로 보아 196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유유 안양공장 터는 중초사(통일신라), 안양사(고려)가 자리했던 절터로 유유 창립자인 유득한 씨가 1941년 매입해 6.25전쟁 이후인 1959년 5월 ..

1954년 안양권역 최초의 성당 장내동성당

#기록 #기억 #안양 #천주교 #안양본당 #장내동성당#중앙성당 #옛사진/ (사진출처 및 촬영자 미상) 1954-55년으로 추정되는 장내동성당(처음에는 안양본당으로 불리웠으며 1995년 중앙성당으로 명칭 변경)의 초창기 모습으로 사진 왼쪽의 까만 사제복을 입으신 분이 구천우 초대 신부님이며, 아이들은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아닐까 추측된다. 장내동성당은 당시 서울교구 관할로 1937년 밤나무밭 6,657평을 교회부지로 매입한 후 1954년 9월 7일 초대 주임신부인 구천우(具天祐)신부가 안양읍내에서는 처음으로 24평의 목조건물 성당을 지어 노기남 주교의 주례로 축성식을 가졌다. '장내동성당' 설립 후 1956년 5월4일에는 안양유치원이 개원하여 안양지역 최초로 유아교육을 시작했다. 목조성당은 1958년에 시멘..

안양시 여성위원 참여율 전국 시 단위 으뜸

정부가 오는 2017년까지 정부위원회 여성참여율 40% 달성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위원회의 여성참여 현황’을 보면 안양시 각종 위원회의 여성참여 비율이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시 단위 최고인 42.9%를 기록했다 이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각 위원회의 평균 여성참여율 30.1%보다 12.8%p나 높은 수치며, 조사 대상 69개 구 평균 36.5%보다도 6.4%p 높은 것으로 여성친화도시임을 입증했다. 안양시 성평등기본조례에 따르면 '시장은 정책결정을 위하여 각종 위원회 및 자문기구의 위촉직 위원중 어느 한쪽 성(性)이 60퍼센트가 넘지 않도록 하고, 관계공무원 구성의 내무자문기구에도 남녀공무원이 균등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정부는 국정과제인..

제33회 안양상공대상 수상자들입니다

제33회 안양상공 대상 수상자로 이용현 대표이사, 유근수 대표이사, 장형석 대표이사가 선정돼 2일 열린 안양상공회의소 제46주년 창립기념식에서 시상과 함께 기업인들로 부터 축하를 받았다. 안양상공회의소는 이들이 경영혁신과 기술개발을 통하여 비약적인 회사발전을 이루시어 산업발전과 고용창출, 지역사회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안양상공대상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안양상공대상을 수상한 코오롱환경서비스(주)의 이용현 대표이사는 다양한 환경플랜트 신기술 개발에 매진하여 독자적인 기술 확보로 환경플랜트 분야의 전체적인 프로세서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엔지니어링 전문 회사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인창전자(주) 유근수 대표이사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전자산업분야의 음향영상기기 전자부품을 국내 기..

1960년대 1번 국도와 안양유원지 가는길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옛사진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197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수도권 시민들의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받던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입구인 안양교 사거리의 1960년대 말 모습으로 안양유원지 개장을 앞두고 도로정비 공사가 한창입니다. 사진속 아치가 서 있는 자리는 현재 안양예술공원 지하차도이며, 사진 아래 의 비포장도로는 당시 안양읍내를 관통하는 유일한 도로였던 1번국도(현 만안로)로 왼쪽은 서울방향이며 오른쪽은 안양역 방향입니다. 당시에 사진 왼쪽에는 현 삼막천으로 이전복원하기 전의 만안교 다리가 있었으며, 그 위로 자동차들이 지나다녔습니다. 아치 뒷쪽으로는 경부선 철길인데 사진 오른쪽에는 피서철에는 운영되는 안양유원지 임시 정거장이 설치돼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열차가..

1970년대 안양 만안교에는 넝마주의가 살았다

#안양 #기록 #기억 #옛사진 #만안교 #정조/ 정조임금이 축조한 다리 안양 만안교의 1970년대 모습으로 현재의 이전 복원된 위치가 아니라 안양천위에 놓여져 있던 것을 찍은 사진입니다. 만안교는 안양교(구도로)를 지나 안양예술공원 지하차도앞 교차로에서 서울방향으로 약 20미터 지점(현 영화아파트) 앞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번 국도확장사업으로 1980년 8월 약 200미터 북쪽의 안양시 석수동 260번지 석수교회앞 삼막천 위로 옮겨 다시 축조한 것이지요. 안양천 물줄기가 일제강점기에 직강공사를 통해 돌려지면서 다리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당시의 모습을 보면 홍예(교각) 대부분이 땅속에 묻혀있고, 그 아래에서는 당시 넝마주의 아저씨들이 살았답니다

1980년 만안교 해체 이전 복원 공사 현장

정조 임금의 화성 능행차를 위해 축조된 만안교를 1980년 이전.복원하기 위한 공사 모습으로 만안교의 해체하여 다시 복원하기 위해 현재의 삼막천에 깔아놓은 귀중한 사진으로 아주 어렵게 찾았습니다. (출처: 안양시 자료) 현재의 만안교 위치는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니지요. 당초 만안교는 안양예술공원 지하차도 들어가는 교차로에서 서울방향으로 약 20미터 지점(현 영화아파트)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번 국도확장사업으로 1980년 8월 약 200미터 북쪽의 안양시 석수동 260번지 석수교회앞 삼막천 위로 옮겨 다시 축조한 것이지요. 1972년에 촬영한 기록 사진을 보면 당시에는 교각의 대부분이 땅속에 묻혀있고, 다리위에 난간이 추가 설치돼 변형됐음을 보여주는데 현재의 다리보다 더 길었습니다. 제 어릴적 ..

1960년대 안양기독보육원 주변 풍경

#옛사진 #기록 #기억 #안양/ 1960년대 말의 안양읍내 현 안양2동 지역의 풍경으로 사진 아래 숲이 있는 곳은 당시 안양기독보육원(현 좋은집)이며, 그 위로 안양천이 흐릅니다 . 안양천 중앙으로는 자그마한 다리 하나가 보이고 그위로는 서울 수원간 1번국도(석수동에서 안양역앞을 지나 구 안양경찰서로 연결)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1번 국도 위로 보이는 동네가 안양2동 주택들이고 그 위 왼쪽 뒤로 보이는 큰 건물이 금성방직(현 대농단지)입니다. 1번국도 오른쪽 윗쪽에는 3층짜리 자그마한 건물이 보이는 당시 안양문화원(현 안양2동 주민센터)이 있던 곳으로 안양 최초의 도서관기능도 겸했지요. 1번국도 오른쪽 끝자락 위로는 하천의 흔적이 보입니다. 이 하천은 수암천인데 당시 만안초등학교 앞과 박달동을 통과한 후..

1968년 안양읍내 잡화상, 현 대동서점 자리

#옛사진 #기록 #닐미샬로프/ 1968년 안양읍내 잡화상 풍경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위치가 현재의 안양시 안양로 중앙사거리로 CGV안양점 대각선 반대편의 본프라자 빌딩 정면(현 대동서점 출입구쪽)입니다. 당시 이 곳에는 잡화상이 쭈욱 있었는데 건물 뒷쪽에는 미륵불이 있던 용화사라는 큰절이 있었지요. 이 절은 1983년 4월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337-6번지로 이전(이후 2004년 의왕시 내손동으로 재차 이전)하고 그 자리에 본백화점(1983년 11월 23일 개점)이 들어섭니다. 1970년대 당시 용화사 주변으로는 안양역과 삼원극장(현 CGV), 새시장(현 중앙시장) 등이 있었습니다, 또 1960년대 말까지 안양에는 안양역앞을 지나는 1번국도가 유일했으나 1970년대 초에 석수동에서 구 안양경찰서(명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