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기억 #안양 #천주교 #안양본당 #장내동성당#중앙성당 #옛사진/ (사진출처 및 촬영자 미상) 1954-55년으로 추정되는 장내동성당(처음에는 안양본당으로 불리웠으며 1995년 중앙성당으로 명칭 변경)의 초창기 모습으로 사진 왼쪽의 까만 사제복을 입으신 분이 구천우 초대 신부님이며, 아이들은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아닐까 추측된다.
장내동성당은 당시 서울교구 관할로 1937년 밤나무밭 6,657평을 교회부지로 매입한 후 1954년 9월 7일 초대 주임신부인 구천우(具天祐)신부가 안양읍내에서는 처음으로 24평의 목조건물 성당을 지어 노기남 주교의 주례로 축성식을 가졌다.
'장내동성당' 설립 후 1956년 5월4일에는 안양유치원이 개원하여 안양지역 최초로 유아교육을 시작했다.
목조성당은 1958년에 시멘트와 목조를 이용하여 명동성당과 같은 고딕형 성당으로 다시 신축돼 1959년 봉헌식을 갖고 안양지역 사회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해 왔다.
특히 종탑에는 이태리에서 들여온 종 3개가 있었는데 하루 세번 타종하는 삼종소리는 안양이 허허벌판이던 그 시절, 군포와 박달리는 물론 멀리는 물왕리 공소(현 안산삼거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시계가 귀하던 그때는 새벽 6시 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아침을 준비하고, 낮 12시 종소리를 듣고 점심을 먹어야할 시간을 알았고, 저녁 6시에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하루가 저물었음을 알게하는 시계역할까지 했다.
하지만 고딕식 성당은 건물이 오래돼 안전문제가 생기자 1991년 고건선 당시 주임신부에 의해 새 성당 건축에 들어가 안양시민들로 사랑을 받던 고딕식성당은 철거되고 천막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새 성전 공사에 들어가 2004년 현재 모습의 현대식 성당을 완공했다.
성당의 명칭도 세월과 더불어 신자 수가 증가해 분당들이 되는 과정에서 여러차례 바뀌었다. 안양본당은 신자의 증가로 '호계동성당'(1975년), '명학동성당'(1978년), '비산동성당'(1978년) 등이 차례로 분리됐다. 이러한 본당들이 새로 생겨나면서 '안양본당'이란 이름을 계속 사용할 수 없게 되자, 관할 지역구에 착안해 '안양4동 본당'으로 잠시 개칭했다가 다시 1980년에 '장내동성당'이란 명칭으로 바꾸었으며 그 후 신자들이 계속 증가하여 다시 1983년에 '석수동본당'이 분리됐고, 2002년에는 '목감성당'(시흥시 소재)이 분당됐다. 현재의 명칭인 중앙성당으로는 1995년 변경됐다.
한편 안양4동은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밤나무가 무성한 밤동산으로 지금의 벽산쇼핑 일대는 ‘좌백율원’이라는 대단위 율원이 조성되어 매년 전국 밤줍기대회가 열릴 정도로 밤을 주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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