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841

1970년대 입장료 받던 안양유원지 매표소

#안양 #기록 #안양풀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여름 #매표소 #국민관광지/ 1970년대 100만 인파 몰렸던 안양유원지 매표소 풍경으로 현재 안양예술공원 주차장 진입 다리(삼성2교) 오른쪽의 산자락입니다. 안양유원지는 1969년 1월 21일 국민관광지로 지정돼 안양풀 대신 안양유원지란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열차가 서는 임시 안양유원지역 입구에는 아치모양의 철구조물에 '안양유원지'라는 간판이 나붙고 경기도관광협회 안양유원지지부가 결성되어 유원지 관리를 명목으로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1971년 7월 30일 개발제한구역(일명 그린벨트)으로, 1973년에는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건축 및 재건축이 억제되는 특별관리하에 들어가면서 발길이 끊깁니다. 더욱이 1977년 사상 유례없는 안양 ..

안양유원지의 어제와 오늘(1997년11월18일자 동아일보)

#‎안양‬ ‪#‎안양유원지‬ ‪#‎안양풀‬ ‪#‎동아일보‬/ 1997년 11월 18일자 동아일보 기사로 안양풀이 개장했던 1932년 7월 21일자 동아일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는군요. 「경성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승지(勝地)는 많은데 수영장은 별로 없다. 안양은 곳곳에 녹음이 무성하여 하기(夏期)는 각 학생의 림간(林間)학교 피서지로 유명할 뿐더러 추기(秋期)에는 관풍습률(觀楓拾栗)의 승지로 이름있는 곳인데 겸하여 수영장이 완성되면 금상첨화로 안양 일대는 관악산 아래에 낙원지가 되어 지방 발전은 더욱 번영하리라고 한다」. 1932년 7월21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1동 안양유원지 관련기사이다.

안양풀장에 인파(1935년8월16일자 동아일보)

‪#‎안양‬ ‪#‎안양유원지‬ ‪#‎안양풀‬ ‪#‎동아일보‬/ 1935년 8월 16일자 동아일보 기사로 안양풀의 옛 모습과 함께 1935년에는 매일 안양 거주 인구의 절반 가까이나 되는 수천명의 피서객이 찾으면서 한달도 안돼 2만8700여명이 찾는 등 삼성산 계곡에 안양풀이 생기고 난후 매년 피서객이 늘어나고 있다는 글도 실려 있네요. 참고로 안양의 인구 변천사를 보면 최초의 인구 자료는 영주 35년(1759년)의 호구조사인데 현재의 안양의 석수동, 박달동을 제외한 나머지 안양지역에 속한 하서면의 인구가 1515명이고, 1912년에는 3412명, 1925년 6165명, 동아일보 기사가 실렸던 1935년 당시에는 8957명, 1941년(안양면 승격) 10000명, 1949년(읍 승격) 20021명, 197..

안양풀장 개장 기사(1932년7월21일자 동아일보)

‪#‎안양‬ ‪#‎안양유원지‬ ‪#‎안양풀‬ ‪#‎동아일보‬/ 1932년 7월 21일자 동아일보의 안양 석수동에 안양풀이 개장한다는 기사입니다. 「경성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승지(勝地)는 많은데 수영장은 별로 없다. 안양은 곳곳에 녹음이 무성하여 하기(夏期)는 각 학생의 림간(林間)학교 피서지로 유명할 뿐더러 추기(秋期)에는 관풍습률(觀楓拾栗)의 승지로 이름있는 곳인데 겸하여 수영장이 완성되면 금상첨화로 안양 일대는 관악산 아래에 낙원지가 되어 지방 발전은 더욱 번영하리라고 한다」

[안양권지도]1872년 시흥현지도-안양권(始興縣地圖,규10368)

지금의 시흥시가 100년 역사의 시흥을 외치며 과거 시흥군을 잇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1872년에 제작한 시흥현 지방지도를 보면 사실 지금의 서울 금천구가 조선시대 시흥현의 중심으로 시흥군의 뿌리였음이 보여준다. 1872년 시흥현지도(始興縣地圖)에 표기된 시흥현은 대략 지금의 서울 금천구, 구로구, 영등포구, 관악구, 광명시, 안양 만안구 정도에 해당되는데 전체적으로 글 위주로 다른 지도처럼 산 외에 그림 표시를 거의 하지 않았다. 1872년 과천지도와 같이 관악산을 주산으로 여기는데, 관악산이 읍치의 동쪽에 위치하지만 지도상 북쪽으로 표현되어 있다. 왼쪽 아래가 한강이다. 관악산 왼쪽에 그려진 하천은 도림천인데 오른쪽에 그려놓은 안양천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들어간다. 영등포는 한강가의 작은 포구취락으로 그..

1970년대 100만 인파 몰렸던 안양유원지

1970년대 100만 인파 몰렸던 안양유원지 #안양 #기록 #안양풀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여름 #피서/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를 찾아 나서지요. 피서 풍습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지만 일상을 떠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잠시나마 더위를 잊고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한다는 의미는 변함이 없답니다. 근래에는 해외여행이나 시설 좋은 물놀이 공원에서의 피서가 흔한 풍경이 되었지만, 삶이 궁핍했던 1950-60년대에 사람들은 산과 바다로 달려가 더위를 식혔다. 당시 서울에서 멀리는 대천·송도로 피서를 떠나기도 했지만 가까운 시냇가, 계곡, 한강, 뚝섬 등에서 물놀이를 했지요. 안양유원지 계곡에는 물이 참 많았답니다.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

1930-1960년대 안양유원지로 피서온 사람들

#안양 #기록 #안양풀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여름 #피서/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를 찾아 나서지요. 피서 풍습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지만 일상을 떠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잠시나마 더위를 잊고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한다는 의미는 변함이 없답니다. 근래에는 해외여행이나 시설 좋은 물놀이 공원에서의 피서가 흔한 풍경이 되었지만, 삶이 궁핍했던 1950~1960년대에 사람들은 산과 바다로 달려가 더위를 식혔다. 당시 서울에서 멀리는 대천·송도로 피서를 떠나기도 했지만 가까운 시냇가, 계곡, 한강, 뚝섬 등에서 물놀이를 했으며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는 인파가 몰리는 피서지중 한곳이었지요. 안양유원지 계곡에는 물이 참 많았답니다..

1968년 여름 안양유원지로 피서온 사람들

1968년 여름 안양유원지로 피서온 사람들 #안양 #기록 #안양유원지 #여름 #피서 #닐미샬로프/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를 찾아 나서지요. 피서 풍습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지만 일상을 떠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잠시나마 더위를 잊고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한다는 의미는 변함이 없답니다. 근래에는 해외여행이나 시설 좋은 물놀이 공원에서의 피서가 흔한 풍경이 되었지만, 삶이 궁핍했던 1950~1960년대에 사람들은 산과 바다로 달려가 더위를 식혔다. 당시 서울에서 멀리는 대천·송도로 피서를 떠나기도 했지만 가까운 시냇가, 계곡, 한강, 뚝섬 등에서 물놀이를 했으며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는 인파가 몰리는 피서지중 한곳이었지요. 안양유..

민주화 거리행진 나선 1987년 6월의 안양 도심

#안양 #기록 #기억 #민주화 #중앙로/ 1987년 6월 안양시 중앙로(중앙시장 동문앞) 거리를 행진하는 시민들. 오늘은 6·10민주항쟁 29주년이다. 1987년 6월의 안양은 정말 뜨거웠다. 6.10일 이후인 26일 오후 11시20분경, 무려 2만명에 달하는 안양시민들은 안양경찰서에서 우체국에 이르는 거리를 가득 메웠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직격탄을 쏘았고 3명이 부상당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안양에서는 1987년 당시 6월 항쟁 기간인 6월 19일, 6월 23일, 6월 26일 모두 세 차례의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전개됐다. 안양에서의 첫 대중 집회인 6월 19일 집회에 대해 시사월간지 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9시 30분경, 1만여 명의 시민들이 도로에 앉아 대중 집회가 시작됐다. … 약 2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