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613

1956년, 이승만 안양영화촬영소 정초식 참석 대한뉴스 영상

1956년 10월17일, 이승만 대통령이 안양시 석수동에 세워지는 동양 최대의 안양촬영소 정초식에 참석했다. 대한뉴우스 제94호로 방영된 영상을 보면 당시 행사에는 이기붕 민의원의장, 내무부장관, 문교부장관, 공보실장 등과 영화 연극 관계인사들이 대거 참석할 정도로 규모가 아주 컸다.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영화가 해외에 많이 진출하도록 하라고 격려하고 촬영소 모형도를 보기도 했다. 한편 같은 날 이 대통령은 안양읍내에 있던 삼덕제지와 금성방직 공장도 시찰했다. 사진출처=대한뉴우스 동영상 캡처 http://ehistory.go.kr/page/pop/movie_pop.jsp?srcgbn=KV&mediaid=154&mediadtl=1191&gbn=DH&quality=W&page=2

1956년, 이승만 삼덕제지.금성방직 방문 대한뉴스 영상

1956년 10월17일, 이승만 대통령이 안양시 안양4동에 있던 삼덕제지(현 삼덕공원 자리)와 금성방직(현 대농단지)도 방문했던 영상으로 대한뉴우스 제94호 상영된 영상을 e-영상역사관에서 볼 수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은 같은 날 안양영화촬영소 정초식에도 참석했는데 행사가 큐모가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승만 대통령은 재임시절 경기도 시흥시 물왕동에 있는 물왕저수지에 전용낙시터가 있어 낙시하기 위해 안양 박달리로 해서 이동했다는 기록도 있다. 사진출처=대한뉴우스 동영상 캡처 http://ehistory.go.kr/page/pop/movie_pop.jsp?srcgbn=KV&mediaid=154&mediadtl=1192&gbn=DH&quality=W&page=1

1973년, 안양읍내 시흥군 관공서 거리 풍경

1973년의 안양 일번가 풍경으로 위쪽으로는 대로변을 건너면 새시장(현 중앙시장)과 이어지는 중앙 통로입니다. 지금으로 부터 40년전인데 현재는 안양 대표적 젊음의 거리이지만 당시에는 시흥군청, 안양읍사무소, 안양경찰서, 의용소방대 등 관공서가 양쪽으로 쭈욱 있었고, 주변에는 양복점, 철성제화 등 양화점과 다방, 중국집 등이 있던 안양의 대표적 번화가였지요. 여학생들은 안양여중생? 무슨 캠페인을 하는 것 같은데.. 공중에 매달린 플랜카드 문구들이 이색적입니다.

1970년대 안양유원지 여름경찰서 개소식

1970년대 초 안양유원지(안양 예술공원)의 여름경찰서 개소식 풍경입니다.1960-70년대 안양유원지에는 한해 평균 70-100만의 수도권 피서객이 몰려들 정도로 혼잡을 이루었기에 안양경찰서 여름경찰서, 안양우체국 임시출장소, 국립중앙도서관 임간문고 등이 설치되고, 철길이 지나는 현재의 안양예술공원지하차도 위쪽(안양철교옆)에는 안양유원지 임시역이 세워져 매시간 열차들이 정차하고 합승버스가 운행되기도 했지요. 제 기억으로는 당시 여름경찰서가 들어선 자리는 맘모스수영장 옆으로 기억하는데 현재로는 폭포가 있는 벽천광장 위에 25시 체인점 앞쪽에 자그마한 건물이 있었지요.

1970년대 안양 수암천 빨래터 풍경

1970년대 안양 수암천의 풍경입니다. 사진 속 어린이들이 빨래하는 곳은 현재의 율목2교 앞으로 뒷편의 판잣집들이 있는 자리에는 율목주공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곳으로 안양9동 새마을 입구와 안양예고 중간쯤 되는 곳으로 생각됩니다. 현재의 수암천은 건천화 현상으로 평소 물이 말라 있지만 당시에는 수량이 풍부해 동네 주민들이 빨래를 할 정도였지요. 사진속 풍경을 확대해서 보면 아주 이채롭습니다. 왼쪽의 남자 아이는 콘크리트 보에 걸터앉아 세탁감을 살펴 보고 있고, 그 옆의 어린아이는 앙증맞은 손으로 빨래를 짜고 있고, 그 뒷편에 서 있는 녀석은 천연덕스럽게도 고추를 꺼내놓고 쉬~~를 하고 있네요. 그리고 커다란 세수대야를 하나씩 든 여성들이 줄지어 뒷편 개울쪽으로 이동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 한 여성은 머리..

1960년대 안양의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전경

안양시 자료에서 찾은 안양6동에 있는 국립수의과학검역원(현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의 1960년대의 모습입니다. 사진 앞쪽 빈터는 현재의 만안세무서이고, 우측 야산위로는 2012년에 만안경찰서가 신축됐지요. 사진 위쪽 중간을 가로지르는 신작로를 보면 우측 끝자락에 현재도 있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기지원 건물이 있으며 그 옆으로 도로가 휘어지는 곳에 구 안양경찰서가 들어서기 전입니다. 특히 군포쪽(현 금정역)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뚫리기 전임을 알수 있습니다. 또 검역원 우측에는 현재 안양변전소가 들어서 있지만 당시에는 한옥들이 있었네요.(당시 안양시내 전기는 현 안양 역전우체국 옆에 있던 변전소에서 공급) 사진속 국립수의과학검역원(가축위생연구소)이 있던 자리에는 일제강점기인 1938년 밤나무 밭이 있던 곳에..

안양의 특산물을 새겨놓은 우체국 소인

2012년 안양우체국이 안양에서 발송되는 편지봉투나 우편엽서에 찍는 관광통신일부인(소인-스탬프)을 새로 만들었는데 1974년 이후 이니 근 40여년 만입니다. 관광통신일부인은 지역에 기념할 만한 관광유적을 스탬프로 별도 제작해 국민에게 관광지에 대한 추억을 오래 간직하도록 하기 위해 사용하는 우편물 날인용 일부인을 말합니다. 전자메체의 발달로 요즈음 문자메세지, 이메일, SNS로 소식을 주고받다 보니 저 자신도 예쁜 편지지에 정성껏 손글씨를 써 편지봉투에 넣어 풀칠을 하고, 우표를 붙인후 편누군가에게 소식을 전한지가 언제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체신청 자료를 통해 과거 우편물에 찍었던 안양을 상징하는 이미지들과 소인을 찾아보니 제법 있습니다. 안양의 대표적 상징물을 이미지에 담아 전한 것은 1965년..

1969년 안양유원지 유료풀장 만안각수영장

1969년 여름의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풍경으로 1977년 안양대홍수로 처참하게 파괴된 후 지금은 그 흔적도 찾기 어려운 만안각 수영장으로 그야말로 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글바글합니다. 수영장 뒷쪽 산으로는 20여채 정도의 방갈로도 있었지요. 1932년에 개장한 안양유원지는 1960-70년대 서울과 수도권 주민들의 여름철 피서지로 체신부가 우편출장소를, 국립도서관은 임간문고를, 철도청은 안양유원지 입구에 임시역까지 설치했었지요. 관보를 보면 1966년 여름피서철인 8월 6일-28일까지 토요일.공휴일에 경부선 안양 풀 임시승강장(시흥~안양역, 안양풀입구)이 운영됐으며, 1967년에는 7월 14일부터 8월 20일까지 여객을 받는 등 안양 풀 임시승강장은 1969년에도 운영했다는 기록이 있네요. 옛..

1970년대 중반 안양 수푸루지마을과 비봉산 그리고 대림대학

안양시 비산동 안양천변 논(현 한화 꿈에그린아파트)에서 바라본 수푸루지(임곡마을- 현 비산1동)와 비봉산의 옛 사진으로 현 대림대학교가 들어선 산자락에 부지 조성 공사가 한창인 모습이다. 비봉산은 산 봉우리가 두개이지요. 우측에 있는 봉우리는 중턱에 망해암이 있는 산, 뒷 봉우리는 안양항공무선표지국(비행기 등대)이 있는 정상으로 정상에는 석재와 콘크리트로 둥그렇게 만든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다. 앞서 올린 사진과 비교해 볼때 비봉산 좌측의 판잣집들이 철거된 것으로 볼때 1970년대 중반이 아닐까 싶다. 눈길을 끄는 것은 사진을 확대해 보니 사진 우측 산자락(부지 조성)에 안양여중고교 부지 라는 글씨가 쓰인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당초 안양여중고를 이곳으로 이전하려다 대림대학을 설립한 것으로 보여진다. 대림..

1970년대 초반 안양 수푸루지마을과 대림대학 설립 공사

안양천변(안양7동 덕천마을쪽)에서 바라본 수푸루지(임곡마을- 현 비산1동)와 비봉산과 대림대학교 신축을 위한 터 닦기 공사 모습이 보이는 옛 사진이다. 1975년 개통한 비산대교가 놓여지기 전인 모습을 볼때 70년대 초반으로 여겨진다. 사진 중앙에 산이 깍인 곳은 현 대림대학교가 들어선 자리인데, 산자락 좌측 산비탈에는 빼곡하게 판잣집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림대학교는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임곡로(비산동)에 있는 사립전문대학이다. 1977년 6월 이재준(李載濬)이 운영하는 학교법인 대림학원에서 대림공업전문학교로 설립하였다. 초대교장에 성환태(成煥泰)가 취임하였으며, 설립 당시의 중공업육성정책에 따라 기계과·전기과·토목과·건축과를 설치하여 입학생 880명으로 개교하였다. 1979년 3월 대림공업전문대학으로..